세탁기 돌아가는 오후
세탁기가
일정한 소리로
오후를 돌리고 있다
창문은 조금 열려 있고
찬 공기가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본다
의자 위에 걸쳐 둔 목도리와
반쯤 식은 커피
읽다 만 책 한 권이
오늘을 대신 말해 준다
휴대전화에는
답하지 못한 안부가
몇 줄 남아 있고
베란다에는
젖은 이불보다
먼저 겨울이 마르고 있다
길 건너 카페에서는
누군가 웃고
횡단보도 앞에서는
누군가 신호를 기다린다
세상은
별일 없이 흘러가는데
나는 문득
창틀에 내려앉은 햇살을 오래 바라본다
행복이란
커다란 계절이 아니라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와
따뜻한 양말 한 켤레,
그리고
오늘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는
조용한 저녁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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