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수채화
밤사이 눈이 다녀갔다
말을 잃은 거리 위로
하얀 침묵이 내려앉고
나무와 지붕과
잊혀진 빈터까지
모두 같은 빛으로 덮어 놓았다
세상은 잠시
새 종이를 펼쳐 놓은 듯
깨끗한 얼굴이 된다
발자국 하나 없는 아침
나는 숨을 죽인 채
그 위를 천천히 걷는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바람 소리마저
눈 속에 스며들어
낮은 노래가 된다
더 가지려 했던 마음도
더 높이 오르려 했던 욕심도
하얀 풍경 앞에서는
잠시 말을 잃는다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먼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워진다
눈부신 겨울빛 속에서
나는 오래 잊고 지냈던
맑은 마음 하나를 만난다
그리고
내 영혼에도
하얀 눈 한 송이처럼
사랑이 내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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