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가슴 깊은 곳을 지키던 허수아비 하나
비에 젖은 채
계절이 바뀌는 소리를 듣는다
오래 패인 시간들은
바람이 드나드는 상처가 되어
들판을 서성이고
아무도 묻지 않는 저녁마다
그는 기울어진 어깨로
빈 길을 바라본다
눈동자에 남은 마지막 빛은
서리 맞은 풀잎처럼 희어지고
말하지 못한 그리움은
마른 입술 끝에서
한 번도 이름을 갖지 못한다
부서진 영혼의 파편들이
어둠 속을 떠돌다
달 없는 밤이면
검게 탄 침묵 하나가
들판 한가운데 서서
오래도록
바람 소리만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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