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나를 마신다
향이 진한 커피 한 잔 앞에 앉아
나는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다
오히려
커피가 나를 천천히 마신다
문득 떠오른 이름 하나
말로 꺼내기에는
너무 오래 가슴에 머물렀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입술 끝에 닿으면
언어는 금세 식어버리고
침묵만 진하게 남는다
기억은 이상하다
잊으려 할수록 선명해지고
지우려 할수록
더 깊이 스며든다
새벽 창밖
옅은 안개가 번지듯
그리움도
가슴 한편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살아 있는 것
만질 수 없지만
끝내 떠나지 않는 것
오늘도 나는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한 채
커피가 식어가는 시간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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