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위에 쓰는 하루
겨울 숲에
잠시
세 들어 산다
밤새 내린 눈은
빈 가지마다
흰 편지를 걸어 두고
햇살은
아무 대가도 없이
그 위에
옅은 금빛을 덧칠한다
나는
주머니 속 손을 꺼내
한 줌의 온기를 빌리고
눈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간다
발자국은
한 줄씩 이어져
누군가 그린
묵죽처럼 숲을 지난다
바람이 스치면
지워질 그림인데도
눈은
끝내 서두르지 않는다
멀리 까치 울음 하나
하얀 여백에 번지고
나무들은
아무 말 없이
겨울을 받아 적는다
세상도
잠시 빌려 쓰는 종이
욕심을 지우고 나면
마음은
눈처럼 환해지고
나는 오늘도
한 장의 눈 위에
하루를 쓰다가
저녁이 오면
조용히
발자국만 남겨 둔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