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들녘에서 오는 봄
모두 떠난 줄 알았던
겨울 들녘으로
저녁빛 하나
천천히 걸어온다
베어낸 볏짚 사이
바람이 손을 넣으면
아무도 부르지 않은 이름들이
마른 흙 속에서
조용히 몸을 뒤척인다
빈 들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계절을 품고 있는
어머니의 무릎이었다
눈 아래 숨겨 둔 씨앗들은
제 몸보다 먼저
햇살의 냄새를 기억하고
가느다란 뿌리 하나
세상 쪽으로 내민다
황혼은
붉은 치맛자락을 끌며
들판을 한 바퀴 돌아
풀잎마다
작은 숨결을 심어 놓는다
이름 없는 풀꽃 하나가
먼저 피어나면
그 뒤를 따라
잊고 있던 마음들도
하나둘 흙을 밀고 올라온다
겨울은
모든 것을 잃은 계절이 아니라
처음으로 돌아가기 위해
조용히 자신을 접는
한 장의 백지
그 위에
입춘은
연분홍 손끝으로
첫 문장을 적는다
바람은
아직 차갑지만
먼 산에서 건너온 새 한 마리
들녘 위를 둥글게 돌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끝이라고 믿었던 자리에
늘 시작이 먼저 와 있었음을
늦게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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