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의 뿌리
달빛이
창문을 넘어
빈 의자 하나에 먼저 앉는다
나는
식지 않은 찻잔을 앞에 두고
오래 잊었다고 믿었던 이름을
천천히 불러 본다
어디선가
젖은 흙냄새가 올라오고
보이지 않는 뿌리들이
밤의 바닥을 지나
내 발끝까지 이어진다
태어난다는 것은
세상에 오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조용히 스며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저물녘은
하루가 끝나는 시간이 아니라
빛이 어둠에게
제 몸을 건네는 순간
별들은
아무 소리 없이
새벽을 품고 있고
강물은
한 번도 자신의 이름을 묻지 않은 채
바다를 향해 흐른다
나 또한
두 발은 이곳에 서 있지만
마음은 오래전부터
돌아갈 곳을 향해 걷고 있었다
기쁨도
슬픔도
한때 내 몸을 지나간 계절일 뿐
끝내 남는 것은
가슴 깊은 곳에서
천천히 자라는
이름 없는 뿌리 하나
밤이 깊을수록
그 뿌리는 더 먼 곳으로 뻗고
달빛은
그 위에 조용히 내려앉아
보이지 않는 꽃을 피운다
그래서 삶과 죽음은
서로 등을 맞댄 길이 아니라
한 줄기 뿌리에서
다른 빛으로 피어나는
하나의 계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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