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홍윤보의 변명
(상여가 멈춘 이유에 대한 본인 진술)
다들 내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 해서 상여가 멈췄다고 한다.
억울하다.
못 한 게 아니라 도무지 입이 내 허락을 안 받았다.
황진이만 나타나면
심장은 장구 치고 무릎은 메밀묵이 되고
다리는 엿가락처럼 흐물거리고
혀는 입안에서 낮잠을 잤다.
겨우 나온 말이 "비가 오겠소." "밥은 드셨소."
"오늘 바람이 바람답소."
한 번은 "꽃이 참 예쁘오." 했더니
진이는 꽃만 쳐다보고 "고맙소."
끝.
나는 꽃보다 더 시들었다.
집에 돌아오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천장을 향해 외쳤다.
'윤보야,
넌 입이 장식품이냐.'
그렇게 고백은 백 번 연습하고 실전은 단 한 번도 못 뛰었다.
결국 사랑은 미수로 끝나고 인생도 마감했다.
그런데 웬걸.
상여가 진이네 집 앞에서
바퀴에 뿌리라도 난 듯 꼼짝을 안 한다.
앞에서 메던 사람도 뒤에서 받치던 사람도
땀을 뻘뻘 흘리며 나만 노려본다.
"이 양반아!
살아서 말 한마디 했으면 우리가 이 고생을 하겠소?"
한 사람은 멜빵을 고쳐 메며 중얼거렸다.
"사랑도 적체가 생기면 운구가 막히는 법이네."
또 한 사람은 허리를 두드리며
"염라대왕도 이런 민폐는 처음 보겠구먼."
그제야 진이가
꽃신 한 켤레를 올려놓고 피식 웃었다.
"윤보 씨.
좋아하면 좋다고 하지."
속으로 나는 천 번은 외쳤다.
좋아했소!
아니, 사랑했소!
첫눈에도, 둘째 눈에도, 장날에도, 단오에도,
심지어 체했을 때도
그런데
죽은 사람 목소리는 산 사람 귀에 끝내 닿지 않았다.
답답한 건 상여만이 아니었다.
진이가
빙그레 웃으며 절을 두 번 하자
상여가 "이제야 됐네" 하는 듯 슬금슬금 움직였다.
상여꾼들도 허리를 펴며 한마디씩 했다.
"다음 생에는 저 양반 입부터 다시 태어나야겠네."
나도 속으로 다짐했다.
다음 생에는 과거시험보다 고백시험부터 보리라.
낙방하면 술 한잔 마시면 그만이지만
말 한마디 못 하면 상여꾼 허리만
두 생을 고생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