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가 터지는 저녁
가슴 한구석에
오래 묵은 불씨 하나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름,
끝내 부르지 못한 마음이
계절을 건너며 붉게 익어갔다
낮에는 아무 일 없는 얼굴로
사람들 사이를 걸었지만
밤이 오면
몸속 어딘가에서
작은 별들이 부딪히는 소리,
붉은 파문이 번지는 소리가 들렸다
더는 숨길 수 없었다
사랑은 감추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금이 가는 일이라는 것을
어느 저녁
나는 조용히 나를 깨뜨렸다
붉은 알갱이들이
후두둑 세상으로 쏟아졌다
상처인지 고백인지 모를 빛들이
어둠 위에 흩어지고
그때 알았다
가장 아픈 순간이
가장 아름답게 익는 순간이라는 것을
그대여
혹시 그대 창가에
붉은 별 하나 떨어지거든
그것은 내가 끝내 품지 못한
사랑의 마지막 열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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