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麗松詩集

붉은 점 하나

작성자麗松 이상원|작성시간26.06.07|조회수1 목록 댓글 0

붉은 점 하나

 

눈은

밤새 세상을 지우고

아침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온다.

언덕 끝

사람의 발길보다 먼저

동백 한 송이가

눈 위에 앉아 있다.

누가 놓고 간 것도 아닌데

붉은 점 하나가

하얀 침묵을 오래 붙잡는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한참 그 앞에 서 있다.

겨울은

말이 적은 계절이라

나무도

바람도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낡은 운동화 자국,

녹슨 철문,

담장 끝에 남은 햇살 하나가

천천히 살아온 이야기를 한다.

멀리

폐가 굴뚝에서는

연기 대신 까치 한 마리 날아오르고

길가 슈퍼 앞 의자는

빈 채로 오후를 지키고 있다.

삶은

거창한 슬픔보다

문득 코끝에 스치는

군밤 냄새 하나,

누군가 부르던 이름 하나,

눈 위에 떨어진 꽃잎 하나로

오래 남는다.

해가 기울자

동백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눈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조금씩 녹아간다.

나는 돌아서면서

누군가를 잊는 일보다

가끔 떠올리는 일이

사람을 더 오래 살게 한다는 것을

겨울 언덕에서

조용히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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