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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김사인

작성자솔하나|작성시간16.03.29|조회수145 목록 댓글 2

봄밤


김사인




  나 죽으면 부조돈 오마넌은 내야 도ㅑ 형, 요새 삼마넌짜리도

많던데 그래두 나한테는 형은 오마넌은 내야도ㅑ 알었지 하고

노가다 이아무개(47세)가 수화기 너머에서 홍시냄새로 출렁거

리는 봄밤이다.


  어이, 이거 풀빵이여 풀빵 따끈할 때 먹어야 되는디, 시인 박

무개(47세)가 화통 삶는 소리를 지르며 점잖은 식장 복판까

쳐들어와 비닐봉다리를 쥐여주고는 우리 뽀뽀나 하자고,

뽀뽀를 한번 하자고 꺼멓게 술에 탄 얼굴을 들이대는 봄밤이다.


  좌간 우리는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해야 혀 자슥들아 하며 용봉

탕집 장사장(51세)이 일단 애국가부터 불러제끼자, 하이고 우

리집서 이렇게 훌륭한 노래 들어보기는 츰이내유 해쌓며 푼수

주모(50세)가 빈 자리 남은 술까지 들고 와 연신 부어대는 봄밤

이다.


  십이마넌인데 십마넌만 내세유, 해서 그래두 되까유 하며 지

갑들 뒤지다 결국 오마넌은 외상을 달아놓고, 그래도 딱 한 잔

만 더, 하고 검지를 세워 흔들며 포장마차로 소매를 서로 끄는

봄밤이다.


  죽음마저 발갛게 열꽃이 피어

  강아무개 김아무개 오아무개는 먼저 떠났고

  차라리 저 남쪽 갯가 어디로 흘러가

  칠칠치 못한 목련같이 나도 시부적시부적 떨어나졌으면 싶은


  이래저래 한 오마넌은

  더 있어야 쓰겠는 밤이다.



※ 출처 : 김사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창비, 2006)

※ 김사인 시인

    1955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학과와 고려대 대학원에서

    했다. 1982년 동인지 『시와 경제』의 창간인으로 참여하며 시쓰기를

    시작했고, 시집으로 『밤에 쓰는 편지』가 있다. 제6회 신동엽창작기

    금(1987)과 제50회 현대문학상(2005)을 받은 바 있으며, 현재 동덕

    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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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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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근복 | 작성시간 16.03.29 서민들의 애환이 그대로
    사람 냄새 나는 멋진 봄밤입니다
  • 작성자기욱(基旭) | 작성시간 16.03.29 참 좋아하는 시인님중 한분인데... 김사인님의 좋은 시 솔하나님 덕분에 잘 감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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