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麗松詩集

황진이, 홍윤보의 변명

작성자麗松 이상원|작성시간26.06.16|조회수1 목록 댓글 0

황진이, 홍윤보의 변명

(상여가 멈춘 이유에 대한 본인 진술)

 

다들 내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 해서 상여가 멈췄다고 한다.

억울하다.

못 한 게 아니라 도무지 입이 내 허락을 안 받았다.

황진이만 나타나면

심장은 장구 치고 무릎은 메밀묵이 되고

다리는 엿가락처럼 흐물거리고

혀는 입안에서 낮잠을 잤다.

 

겨우 나온 말이 "비가 오겠소." "밥은 드셨소."

"오늘 바람이 바람답소."

한 번은 "꽃이 참 예쁘오." 했더니

진이는 꽃만 쳐다보고 "고맙소."

끝.

 

나는 꽃보다 더 시들었다.

집에 돌아오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천장을 향해 외쳤다.

'윤보야,

넌 입이 장식품이냐.'

그렇게 고백은 백 번 연습하고 실전은 단 한 번도 못 뛰었다.

 

결국 사랑은 미수로 끝나고 인생도 마감했다.

 

그런데 웬걸.

상여가 진이네 집 앞에서

바퀴에 뿌리라도 난 듯 꼼짝을 안 한다.

앞에서 메던 사람도 뒤에서 받치던 사람도

땀을 뻘뻘 흘리며 나만 노려본다.

 

"이 양반아!

살아서 말 한마디 했으면 우리가 이 고생을 하겠소?"

한 사람은 멜빵을 고쳐 메며 중얼거렸다.

"사랑도 적체가 생기면 운구가 막히는 법이네."

또 한 사람은 허리를 두드리며

"염라대왕도 이런 민폐는 처음 보겠구먼."

 

그제야 진이가

꽃신 한 켤레를 올려놓고 피식 웃었다.

"윤보 씨.

좋아하면 좋다고 하지."

 

속으로 나는 천 번은 외쳤다.

좋아했소!

아니, 사랑했소!

첫눈에도, 둘째 눈에도, 장날에도, 단오에도,

심지어 체했을 때도

그런데

죽은 사람 목소리는 산 사람 귀에 끝내 닿지 않았다.

답답한 건 상여만이 아니었다.

 

진이가

빙그레 웃으며 절을 두 번 하자

상여가 "이제야 됐네" 하는 듯 슬금슬금 움직였다.

 

상여꾼들도 허리를 펴며 한마디씩 했다.

"다음 생에는 저 양반 입부터 다시 태어나야겠네."

나도 속으로 다짐했다.

 

다음 생에는 과거시험보다 고백시험부터 보리라.

낙방하면 술 한잔 마시면 그만이지만

말 한마디 못 하면 상여꾼 허리만

두 생을 고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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