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무슬림들이 믿는 알라는 전혀 다른 신이다 창21:14-21
25년 전 9월 11일 전 세계는 뉴욕에 있는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국방부 건물에 대한 비행기 테러를 통해 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진 사건을 일으킨 테러범들이 이슬람교를 믿는 탈레반이라는 것에 경악을 금치못합니다. 그 '탈레반'이란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에 세워진 이슬람 신학교에 다니던 학생들 한데서 유래했다. 탈레반은 이슬람교 율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며 젊은이들을 데려다 알라를 위한 신의 용사로 싸우게 한다는 이름하에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테러를 일으키는데 웬만한 나라정도는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갈 정도입니다. 실제로 2021년 8월 31일 미군 철수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진행되면서 아프가니스탄은 정규군 30만명이 탈레반 7만명과 싸움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채 며칠만에 탈레반의 수중으로 들어간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슬람교의 골수분자인 탈레반들은 특히 기독교들을 심히 혐오하는데 그들은 기독교 선교사들을 참수하기도 하였으며 그리스도인들을 총살하는 영상도 내 보내고 있으면서 그들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고 있다.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탈레반을 탄생시킨 무슬림이라고 하는 이슬람교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이슬람교도의 수는 대략 20억 내외로 지구촌 4사람 가운데 한 명은 이슬람교도인 셈이다. 해마다 라마단이 시작되면 이슬람교도들은 한달 내내 동이 틀 무렵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음식·술·성관계를 금하도록 계율로 정해두었는데 이 라마단 중에서 가장 큰 행사는 2백만명 정도의 무슬림들이 메카에 도착해서 흰 천을 두르고 메카사원의 중앙에 있는 카바신전 주위를 시계반대 방향으로 도는 행렬이야말로 지구촌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무슬림들이 라마단 때 메카순례 즉 하지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1. 메카성지순례 (하지)
무슬림들은 라마단이 되면 한 달 동안 라마단 절기를 지키는데 그들 중 일부는 메카에 가서 닷새 동안 성지순례 즉 하지를 지킨다. 성지순례자들이 메카에 도착하면 흰 천을 두르고 메카 대사원 중앙에 있는 카바신전을 반시계방향으로 7바퀴 도는 것으로 시작한다. 카바 신전 주위를 7번 돌고나면 카바신전 벽에 붙어 있는 검은 돌에 입맞춘다. 석전 참배를 마친 순례객들은 이스마일의 생모인 하갈이 물을 구하러 다녔다는 고행을 경험하고자 인근 사파 언덕과 마르와 언덕 사이 맨발로 450m를 7번 오가는 '왕복 의식'을 치른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창21장14절에는 하갈이 아브라함의 장막을 떠나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였다가 15 부대에 물이 떨어지매 16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죽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고 울었을 때 17 천사가 하갈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19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열어주시매 우물을 보고 부대에 물을 채워 이스마엘에게 마시게 하였다고 기록했다. 실제로 브엘세바에서부터 메카까지 직선거리로 1000km인데 순례객들이 하지때 메카에 와서 하갈이 우물을 발견한 곳이라고 하면서 여기에서 하갈이 물을 부대에 떠서 이스마엘에게 주었던 이런 고난의 행사를 한다는 것은 성경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은 메카 외곽에 있는 성지들인 라흐마 산과 무즈달리파산, 메카에서 동쪽으로 8㎞ 떨어진 미나를 방문하한 이후 미나계곡에서 숙영하고 무함마드의 마지막 설교장소였다는 아라파트 산에서 해질녘까지 기도한다. 다음날은 아브라함의 희생제를 기념하여 희생제를 바치고 또 순례객들은 무즈달리파산에서 작은 돌멩이를 몇 개 주운 뒤 3일 동안 미나계곡 근처 자마라트에서 악마를 추방하는 돌 던지기를 하는데 악마를 상징하는 돌기둥 벽에 돌을 던지는데 이 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압사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영적인 존재인 악마에게 돌을 던진다고 악마가 피한다는 것일까? 그들 행사를 보면 모두가 비현실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비현실속에서도 그들은 생애 한번이라도 이 하지에 참여하는 것을 생의 소원으로 여기는데 불행하게도 2015년 9월24일에도 성지순례(하지) 기간 밀집한 순례객들이 미나 계곡에서 악마를 추방하고자 돌기둥 벽에 돌을 던지는 과정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해 1천500명 이상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런 하지기간 중에는 해마다 압사사고가 그치지 않는 이유는 라마단 기간 중 대부분 노인순례객들은 생각하기를 이런 압사사고는 신을 위한 순교로 믿기 때문에 전혀 두려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2. 이슬람교의 탄생 배경
바울순교 후 64년 레오 황제부터 313년까지 근 250년 동안 박해 중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목숨을 걸고 복음 전하면서 교회는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공인이 선포되자 교회는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교리적인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는데 사도바울이 3차 전도여행에서 세운 에베소교회가 431년 에베소 3차 공의회를 통해 마리아를 예수의 어머니가 아니라 하나님의 어머니로 결정하면서 교리적 변질을 가져와 로마 카톨릭이란 초대형 이단이 탄생된 것이다. 이렇게 변질된 카톨릭 교회가 항상 염두에 두었던 것은 교황청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서 세계 모든 종교의 통합을 이루어 로마 교황으로 하여금 모든 종교들을 관장하는 승원장 즉 법황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북아프리카 지방에 수도원들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수도원하면 장차 성직자가 될 사람들이 수도하는 곳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로마카톨릭교가 전 세계 지배를 위하여 만든 로마교회의 정보 수집을 위한 지부였다. 당시에 로마카톨릭교에서는 큰 도시에서 동떨어진 작은 부족들의 마을에 수도사들을 침투시켜 장차 한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 아랍의 부족들을 하나로 통일시켜서 서로 싸우지 않는 나라를 건설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며 다니게 했다. 이러한 예언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었고 그러한 예언이 퍼져 나간 후로는 부족들 간에 전쟁이 있을 때 마다 언제 그러한 지도자가 나타날 것인지 고대하게 되었다.
(1) 마호메드 (무함마드) 등장
마침내 570년경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한 사람이 태어났는데 그가 후일에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은 바로 마호메드(아랍어로 무함마드)였다.
이슬람교가 출발한 아라비아 땅은 꾸라이시 족이 섬기던 알라(Allah)도 메카에 모셨던 360개 신들 중의 하나였다. 그 옛날 하갈과 이스마엘이 사라의 핍박을 피하여 아브라함의 집을 나온 후에 목이 말라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눈을 밝혀 주시니 물을 담아다 주니 소생했다는 성경의 이야기를 빗대어 그 우물 곁에 신의 집을 지었다고 전하여지는 그곳에 카바 신전이 세워졌다. 전설에 의하면 그 우물을 차지하기 위하여 부족간의 암투가 벌어졌는데 마침내 그 우물을 차지한 부족이 이스마엘 직계자손 중에 꾸라이시 부족인데 그 부족의 한 인물이 바로 마호메드의 할아버지 되는 압둘 무타리부라는 사람이다. 마침내 압둘 무타리부는 메카의 영웅이 되어 그들이 섬기는 신에게 기도하기를 만약 신께서 열 명의 아들을 주신다면 그 중에 한 아들을 희생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원했는데 수년 후에 압둘라라는 그 막내 아들 압둘라를 신께 희생제물로 바치는 대신 약대 100마리를 바치고 아들을 속량해 내었다. 바로 압둘라는 569년에 아미나라는 여성과 결혼한 후 대상들과 함께 길을 떠난 후 돌아오지 못했으나 아미나는 유복자를 임신하였는데 그가 바로 마호메드이었다. 아이가 태어나자 압둘 무타리부라는 아들을 잃었지만 대신 손자를 얻은 것을 신께 감사드렸다고 하는데 불행은 겹쳐서 오는 법인지 마호메드의 7살 되던 해에 그의 어머니 아미나가 죽고 2년 뒤에는 할아버지인 압둘 무타리부도 죽으면서 마호메드는 9살 때 부터 삼촌을 따라 낙타상인들과 동행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카톨릭 수도사가 나타나 마호메드의 등을 보여 달라고 해서 등을 보여 주었더니 그 수도사가 하는 말이 "이 표시는 예언자의 인이니 이 아이는 장차 위대한 일을 하게 될 것이오." 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교황청의 한결같은 소원은 예루살렘에 교황청을 세우는 것인데 로마 카톨릭은 이것을 반대하는 정통파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제거하는 그 일을 대신해 줄 그런 인물로 무함마드를 택하였는데 그가 전 아랍사람들을 한데 묶어 교황청에 복종하게 할 아랍인들의 영웅이 되는 것이다.
(2) 마호메드의 첫 결혼
마호메트가 25세이었을 때 교황청에는 이 모든 일을 추진할 한 여인을 택하였는데 바로 수도원에 있던 40세인 하디자로 그녀는 자신의 전 재산을 카톨릭 교회에 헌납하고 수녀원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던 어느 날 특수 임무를 받아서 세상으로 나와 마호메드 첫 번째 아내가 되었고 그녀의 사촌 오라버니는 바라카였다. 사탄은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이스마엘 자손들에게 복음이 들어가지 못하게 공작하고 있었고 카톨릭은 정통파 유대인들을 제거하는 일과 카톨릭 교리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을 제거하는 일에 마호메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이용당하고 있었다. 40세가 되던 어느 날 마호메드가 메카 외각에 있는 히라산의 동굴에서 환상을 보았다고 하는데 그 모든 환상은 언제나 바라카가 해석해주는 대로만 기록되는데 이 때 보았다는 환상들을 기초로 하여 오늘날 쿠란이란 책이 만들어졌다. 마호메트가 지시받은 교리는 아내 하디자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알려졌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슬람교는 전파되기 시작했다. 마호메드는 632년에 죽고 나자 교황청의 목적대로 아랍의 모든 유목민 부족들이 알라 신과 그의 선지자 마호메드의 이름 아래 통일되어 가면서 이슬람교는 더 번창하게 되었다. 그 때까지 아랍 사람들의 속내를 알지 못한 교황청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약속받고 재정을 지원했다고 한다. 첫째 정통파 유대인들과 카톨릭 교리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을 제거할 것. 둘째 어거스틴 수도사들과 로마 카톨릭 교회는 항상 보호할 것. 셋째 교황청을 위하여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카톨릭에 돌려줄 것 이었다. 이러한 조약이 체결되고 자금이 지원되자 이슬람교는 북 아프리카 전역을 휩쓸면서 통일시켰다. 로마 카톨릭은 종교재판이라는 무시무시한 방법으로 기독교인들을 학살하였고 이슬람도 동방에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무차별 죽이므로 그들의 조약은 성공을 거두는 것이기도 하였다. 세월이 흘러서 아랍사람들의 이슬람 군대는 마침내 로만 카톨릭에 진 빚을 갚아야 할 때가 도래하였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승리를 맛 본 아랍 사람들은 교황청의 군사력이 별것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교황청역시 아랍 사람들이 더 이상 교황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슬람지도자들은 교황청이 그렇게 손에 넣고 싶었던 예루살렘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성전 산을 자신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3. 예루살렘을 거쳐간 주인들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진 예루살렘은 3000년 전에는 여부스라는 가나안의 한 부족이 차지하고 있다가 이스라엘 왕 다윗이 탈환하여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삼은 후에는 솔로몬왕이 다윗이 건립한 하나님 제단 앞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립하였다. BC 935년 왕국이 이스라엘과 유대로 양분되자 예루살렘은 남방 유다의 중심지가 되었다. BC 586년 바빌론의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바빌론으로 끌고 간 유대인들을 BC538년 페르샤 고레스 왕이 귀환명령해 줌으로써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솔로몬 성전을 재건하였으나 옛 번영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1) 로마와 비잔틴제국 (BC 63-614)
BC 63년 폼페이우스가 거느린 로마 군이 이 도시를 점령하면서부터 예루살렘은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BC 37년부터 헤롯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함으로써 솔로몬 왕 이후의 번영을 잠시 되찾았다. 후에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투스가 70-71년에 이 도시를 공격함으로써 헤롯 시대의 번영은 사라졌고 그 후에도 유대인들의 독립전쟁으로 인한 반란때문에 135년 로마는 예루살렘에서 유대교도들을 추방시켰다. 그 후 로마가 그리스도교 국가가 되자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도의 순례자로 붐비었으며, 콘스탄티누스 1세(재위 306-337)의 명령으로 최초로 그리스도의 무덤이 있다고 하는 성묘교회가 건립되면서 예루살렘은 비잔틴제국하에서 유지되고 있었다. 한편 비잔티움은 콘스탄티누스(324~337 재위)가 330년에 이곳을 콘스탄티노플이라 명명한 후 수도를 옮겨온 뒤부터 동로마라는 새로운 영역의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2) 아랍 족속 (614-이후)
예루살렘은 동로마 즉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아오다 614년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호스로 2세가 비잔틴 제국군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 마호메드가 죽은 후 불과 7년째가 되는 638년 이슬람교로 단결한 아랍인이 이곳을 함락시키면서 이슬람교 국가의 일부가 되었다. 아랍인들은 솔로몬의 궁전이 있던 곳에 회교사원(알 아크사 마스지드)을 지었으며,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 압둘 말리크(재위 685-705)가 이곳에 바위 돔 사원을 건립하였다. 마호메드가 바라카의 지도를 받으면서 코란을 기록하는 중에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잡아 제사를 드렸다는 것을 이스마엘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다는 것들로 인해 이슬람교도들은 예루살렘을 성지로 존중하였다.
(3) 로마카톨릭- (십자군 전쟁)(1099-1229)
예루살렘을 차지하려고 그렇게 공을 드렸던 교황청은 여전히 예루살렘을 포기할 수 없어서 마침내 1099년에는 제1차 십자군전쟁을 일으켜 예루살렘을 침략하여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의 대학살을 자행하고 이 곳을 수도로 하는 예루살렘 왕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1187년 이집트에 아이유브 왕조를 건설한 살라딘이 이슬람 세력을 모아 예루살렘을 탈환한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친 십자군 원정이 있었으나 1229년 2월-1244년 8월까지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와의 화의로 이 땅을 회복한 적이 있을 뿐 성지 탈환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카톨릭의 군대와 아랍의 군대는 오래 동안 전쟁을 하게 되었고 수 세기가 흘러갔지만 예루살렘은 교황의 손에 넣을 수가 없었다.
(4) 시리아 맘루크 왕조(1299-1516)
맘루크 왕조(1250~1517)는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치했던 왕조로 아랍 사람들은 알라 신의 이름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마침내 터키가 아랍인들이 손에 넘어가면서 이슬람과 로마교황청의 수년에 걸치는 전쟁은 적당한 선에서 휴전을 하는 것이었다. 그 때 중재자로 나선 사람이 유명한 성 프란시스(Fracesco 1182-1226)였다. 그들은 공식 협상을 통하여 이른바 정교조약을 조인하고서 휴전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때 맺어진 그 조약에는 터키를 카톨릭에 양보하고 카톨릭 쪽에서는 레바논을 아랍영토로 인정할 것이며 또한 로마 카톨릭이 아랍국가에서 활동할 수 있는 한 회교도들 또한 아무런 간섭없이 이슬람 사원을 세울 수 있게 하는데 동의했다. 그리고 그들은 상호의 종교를 독립된 종교로 인정하고 공동의 적이 되는 정통파 유대인들과 카톨릭 교리를 반대하는 기독교를 공동의 적으로 간주하여 이를 제거하는 일에 공조하기로 약속하면서 조약이 체결되었다.
(5) 오스만 투르크 (1516-1920)
교황청과 아랍군의 정교 조약에 터키를 카톨릭에 양보하는 것으로 했지만 1299년 터키에서 일어난 오스만 1세가 세운 투르크 제국은 1453년에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이스탄불로 수도를 옮겼고 예루살렘 땅은 1516년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셀림 1세가 시리아 맘루크 왕조의 세력을 꺾고 예루살렘을 지배하게 되었다. 현존하는 성벽의 대부분은 술레이만 대제(1520-1566)시대에 축조된 것인데 오스만 터키도 쇠퇴하여 19세기 중엽 이 후 러시아-투르크 전쟁에 패함으로써 유럽 영토 대부분을 상실한 투르크제국은 1908년에는 케말파샤 아타튀르크는 1922년 11월 술탄 정부의 폐지를 선언함으로써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멸망하였다.
(6) 영국 (1920-1948)
한편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터키군이 패퇴하고 앨런비 장군이 거느리는 영국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으며 1920년부터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위임 통치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후 1차대전 중의 벨포어 선언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유대인들이 격증하였으며 1948년 5월14일에 이스라엘 국가로 독립하였다. 이에 따라 예루살렘은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동서로 양분되었다가 1967년 6월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전역을 차지했으나 아직도 예루살렘 성전 산에는 이슬람 사원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렇게 되고 보면 이제는 그 예루살렘이 교황청의 소유가 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슬람교의 소유가 되지도 못했고 교황청이 그렇게 없애 버리려고 했고 아랍사람들이 그렇게 박해했던 유대인들이 거의 다 차지하게 되었다.
4. 로마카톨릭과 이슬람과의 합작품 - 파티마성당
한편 1910년경에 포르투칼에서는 공산주의 운동이 나타나면서 공산주의자들은 포르투칼에서 카톨릭을 제거하려 하였다. 그래서 교황청에는 포르투칼에서 확산되는 공산주의를 막아 내려면 마리아가 나설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위대한 쇼를 준비한 사건이 마호메드의 딸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포르투갈 산타렘주 빌라노바데오렘에 있는 파티마 마을에서 일어났다.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13일이 되면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죄의 회개와 로자리오의 기도 (로자리오'란 가톨릭의 기도용 도구인 묵주의 이탈리아어 발음)를 권하였다는 유래 때문에 이 작은 마을에 성모마리아 출현으로 일약 순례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1930년 레이리아의 주교가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서 파티마의 로자리오 성모에 대한 숭앙은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지금은 파티마 대성당이 건립되어 해마다 600만명 정도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아 참배한다. 65m 탑위에 큰 십자가를 꽂은 것으로 유명하다. 카톨릭은 거짓을 진리로 바꾸어 사람들을 믿게 하는 능력이 탁월함을 볼 수 있다.
한편 공산주의자들의 카톨릭에 대한 위협은 포르트칼에서 뿐만 아니라 스페인에서도 혹독하였다. 스페인 정국은 혼란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을 때 교황청은 스페인의 카톨릭 교회로 하여금 반기를 들게 부추겼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카톨릭에 격분하자 교황청은 스페인을 철저하게 보복하였는데 이슬람 지도자들을 불러서 스페인 징벌을 요청하게 되었다. 교황청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인 이슬람 군대는 카나리 제도와 남부 스페인을 공격하면서 카톨릭을 거부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무차별 죽이는 것을 보고 전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하여 교황청은 스페인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버리고 스페인은 공산주의부터 해방시켰다고 거짓 선전을 했다. 이 전쟁을 전후로 교황청과 이슬람교 사이에는 피하지 못할 조약이 들어 있는데 그것은 절대로 교황청이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5. 유일신을 믿는 세계 3대 종교의 비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세 종교의 공통점은 유일신을 믿는다는 점이며 세 종교 모두 아브라함을 자기들 종교의 조상으로 섬긴다. 다만 유일신을 부르는 명칭이 유대교서는 처음 하나님이 모세에게 가르쳐준 이름은 '나는 나다'라는 의미의 '에헤으아세르 에헤으'였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감히 신의 거룩한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된다고 믿어서 유대인들은 신의 이름을 발음하려 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는 'YHWH'를 '야훼' 혹은 '여호와'라 부르나 한국 기독교에서 가톨릭은 '하느님' 개신교는 '하나님'이라 칭한다. 이슬람교는 '알라'라 부른다. 그러나 조금 깊이 들어가 보면 유대교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직접 신과 계약을 맺은 것을 믿는 유대민족의 종교인 반면 기독교는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종교로 받아들이면 누구나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 이보다 늦게 발생한 이슬람교는 예수를 구세주가 아닌 예언자로 인정하고 무함마드를 최후의 위대한 예언자로 보는 종교다. 세 종교의 경전을 보면, 유대교는 <구약성경>과 <탈무드>이며, 기독교는<구약>과 <신약>, 이슬람교는 <토라>와 다윗의 <시편> 예수 <복음서> 그리고<코란>이다, 그런데 이슬람교에서는 <코란>을 제외한 세 개는 후대에 일부 내용이 변절 되었다고 본다.
(1) 기독교 탄생
예수가 공생활을 시작한 이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통해 예수를 믿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면서 박해도 그만큼 심해졌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유대와 사마리아로 퍼졌다. 이때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사울은 예수가 다윗이 예언한 구세주이며 이사야 선지가가 예언한 그리스도 곧 메시아라고 선전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격분했다. 그는 다메섹 그리스도인들을 감옥에 잡아넣기 위해 산헤드린의 정식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바울은 기독교의 세계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는 복음을 이방 세계에 전하기 위해 구원의 의미를 '은혜'중심으로 설명함으로써, 유대 관습에 낯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데 성공했다. 복음서를 제외한 대부분은 사도바울이 기록한 말씀이다.
(2)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
유대교와 기독교가 극명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유대교는 유대인에 한정된 종교인 반면 기독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전 인류의 구원을 지향하는 보편적인 종교로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구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이런 율법을 지키면 구원하겠다'라는 약속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계명이나 율법을 지킬 수 없어 모두 하나님의 심판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약속 곧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구약>은 어떻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느냐였다면 <신약>은 예수가 하나님께서 보낸 그리스도 곧 구세주인가를 가르치는 안내서다.
(3) 이슬람교의 출현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570년 메카에서 태어날 당시 아랍 세계는 한마디로 사막에서의 혹독한 기후 때문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사는 유목민으로는 미신이 유행했다. 꾸라이시 족이 섬기던 알라(Allah)도 메카에 모셨던 360개 신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카바 신전도 처음부터 알라만의 신전이 아니라 아라비아 반도의 각 종족들이 섬기던 360개 우상들의 집합소였다. 무함마드는 자기가 받은 계시를 포교하는 데 나섰다. 그는 우선 아내에게 다음에는 열한 살 난 사촌 동생에게 그 다음에는 하인에게 그는 이처럼 주변 사람들로부터 시작해 613년 공적인 자리에서 가르침을 시작했다. 이슬람의 경전 코란은 무함마드가 알라로부터 받은 것으로 이슬람교는 이를 두고 가브리엘 천사가 전한 신의 말씀이라고 말한다. 이슬람교의 경전은 <토라>, <자브르>, <인질>, <코란>이다. <자부르>는 다윗의 시편이며 <인질>은 예수의 복음서다. 하지만 이 경전들은 유대교나 기독교의<성경>과는 많이 다르다. <코란>은 무함마드에 의해 외워져 추종자들에게 전달되었다고 하는데 <코란>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문맹자로 그는 글을 쓰거나 읽지를 못했는데도 무함마드는 알라의 계시를 외웠으며 그 추종자들이 <코란>을 기록했다고 한다.
(4) 이슬람교 성장배경
무함마드가 아들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자 이슬람교는 장로 중에서 칼리프를 선출했는데 초대 칼리프는 무함마드의 장인으로 첫 제자가 된 무함마드의 친구 아부바크르였다. 그는 무함마드가 50세때 첫 번째 아내가 죽자 자신의 딸인 6살짜리 아이샤를 내주어 9살 때 부터 합방을 하였다고 내준 인물이다. 그래서 이슬람에서는 10대 때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부바크로는 강대했던 동로마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후에 거대한 이슬람 제국 건설의 기반을 닦았지만 아쉽게도 칼리프 자리에 오른지 2년 만인 634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5) 이슬람교 종파들
뒤를 이을 아들이 없는데다 후계자 선정도 하지 않은 채 632년 무함마드가 세상을 떠나지 후계구도는 피로 얼룩졌고, 그에 따른 갈등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칼리프라는 선출제를 중요시하는 수니파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종주국이고 혈통을 중요시 하는 시아파는 이란의 종주국인데 이들 간의 갈등도 여기서 출발한다.
6. 이슬람교의 진실
610년 메카 주변의 히라 동굴에서 천사를 통해 알라(Allah)신의 첫 번째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 이후에도 그가 메카에 머물렀던 것이 순례의 시작이라고 본다. 무슬림들이 성지순례를 사모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평생 한 번 메카를 방문했을 때 카바 신전 자체를 신성시하는 이슬람의 문화가 시대에 따라서 점점 발전,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무리 비천한 신분의 무슬림일지라도 성지순례를 다녀오기만 하면 호칭이 바뀐다. 사람들은 그를 미스터 아무개 혹은 미스 아무개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지(Haji) 아무개 라고 부른다. 이것은 성직자가 아닌 무슬림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경칭이다. 이처럼 성지순례를 하는 것은 개인과 가문 뿐 아니라 마을의 명예와도 관련이 있는 행사이므로 무슬림이라면 모두가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메카에서 이교도들의 핍박이 심해지자 622년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메디나로 이주한 해가 이슬람의 원년이다. 메디나에 간 무함마드는 그곳에서 유대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향해서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무함마드는 자신도 같은 창조주를 믿는 선지자라고 주장했으나 무함마드가 말하는 알라의 계시가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 말씀과 심각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 유대인들은 그가 선지자라는 것을 믿지 않고 배척했다(꾸란15:6). 약18개월 동안 유대인들과 같이 예루살렘 방향으로 기도하던 무함마드는 메디나의 통치권을 장악한 이후 처음 맞는 해인 624년 초부터 기도의 방향을 메카로 바꿔 버렸다. 이는 자신을 배척하는 유대인들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적으로 여기겠다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 이슬람교의 조상인 아브라함에 대한 진실
메카 성지순례의 모든 행위들은 아브라함과 관련된 이야기로 만들어 놓았으나 꾸란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은 성경의 아브라함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성경의 아브라함은 데라의 아들로서 99세 때부터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바꿔주셨는데(창17:5), 꾸란의 아브라함은 아자르의 아들(꾸란6:74)로서 어려서부터 아브라함으로 불렸다(꾸란21:60). 성경의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예루살렘)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렸던 사람이었으나, 꾸란의 아브라함은 메카 부근에서 이스마엘을 번제로 드렸던 사람이었다(꾸란37:102-106). 성경의 아브라함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부근을 방문한 일도 없었는데, 꾸란의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함께 메카에서 카바 신전을 건축했다고 한다(꾸란2:127). 성경의 아브라함은 경전을 받은 일이 없는데, 꾸란의 아브라함은 모세처럼 경전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한다(꾸란87:18). 꾸란의 아브라함은 이교도들이 죽이려고 불속에 던졌는데 알라께서 건지셨다고 한다(꾸란21:68-69). 심지어는 양을 잡는 풍습도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던 일과 관련시켜 놓았고, 사탄에게 돌을 던지는 풍습도 아브라함과 관련시켜 이야기를 만들어 놓았다.
이는 꾸라이시 종족이 섬기던 알라(Allah)신을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의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로 믿게 하려고 예루살렘의 아브라함을 메카에 적용시킨 것으로,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꾸며낸 이야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사파와 마르와 언덕을 일곱 번 왕래하는 것은 자신들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이스마엘과 그의 모친 하갈이 물을 구하기 위해서 방황했던 언덕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하갈과 이스마엘이 사해바다 남서쪽에 있는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했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창21:14).
이슬람의 역사에는 젖먹이 이스마엘이 사막에서 목말라 하자 하갈이 물을 찾아 사파와 마르와 언덕을 일곱 번 왕래하면서 헤매고 있을 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발꿈치 혹은 날개로 땅을 파니 샘이 솟아 나왔다고 한다. 이를 잠잠(Zam zam) 우물이라고 부르는데, 카바 신전 동쪽 20미터 지점에 있으며 무슬림들은 이를 거룩한 물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경은 아브라함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았고(창16:16), 그를 내쫓은 것은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이 젖을 뗀 후이니(창21:8), 당시 이스마엘은 15세쯤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큰 아이를 젖먹이라고 부를 리가 없다. 성경에는 천사가 ‘없던’ 우물을 새로 팠다는 기록도 없으며, “주께서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이미 있었던’ 샘이 보였다고 말씀하고 있다.(창21:19). 성경의 이스마엘은 바란 광야에 살았으며 애굽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고 기록되었는데(창21:21), 이슬람의 이스마엘은 메카 부근에 살았으며 주르훔 족의 아랍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고 한다(Sahih Bukhari volume4, Book55, Number584).
성경 아브라함은 메카 쪽으로 간 일이 없고 가나안땅에서 이스마엘을 추방한 후 죽을 때까지 그를 다시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슬람의 역사에 보면 아브라함은 메카를 최소한 다섯 차례나 방문한 것으로 나와 있다.
첫째 방문: 하갈 모자를 추방할 때 메카까지 데리고 와서 버리고 갔다고 한다(Sahih Bukhari Volume4, Book55 Number584).
두번째 방문: 이스마엘을 번제로 드릴 때 메카 부근에 와서 번제로 드렸다고 한다(꾸란37:102-106).
세번째 방문: 카바 신전을 지을 때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같이 지었다고 한다(꾸란2:127).
네번째 방문: 이스마엘이 처음 결혼한 여자가 마음에 안 든다며 아브라함이 이혼을 명했다고 한다(Sahih Bukhari volume4, Book55, Number584).
다섯째 방문: 아브라함의 명령에 따라 이스마엘이 첫 번째 아내를 버리고 다른 아랍 여인과 결혼을 했더니 아브라함이 다시 와서 그녀를 보고 만족해하면서 축복했다고 한다(Sahih Bukhari volume4, Book55, Number584).
아브라함이 성경말씀대로 가나안 땅에 살았다면 직선거리로 1,000Km도 넘는 거리를 100세가 넘는 노구를 이끌고 어떻게 다섯 번이나 왕래하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을 진리로 믿고 있는 무슬림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오랜 세월 속아왔던 무슬림들에게, 죄 사함은 메카를 방문함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얻어지는 것임을 알려줘야 한다. 무슬림의 알라와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있어서 아브라함이 같으므로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이 다 아브라함에 직결되니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이 이슬람에선 알라이니 하나님과 알라가 같은 것 아닌가? 하는 신자들이 있다면 매우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에선 특수한 교리 타끼야라는 교리가 있다. 알라를 위하여서 이슬람을 위하여서 무함마드를 위하여서 코란을 위하여서 하는 거짓말은 괜찮다고 허용된 이런 교리가 있다. 그래서 코란도 거짓말로 번역을 해놓았다. 코란에 없는 것을 삽입하여 번역하기도 하고 있는 것을 빼고서 번역하기도 한다.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는 하루에 다섯 번이나 메카를 향해 기도하고 일년중 라마단 한달중에는 해가 뜬 중에는 금식하며 메카에 성지순례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종교적이고 너무나 열정적인 신앙생활을 한다고 보는 무슬림들이야말로 정말 거짓 종교를 진리처럼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그들이 믿는 알라는 전혀 다른 신이라는 것을 기독교인들이 먼저 알아야 하겠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지만 알라는 마귀의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