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 속의 나
찻잔을 들여다본다
잔잔한 수면 위로
낯익은 얼굴 하나 떠오른다
호수에 비친 억새처럼
흔들리면서도
제 모습을 잃지 않은 채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일렁이는 물결 속에는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다
한때 뜨겁게 사랑했던 시간과
말없이 지나간 계절도
함께 떠 있다
차 향이 오르는 동안
나는 오래된 영화 한 편을 보듯
지나온 날들을 넘겨본다
하늘을 품었던 꿈들
가슴에 묻어둔 이름들
모두 찻잔 속에 잠시 머문다
눈물은 세월이 마시고
웃음은 바람이 가져가고
남은 꿈들은
눈빛 속에서 천천히 익어간다
찻잔이 식어갈 무렵
나는 문득 알게 된다
지나간 시간도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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