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문호수의 사색
호수는 말을 아낀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잔물결 몇 개를 남길 뿐
나는 물가에 앉아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다
햇빛은 수면 위에서 부서지고
흔들리는 빛들은
작은 나비 떼처럼 날아올라
고요한 마음 한편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어깨에 걸친 침묵 하나
새가 되어 호수를 건너고
커피 잔에서 피어오르는 온기는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함께
나를 먼 곳으로 데려간다
생각과 생각 사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바람은 멈추지 않고
나는 잠시
나를 비우는 법을 배운다
낯선 음악 한 줄이
호텔 로비의 공기를 스쳐 지나가고
가슴 깊은 곳에서는
이유 없는 평온이
샘물처럼 맑게 차오른다
호수 위
갈색 새 한 마리가 떠 있다
어디에도 서두르지 않은 채
물과 하늘의 사이를 지키며
나도 그 새처럼
오늘이라는 풍경에 잠시 머문다
그리고 기다린다
내일이 어떤 향기로
내 앞에 다가올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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