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麗松詩集

바람이 지나간 자리

작성자麗松 이상원|작성시간26.06.07|조회수0 목록 댓글 0

바람이 지나간 자리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생각해 보다가

창문 하나를 연다

저녁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와

책상 위 손수건 한 장을

멀리 밀어 놓는다

살아온 날들은

옷걸이에 걸린

낡은 셔츠처럼

한 계절씩 색이 바랬고

한때는

내 것이라 믿었던 이름들도

비를 맞은 메모처럼

조금씩 번져 간다

멀리 바다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해를 품고 있고

파도는

한 번도

자신이 남긴 물결을

되돌아보지 않는다

골목의 가로수는

바람이 부는 쪽으로

잠시 몸을 기울일 뿐

쓰러지는 일보다

다시 일어서는 법을 먼저 안다

거울 속 얼굴에

늘어난 주름 하나가

오늘 하루를

조용히 접어 넣는다

무언가를 붙잡으려 할수록

손은 무거워지고

놓아주는 순간

바람은

비로소 지나간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은

잃는 것이 아니라

가벼워지는 것이라는 듯

숲이 흔들리고

내 마음도 흔들리지만

흔들리는 것들은

모두 제자리에서

자기만의 하늘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사념 하나를 벗어

의자 위에 걸어 두고

창문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조용히

하루를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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