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간판들
해가 지면
골목의 간판들이
하나둘 불을 켠다
저마다
세상을 가장 잘 안다는 얼굴로
밤을 붙잡는다
빨간 글씨는
더 붉어지고
파란 불빛은
조금 더 차가워진다
사람들은
빛을 따라 걷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길을 비추는 전구 하나보다
마음을 비추는 말 한마디인지도 모른다
버스정류장 의자에는
말없이 앉아 있는 노인이 있고
편의점 앞에는
컵라면 김이
천천히 겨울을 데운다
입으로 떠난 말은
골목 끝에서 금세 식어 버리지만
손으로 건넨 작은 친절은
오래도록 사람의 등을 밀어준다
빈 화분에
이름 모를 풀이 먼저 자라듯
세상은
큰 구호보다
작은 믿음 하나로 버텨 왔다
오늘도
누군가는 약속을 말하고
누군가는 묵묵히 쓰레기를 줍는다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
조용히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늦은 골목의 불빛 아래서
천천히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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