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만 비밀이다
화면 속 자동차가 쌩쌩 달린다.
“형, 나 좀 하자.”
형은 못 들은 척 화면만 봤다.
“아까도 한 판만 한다고 했잖아.”
내가 앞으로 바짝 다가가자 형이 몸을 홱 돌렸다.
“보지 마. 집중 안 돼.”
내 말엔 대답도 하지 않고 다시 몸을 돌렸다.
“약속 안 지킬 거야?”
형이 인상을 쓰면서 날 째려봤다.
“왜 자꾸 보채?”
“같이 하자 해놓고 형만 하잖아!”
내가 핸드폰을 잡으려 하자 형이 몸을 홱 돌렸다.
“건드리지 마!”
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같이 하기로 했잖아!”
나도 모르게 소릴 질렀다.
“쉿! 아빠 깨면 어쩌려고 그래 너! 핸드폰도 내가 가져왔는데, 왜 난리야?”
형이 이를 꽉 물고 속삭였다. 나는 순간 움찔했다.
“그렇다고 혼자만 해?”
“그럼 네가 가져오든가.”
“나 그럼 엄마한테 이른다.”
“너 치사하게 자꾸 이럴래?”
“어제도 그랬잖아!”
“또 그 얘기야?”
형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보드게임 내가 이기니까 밀어버렸잖아!”
“슬쩍 건드린 거거든.”
“형은 맨날 자기만 이기려고?”
“너는 맨날 징징대고.”
“누가 징징대? 나한테 지기 싫어서 그런 거지?”
“아니 거든!”
“핸드폰 줘!”
내가 달려들자 형이 내 어깨를 밀었다.
“하지 말라고!”
“내 차례라고!”
“시끄러워 아빠 깨잖아.”
“지금까지 잠도 안 자고 왜 싸우는 거야?”
방문을 홱 열고 엄마가 들어왔다. 형이 얼른 핸드폰을 서랍 속에 감췄다.
“엄만 노크도 안 하고 막 들어오면 어떡해요?”
“어때? 엄만데.”
“아무것도 아니에요.”
형이 얼른 얼버무렸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싸우는 소리 다 들었는데.”
“별일 아니라니까요. 엄마는 왜 왔는데요?”
형이 얼버무렸지만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낮에도 그랬잖아. 엄마가 준 피자 형이 다 먹어 버렸잖아!”
“네가 안 먹으니까!”
“내 거였거든!”
“이름 쓰여 있었어?”
“아! 그만해! 네가 다 먹는 바람에 지성이가 속상해했잖아.”
“어제 보드게임도 형이 질 것 같으니까 엎어 버렸어요.”
“아니거든!”
“넌 형이 되가지고서 동생한테 왜 그래?”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형이 밖으로 나가면서 내 등을 세게 밀었다.
“왜 때려!”
“너 진짜 싫어! 너랑 안 놀아.”
“나도 형 싫어!”
“너 이리 와. 엄마랑 얘기 좀 해.”
형이 나가버리는데 엄마가 따라 나가셨다. 나는 침대로 가서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자꾸만 눈물이 났다. 형은 자꾸 나를 무시하는데, 내가 속상한 건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다. 그게 더 속상하다. 계속 생각나 자꾸만 눈물이 난다.
“너 자꾸 이런 식이면 이제 너랑 안 놀아.”
어느새 형이 들어와 협박을 하고 서랍 속에 감췄던 핸드폰을 꺼내 가지고 나가버렸다. 두고 봐라. 나도 내일은 아빠 거 가져와서 형 몰래 혼자서만 할 거다.
“엄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형이랑 같이 안 가고?”
형이 들을까 봐 얼른 나와서 가 버렸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혼자 집으로 왔다.
“지성아, 나와서 저녁 먹어.”
“네.”
밖으로 나오니 식탁에 아빠와 형이 앉아있다. 형은 쳐다보지도 않고 우걱우걱 밥만 먹고 있다. 나와 안 놀아준다더니 정말 그럴 건가 보다.
식사 후 방으로 돌아와 숙제를 했다. 형이 먼저 잠들기를 기다리는데 계속 뭔가를 하고 있다. 나는 안 쓰던 일기를 썼다.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형이 조용해 쳐다보니 어느새 누워 자고 있다. 형이 잠들었나 오락가락 얼굴에 손을 대봤다. 반응이 없다. 잠든 것이 분명하다. 나는 살며시 밖으로 나왔다.
엄마가 날마다 애지중지 가꾸는 거실은 카페처럼 아늑하다. 공기정화기 소리만 ‘쉬이~익 쉬익’ 어둠 속을 흐르고 있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아빠는 고개를 옆으로 숙인 채 잠이 드셨다. 탁자 위에 아빠의 핸드폰이 눈에 띈다. 검은 화면 위로 알림 불빛이 한 번 깜박였다. 그 빛과 동시에 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들킨 줄 알았다.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었다. 바닥이 차가웠다. 혹시라도 아빠가 깰까 봐 숨도 조심조심 쉬었다. 그때 아빠가 “후우~” 하고 숨을 크게 몰아 쉬셨다. 나는 동시에 굳어버렸다. 아빠는 잠시 후 다시 잠이 드셨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탁자 위로 손을 뻗었다. 핸드폰에 손끝이 닿는 순간 ‘부르르~’ 진동이 울렸다. 너무 놀라 두 손으로 감싸 쥐며 얼른 아빠를 쳐다봤다. 아빠는 잠깐 몸을 뒤척였지만, 다시 잠드셨다. 소파 뒤로 등을 대고 쪼그려 앉아 화면을 켰다.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났다. 얼른 밝기를 낮추고 소리도 줄였다.
‘조금만 하고 자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늦은 밤까지 나만의 모험을 계속했다.
다음 날, 여느 때보다 아빠가 일찍 퇴근하셨다.
“참! 오늘 세금은 다 냈어?”
저녁 식사 중 아빠가 엄마께 물으셨다.
“네, 오전에 은행 간 김에 냈어요.”
“잘했네. 그런데 이상해.”
“뭐가요?”
엄마가 궁금해하며 물어보셨다.
“이달에 핸드폰 요금이 10만 원 가까이 나왔어. 아무리 많이 나와도 5, 6만 원이 넘지 않았는데 말이야.”
나는 깜짝 놀라 형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달에는 별로 쓴 것도 없는데.”
“개인용 맞아요? 잘 알아본 거예요?”
엄마도 많이 놀라신 것 같다.
“누군가 썼으니까 나온 거겠지. 혹시 너희들이 아빠 핸드폰 몰래 쓴 거 아니야?”
“얘들이요? 설마요? 그거 가지고 놀 시간도 없었는데요.”
엄마가 우리 편을 들어줘서 고마웠지만, 아빠를 쳐다볼 수 없었다. 아빠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형의 얼굴을 쳐다봤다. 형은 아무 표정 없이 밥만 먹고 있더니,
“우리가 언제요? 아니에요.”
“통신사에 이메일로 사용내역서 보내달라고 했으니 메일 오면 알게 되겠지.”
형이 오리발을 내미는데 어떡하지? 저녁 식사가 끝나고 형이 방으로 들어가자 나는 재빨리 따라 들어갔다.
“형! 어떡해?”
“뭐가?”
“아빠 핸드폰 요금이 많이 나왔다잖아? 들통나면 어떡해?”
“그게 뭐?”
“우리가 그동안 아빠 개인용 핸드폰으로 몰래 게임했잖아?”
아빠 핸드폰은 회사 일로 쓰는 업무용과 개인적인 일로 사용하는 개인용 두 개가 있다.
“들키면 할 수 없지 뭐. 그런데 무슨 요금이 그렇게 많이 나와? 우리가 얼마나 했다고?”
말이 끝나자 형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너 때문이야. 네가 맨날 핸드폰 달라고 뺏었잖아.”
“뭐라고? 맨날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자기가 더 했으면서.”
형 말에 어이가 없었다.
“같이했으면서 그렇게 말하기야?”
“아~ 몰라, 몰라.”
형은 자기 침대로 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버렸다. 난 어이가 없었다. 어떡하지? 아빠는 한번 화나면 정말 무서운데, 걱정이 점점 파도처럼 밀려와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형은 정말 치사하다.
“지성아! 일어나. 밥 먹어야지. 주말이라고 지금까지 자면 어떡해?”
걱정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지성아! 빨리 나와, 빨리.”
엄마가 일어나라고 성화를 하셨다.
“네~ 알겠어요.”
엄마는 우리 일에는 걱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엄마가 좀 거들어주면 좋겠는데 겁이 난다. 아빠께 솔직히 말하면 용서해 주실까? 시간은 자꾸 가고 있다. 밖에 나가면 아빠가 계실 것이다.
“뭐 해? 빨리 나와.”
형이 씻고 들어왔다. 그런데 얼굴이 붓고 눈이 토끼 눈처럼 새빨갛다. 형도 잠을 못 잤나 보다. 슬며시 밖으로 나와 화장실로 가는데, 아빠가 소파에 앉아 계셨다. 순간 나는 자석에 끌리듯 아빠 앞으로 갔다.
“아빠,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응? 무슨 말?”
아빠가 빙그레 웃고 있다.
“아빠, 죄송해요. 사실은 제가 게임을 했어요. 잘못했어요.”
“뭘 잘못해?”
“저희가 아빠 주무실 때, 몰래 게임을 했어요. 그래서 요금이 많이 나온 거예요.”
아빠가 또 웃는다. 겁이 났다.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할게요.”
“너도 잘못 한 건 아는구나?”
“네.”
“아까 형이 솔직하게 이실직고했어. 형이 하잖다고 같이 했어? 형이 하자는 일이 나쁜 짓인 걸 알면서도 따라 한 거야? 형은 야단쳤지만, 너희가 서로 챙겨주는 마음이 기특해서 용서해 주는 거야. 앞으로는 그러지 마. 알았지? 형은 야단맞고 울었어.”
머리가 멍해졌다. ‘형이 벌써 말했다고? 어제는 딱 잡아떼더니……, 형도 밤새 무서웠나?’
“지성이, 알아들었냐고?”
“네? 네.”
“형도 많이 반성했어. 형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더라. 그래서 용서해 준 거야. 하지만 방법은 나빴어. 먼저 아빠한테 허락을 받았어야지.”
형이 나한테 다 뒤집어 씌울 줄 알았는데, 이상하다.
“앞으론 또 그런 짓 하면 안 돼. 알았지?”
“네.”
“둘 다 얼굴은 왜 그래?”
식탁에 앉으니 엄마가 묻는다.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 밥 먹고 아차산 둘레길 걸을까?”
아빠가 말을 돌리셨다.
“네~!”
식탁으로 가면서 형을 쳐다봤다. 아까는 빨갰던 눈이 지금은 괜찮아졌다. 여전히 우걱우걱 밥을 먹으면서 나를 보고 ‘씩~’ 웃는다. 나도 따라 웃었다. (2026.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