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수록 모르는 것이 많고 알수록 궁금한 것이 더 많으니 독서는 어느새 하루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상이 되었다.
내륙문학동인이 출간한 두 권의 책이 도착했다. 이석우 평론가의 《천재시인 정지용 평전》과 김정옥 수필가의 《빈칸을 채우는 시간》
새벽에 읽는 책, 오전에 읽는 책, 귀가 후 읽는 책, 잠자리에서 읽는 책이 모두 다르니 완독까지는 대개 한 달이 걸린다.
우선 정지용과 관련된 팔봉 김기진 부분을 읽고 수필은 책제목 따라 그 의미를 찬찬히 읽으며 앞으로 내 삶의 빈칸들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궁리한다.
#이석우, 《정지용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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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지용을 일본 문단의 시인 반열에 오르게 한 시작품은 「카페·프란스」이다. 유학 초기 식민지 청년의 현실 부정 의식이 그대로 반영된 작품이다.
"나는 자작의 아들도 아무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희어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청년의 분노와 비애감이 충만되어 있다. 지용을 일거에 시인의 반열에 오르게 한 이 작품은 실상 1924년 6월 《개벽》에 발표된 김기진의 시 「백수의 탄식」과 직접적인 영향 관계에 놓여 있다.
김기진의 이 시는 60년 전 러시아 청년들이 부르짖던 우나로드(V·Narod)의 민중운동을 묘사한 것으로 운동의 주체인 청년들의 무기력하고 이율배반적인 백수를 꼬집고 있다. 실제 김기진이 "너희들의 손이 너무도 희고나!" 하고 탄식하는 부분을 지용은 "남달리 손이 희어서 슬프구나!"라고 표현한다. 「카페·프란스」는 민중운동을 전개해야 할 청년 지식인 자신이 카페나 드나들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퇴폐에 대하여 개탄하고 있는 작품이다.(p.66)
#김정옥,《빈칸을 채우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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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빈칸 채우기'의 연속이 아닐까. 여러 개 수 중 하나의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노심초사하며 찾은 답이 틀린 답 같을 때가 많았다. 나와 너무나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옳게 사는 것일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삶을 수월하게 살고 싶은 마음으로 철학관에 찾아간 적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그 사람도 뾰족한 방법을 알려주지는 못했다. 이제 내가 가는 길이 맞으면 맞는 대로 혹 틀리면 틀린 대로 세상살이 빈칸이나 착실히 채우면서 살아야겠다.
오늘도 내 앞에 닥친 멍석만 한 칸을 채우느라 애를 태운다. 스도쿠 게임처럼 한쪽을 맞추면 다른 쪽이 맞지 않는 형국이 자꾸 벌어진다. 그럴 때 슬쩍 열어볼 답안지가 있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으니, 어려운 수학 문제를 앞에 둔 것처럼 막막하다. 이 궁리 저 궁리 하며 머리를 쥐어짜도 별 뾰족한 수가 없어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하다 하다 영 풀리지 않을 땐 잠시 빈칸으로 내버려둬야겠다. 비록 지금은 그 칸을 채울 수 없더라도 언젠가 다부지게 채워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오늘이라는 빈칸을 채운다. 내일은 또 내일의 빈칸을 채울 것이다. 하루하루 빈칸을 채우는 시간 속에서 생이 점점 무르익어간다.(p.239)
※시간 절약을 위해 다양한 채소 피클을 만들었다. 아침 상차림이 간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