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가 되는 계절
여름은
가을에게 자리를 내주듯
조용히 물러났다
누가 떠나라고 한 것도 아니고
누가 붙잡지 못해서도 아니다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간다
계절은 늘 그렇게
말없이 자리를 바꾼다
창밖의 나무는 조금씩 색을 바꾸고
마음속 풍경도 그만큼 깊어진다
무언가 익어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내려놓는 일
하나의 열매가 붉어질 때
하나의 슬픔도 함께 자란다
나는 세월을 따라가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돌아보니
세월이 내 등을 밀며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자
계절의 모퉁이에 서서
떠나는 여름을 바라보고
다가오는 가을의 냄새를 맡는다
와인 잔에 흔들리는 저녁빛처럼
하루도
한 계절도
천천히 익어간다
그리고
막 깨어난 가을은
한 폭의 수채화가 되어
세상을 노랗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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