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오는 날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회색 구름은 낮게 내려앉고
도시는 젖은 얼굴로
말없이 창문을 닫는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고
누군가의 기억을 두드리는 것 같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슬픔들이
비 냄새를 따라
천천히 되돌아온다
살다 보면
마음에도 먼지가 쌓이고
지워지지 않는 얼룩 하나쯤
남게 마련이다
겨울비는
그런 것들을 말없이 적신다
무엇을 용서하라는 말도 없이
무엇을 잊으라는 말도 없이
그저 오래된 상처 곁에 앉아
조용히 등을 토닥여 준다
하루 종일 내리던 비가
저녁 무렵 잦아들 때쯤
나는 알 것 같다
비가 씻어가는 것은
몸이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 남아 있던
슬픔의 그림자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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