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글]빈센트 반 고흐의 슬픔

작성자난정주영숙|작성시간13.03.27|조회수432 목록 댓글 2

                                        슬픔 Sorrow 1882.11.

                          석판화, 38.5 × 29cm / 반 고흐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재단), 암스테르담.

 

   전시 기간이 07.12.24~08.3.16인 서울시립미술관 '반고흐전'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슬픔>이다. 이 드로잉 작품은 마치 군계일학처럼, 수많은 유화에 앞장서서 빈센트 반 고흐의 내면을 투영하는 것 같다. 필자는 앞에 거론한 바와 같이 몇 년 전에 고흐의 슬픔을 몇 편의 시조 작품으로 만들어 (시조시학2002가을호97쪽, 2004봄호28쪽, 2005봄호146쪽)발표한 적이 있다. 그런 만큼 시조 전문지《시조시학》에 미술평론을 써 내는 일이 뜬금없는 일만은 아니라는 궁색한 변명을 당당히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작품 자체에 비난의 여지가 없는데도 그 화가의 사생활을 캔다는 것은 부당하다. 한 예술가의 작품과 그 사생활과의 관계는 아이를 분만하는 한 여자와 거기서 태어난 아이와의 관계와도 같기 때문이다. 태어난 아이는 관찰해도 무방하지만 그 어미의 치맛자락을 들추고 피가 묻었는가를 보는 일은 삼가야 한다.(위인전기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에서 발췌한 고흐의 말)" 그렇지만 빈센트 반 고흐의 <슬픔>과 같이 어떤 비장미가 우러나고 있는 작품 앞에서는 오히려 그 사생활을 캐고 들어가 분석하는 편이 옳게 여겨지기도 한다. 고흐의 작품<슬픔>이 아닌 그 작품을 하게 된 연유와 <슬픔>이란 작품 해설을 시조 두 편으로 형상화하자면 이러하다.

 

라인역 와인카페에서 두 눈길 맞부딪친

내 나이 서른두 살 운명의 어느 날 당신이

살갑게 물으셨지요, 울 엄니가 아시느냐고

 

꼭 내 모양 이대로 우리 두 남매 낳아놓고

여자 하나 들여와 뚜쟁이노릇 하는 아들, 당신의 아들 뒤에서 굳게 입 다물고 진두지휘하시는 우리 엄니 삶의 방식을

소설 속 무용담인양 늘어놓고 나는 웃었지요.

 

그러하여도 새끼 입 풀칠만은 성실해야겠기에

빌어먹을 세탁장 일을 하다하다 힘에 겨워, 헐수할수없어, 거리에 나가 사내를 후리고 후리다가, 엄니처럼 낳은 아이 다섯을 엄니에게 맡긴 채, 이제 또 여섯째를 임신한 나의 배를 다정한 눈길로 쓰다듬고서 당신이 나를 웃겼지요

모델이 되어달라며 정식제안 하시었지요.

낯선 사내에게 몸 파는 것보다야 나을 성싶어

다달이 테오가 부쳐주는 1백 프랑을 단 며칠 만에 써버려 쫄쫄 굶어도 굶어야만 작품이 나온다는 핑계로 친구들에게서 빈정거림만 당하던

빈센트, 당신의 사글셋방에 줄레줄레 따라갔지요.

 

뉴턴의 현신인 듯 느닷없이 외치시데요.

포도주와 독한 진과 나를 뒤섞어 칵테일로 마시던 당신이 만유인력을 본 듯이

윤할유, 섹스가 그림의 윤활유, 맞지, 맞지, 하시면서요.

 

개수통 앞에서 내가 접시를 닦고 있으면

담배를 채워 넣던 파이프를 내던지고서 당신이 재료비 1프랑의 그림을 시작하시데요. 나의 두 손에 튀어나온 힘줄, 주름살들을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 지우면서, 아름답다, 아름답다, 곱씹으면서요. 그래요 어쩜 우리 만남이 당신 말씀대로 발가벗은 두 영혼의 뒤엉킴일지도 몰라요.

이 슬픔 아름답다니, 생각수록 이상하지만.

                                                       ― 주영숙《모델-슬픔1》전문

 

 

하루 단돈 1프랑 짜리 모델이지만 정중하게

빨래구덕보다야 행복일 거라고 얼버무리고서 그날 아침엔 별스레 온몸 실핏줄을 가닥가닥 퉁기던 갓 끓인 커피 향에 그만 혼을 빠트리는 바람에 꿈인 듯 믿을 수 없게 건져 올린

드로잉, 마취한 고통, 리얼리즘 겨냥 작인데

 

늘어진 허벅지에 닿을락말락한 서러움

바람 빠져가는 풍선, 풍선 같은 젖가슴 아래 헐수할수없던 풀씨가 뿌리내려 날로 달로 자라나는 삭막한 자궁동산을 슬쩍 적시고

입맞춤, 볼썽사나운 발등의 심줄을 덮다가

말라빠진 어깨를 쓰다듬고 놓아버린 맥

등뼈 조금 아래에 나릿나릿 흘러내린 몇 가닥 머릿결을 두고 뼈마디 앙상한 손으로나마 가리려던 얼굴, 얼굴이 용인민속촌 무명화가의 손에서 도려지고 지져졌구나.

모서리 벗겨져버린 한 쪼가리 피나무

 

미슐레의 말을 곱씹고 되씹으면서도 그냥

가난은 남의 일이고 슬픔*은 아름다움의 사촌이라고 여물게 위장하였던 그의 배짱을 빌려 나도 당신에게 파란나비라는 닉네임을 지어드렸고 당신도 크리스틴이 고흐 대하듯 기뻐할

결재일, 원수의 카드 결재일이 사흘이나 남은 날

 

                                                          ― 주영숙《고백-슬픔․2》전문

 


    빈센트는 이렇게 그렸다. "늘어진 허벅지에 닿을락말락한, 바람 빠져가는 풍선 같은 젖가슴은 몇 개의 날금으로 표시한 굶주린 위장을 덮고 축 늘어졌다. 임신한 배를 슬쩍 감춘 허벅지, 그 왼다리 무릎에 울퉁불퉁한 오른손이 놓이고, 발등의 볼썽사나운 심줄은 툭 튀어나온 엄지발가락의 못 생긴 모습에 탈색되었다. 말라빠진 어깨를 쓰다듬다 놓아버린 맥인양, 등허리까지 헝클어지며 흘러내린 몇 가닥 숱 적은 머리칼. 뼈마디 앙상한 손으로나마 가리려던 얼굴(어쩌면 울고 있을지도 모를)을 귀 하나만 보이게 왼팔로 가려버렸다." 그리고 '슬픔Sorrow'이라는 제목을 좌대에 굵게 썼다.

 

    빈센트는 부지런히 인물을 그렸다. 개수통 앞에서 그녀가 접시를 닦고 있으면 담배를 채워 넣던 파이프를 내던지고서 모델료 일 프랑의 그림을 시작했던 것이다. 중요한 재료는 '사랑'이었다. 인생의 단맛이 다 빠진 것과 같은 그녀를 빈센트는 사랑하였다. 예술가가 '사랑' 없이 예술작품을 하는 일은 흔치 않다. 예술가가 마음속에 사랑을 가득 담는 일은, 이를테면 기관차에 연료를 채우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어쨌든 슬픔 자체를 사랑한 빈센트 반 고흐, 그는 모델의 두 손에 튀어나온 힘줄, 주름살들을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 지우면서, 아름답다, 아름답다, 곱씹으면서, 슬픔을 그리고자 하였다. 어쩌면 그들의 만남이 발가벗은 두 영혼의 뒤엉킴 이상일지도 몰랐다.

 

   창녀와 동거하면서 그녀와 결혼약속까지 했던, 그 창녀의 누드화에 '슬픔sorrow'이라고 진하게 적을 수밖에 없었던, 빈센트의 슬픔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자. 1882년 1월, 스물아홉 빈센트와 서른두 살 크리스틴(시엔 호르닉)이 처음 만난 곳은 라인역 와인카페였다. 그로부터 가난에서 비롯된 악순환이 전개된다. 크리스틴의 어머니 역시 창녀 출신으로서 남매를 낳았고, 남매는 창녀 어머니 손에서 자랐고, 장성하자 남동생은 거리의 여자를 데려와서 뚜쟁이노릇을 하였고, 크리스틴은 어머니처럼 거리의 여자로 살았다. 그러면서 각각 아비 다른(모를) 아이 다섯을 낳아 어머니에게 맡기고는 이제 또 여섯째를 임신한 몸으로 빈센트를 만난 것이었다. 가끔은 세탁장 일을 한다며 자신의 성실성을 내비치려는 크리스틴,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빈센트는 그녀가 너무 가여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빈센트의 사글세방에 따라갔다. 빈센트는 동생 테오가 다달이 부쳐주는 1백 프랑의 돈을 단 며칠 만에 써버리곤 했는데, 주로 화구를 사는 데에 소비하였다. 그것은 빈센트가 늘 쫄쫄 굶고 다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친구들은 그에게 '굶어야만 그림이 나올 거'라고 빈정대기도 하였지만, 며칠이나 계속된 굶주림을 면해보려고 친구의 아틀리에에 찾아갔다가 일쑤 한잔의 차도 대접받지 못하던 빈센트였지만, 그에게는 굶는 문제보다 모델을 구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더 비참했다. 그리고 크리스틴이 임신한 채로 몸을 팔기 위해 거리에 나 앉아있다는 사실이 못 견딜 정도로 비참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타협을 보아 하루치 모델료를 1프랑으로 계약하고 그녀와 동거하게 된 그는, 그런 인연으로 1882년부터 1883년에 걸쳐 크리스틴이나 그 식구들을 내내 그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화가 쪽이나 모델 쪽에서나 절망이 희망으로 작용한 경우에 속한다.

 

……절망이 가능하다는 것은 무한한 장점이다. 그러나 현실에 절망하는 일은 최대의 불행과 비참이고 최대의 타락이기도 하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그런데 절망의 고뇌는 인간이 죽을 수 없다는 바로 그것에 있다. 다시 말해 절망은 죽을병에 걸려있는 사람의 상태와 비슷하지만, 이 병자는 거기에 누워서 죽음 때문에 시달리고 있으나 죽을 수는 없다. '죽을 만큼 앓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죽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렇다고 삶에의 희망이 아직 거기에 있으리라는 것은 아니다. 아니, 죽음이라는 최후의 희망까지도 있을 수 없다는, 희망의 상실이다. 죽음이 최대의 위험인 때 사람은 삶을 바란다. 사람이 다시 더 두려워할만한 위험을 배워 알게 되면 그는 죽음을 원한다. 죽음이 희망의 대상이 될 정도로 위험이 증대된 그 때, 절망은 죽을 수 있다고 하는 희망까지도 잃는 것이다.

 

                        (키엘 케고르,《세계사상대전집5권》, 의명당, 1982, pp.21~22)

 

    위의 예문은 죽음보다 무서운 병이 바로 절망감이라고 한다. 인간의 삶이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죽음은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희망을 실현시키려면 부양가족이 없는, 즉 홀몸일 때에만 가능하다. 홀몸이 아니더라도 자기 스스로 '혼자'라고 판단되어야만 그 죽음이 '희망'에 속할 수 있을 것이다. 아비 다른(모르는) 아이 다섯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감은 차치하고라도, 또 다른 한 아이를 임신한 그녀로서의 절망감이란 오히려 사치였다. 새로 태어난 아들에다 어머니에게 맡겼던 자식새끼 중 딸 하나를 보태어 가난한 화가에게 빌붙어 살아야만 했던 그녀. 형언할 수 없는 그 비참함은 그녀에게서 죽음을 향한 희망마저도 애초에 꺾어버리는 절망이었다. '삶은 죽음보다 훨씬 어렵지만, 그래도 내 속으로 낳은 자식새끼들만은 굶기지 말아야 하고, 그래서 나는 죽을 수 없다'는 그것은 한편 보편성을 띤 모성애이기도 하다. 그 어떤 상황에서든 모성애는 숭고하다. 그녀에게 있어서 슬픔의 형상과도 같은 모성애와 화가의 예술혼이 만나 일체가 된다는 것은 지독한 아름다움의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러기에 얼굴표정도 나타나있지 않은 저 <슬픔>이 저토록 감상자의 발길을 붙드는 것이다. 그녀의 절망이 슬픔색깔이라는 예술작품 소재의 빛을 발하게 되었고, 빈센트의 정신세계가 바로 슬픔을 도구로 삼고 재료로 삼아 그림을 그리는 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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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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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가원관 | 작성시간 13.03.28 아름다운 죽음을 논할 때
    인생의 파노라마에 의미를 부여하고
    저만치 관조자로서 책임을 피하려할 때
    사치스러움이 오색창연함을 말하리....
    세월을 훌쩍 넘어 동행의 아픔....시심으로 피어납니다
  • 답댓글 작성자난정주영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3.29 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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