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麗松수필집

닳아간다는 것의 기쁨

작성자麗松 이상원|작성시간26.06.18|조회수1 목록 댓글 0

닳아간다는 것의 기쁨

 

새것은 언제나 반짝인다.

깨끗한 공책, 빳빳한 책, 윤기가 흐르는 필기구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새것보다 오히려 낡은 것들에 더 눈길이 간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빼곡하게 채워진 노트가 그렇다.

그 안에는 하루하루의 고민과 배움, 생각과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러 번 펼쳐 보느라 모서리가 해지고 종이가 부풀어 오른 책도 마찬가지다.

그 책은 단순히 읽힌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과 함께 살아온 흔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낡고 닳는다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꾸준히 사용하고, 자주 들여다보고, 오래 곁에 두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낡아진 물건들은 우리에게 묘한 만족감을 준다.

그 안에는 시간의 무게와 정성이 함께 스며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도 그렇다. 무언가에 열중하며 살아온 사람의 손에는 세월의 흔적이 남고, 마음에는 경험의 깊이가 쌓인다.

책이 닳아가는 동안 지식이 쌓이고, 노트가 채워지는 동안 생각이 자란다.

어떤 것이 낡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내 삶의 한 부분이 충실하게 채워지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닳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열심히 살아서 닳아가고, 사랑해서 닳아가고, 배우고 익히며 닳아가는 삶을 꿈꾼다.

그렇게 충실하게 사용되어 낡아진 것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오늘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작은 기쁨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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