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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백발

Re: Re: Re: 제Ⅱ부 기독교 노인학의 성경신학적 기초

작성자펄군|작성시간26.06.08|조회수1 목록 댓글 0

 

부 기독교 노인학의 성경신학적 기초

4장 노인에 대한 성경적 이해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여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참소하지 아니하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디도서 2장 1–3절

 

 

1. 문제 제기: 노인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노인에 대한 정의는 노인학의 방향을 결정한다. 노인을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나이 많은 사람으로 정의하면, 노인학은 주로 노화, 질병, 돌봄, 복지, 경제적 부양의 문제를 다루게 된다. 반대로 노인을 사회적 경험과 지혜를 가진 어른으로 정의하면, 노인학은 세대 간 관계와 문화 전승의 문제를 다루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노인을 이 두 관점보다 더 깊은 자리에서 이해한다. 성경에서 노인은 단순히 오래 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고 그 경험을 후대에 증언하는 언약 공동체의 어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노인학은 먼저 성경이 노인을 어떻게 말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노인이라는 말의 의미는 문화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사용될 수 있다. 어떤 사회에서는 노인을 존경의 대상으로 여기지만, 어떤 사회에서는 생산성이 감소한 부담스러운 존재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교회는 노인에 대한 이해를 사회적 효용성이나 경제적 생산성에서 가져와서는 안 된다. 교회는 노인을 하나님의 창조, 섭리, 언약, 구속, 성화, 완성의 구조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여호와”의 칭호에 대한 해석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구약성경에서 “여호와”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언약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이름이다. 이 이름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계시며,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을 기억하시며,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분이심을 드러낸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에서 “여호와”는 구약적 명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신약의 완성된 계시 안에서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은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충만히 드러나신다. 그러므로 본 연구에서 “여호와”의 칭호는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할 언약적 이름으로 이해한다.

성경적 노인 이해의 핵심은 세 가지이다. 첫째, 노인은 하나님의 섭리를 오래 경험한 사람이다. 둘째, 노인은 그 경험을 후대에 전승해야 할 책임을 가진 사람이다. 셋째, 노인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화의 열매를 드러내며 교회 공동체를 권면하고 세우는 사람이다. 이러한 이해가 분명해질 때, 노인성도는 교회 안에서 단지 돌봄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증언하는 공적 성도로 세워질 수 있다.

 

 

2. 구약성경에서의 노인 이해

1) 노인과 연륜

구약성경에서 노인을 가리키는 대표적 용어 가운데 하나는 히브리어 자켄이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늙은”, “나이 많은”, “노년의”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이 용어는 육체적 연령과 노화의 상태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성경 안에서는 단순한 생물학적 노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노인은 인생의 긴 여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한 사람이며, 공동체 안에서 기억과 판단과 권면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다.[1]

성경은 노년의 육체적 약화를 부정하지 않는다. 나이가 많아지면 눈이 어두워지고, 힘이 약해지며, 죽음에 가까워진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등 성경의 인물들도 노년에 육체적 한계를 경험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노년을 단지 약함의 시기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년은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는 시기이다. 육체의 강함이 약해질수록, 성도는 자신의 생명과 시간을 붙드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더 깊이 배우게 된다.

따라서 구약성경에서 노년은 쇠퇴와 성숙이라는 두 측면을 함께 가진다. 육체적으로는 쇠하여 가지만, 믿음 안에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더 깊이 증언할 수 있다. 이것이 성경적 노년 이해의 중요한 특징이다.

2) 노인과 지혜

구약성경에서 노인은 지혜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욥기는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다”고 말한다.[2] 물론 모든 노인이 자동적으로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성경은 나이 자체를 절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살아온 노년은 지혜의 자리로 세워진다. 잠언은 백발을 “영화의 면류관”이라고 말하되, 그것이 “의로운 길에서 얻어진다”고 덧붙인다.[3] 이는 노년의 존귀가 단순히 나이에 있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길을 걸어온 삶에 있음을 보여준다.

성경적 지혜는 단순한 경험의 축적이 아니다. 세상 경험이 많다고 해서 곧 성경적 지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적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시작된다.[4] 특히 구약의 “여호와 경외”는 여호와라는 언약적 이름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을 두려움과 사랑과 믿음으로 인정하는 신앙이다. 그러나 이 “여호와 경외”는 신약의 완성된 계시 안에서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지혜는 인생 경험과 삼위일체 하나님 경외가 결합된 신앙적 해석이다.

노인성도는 단지 “내가 살아 보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신 삼위일체 언약의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이렇게 인도하셨다”고 증언하는 사람이다. 이 점에서 노인성도는 젊은 세대에게 매우 중요한 신앙의 교사이다. 젊은 세대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인생의 굴곡을 노인성도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다. 노인성도는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건강과 질병, 풍요와 결핍, 얻음과 잃음의 과정을 지나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지를 증언한다. 이 증언은 교리의 추상적 설명을 넘어 생활 속에서 검증된 신앙의 지혜가 된다.

3) 노인과 언약 전승

구약성경에서 노인의 가장 중요한 사명 가운데 하나는 언약 전승이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말고 자녀와 손자에게 알리라고 명령한다.[5] 또한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라고 가르친다.[6] 여기서 어른은 단순한 연장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와 언약을 기억하고 해석하여 후대에게 전하는 신앙의 증인이다.

언약 공동체는 기억의 공동체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역사를 단순한 민족사로 기억하지 않았다. 그들은 출애굽, 광야, 가나안, 왕정, 포로와 회복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배웠다. 이때 “여호와”는 언약하시는 하나님,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언약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러나 이 언약적 이름은 신약의 계시 안에서 성부께서 작정하시고, 성자께서 구속을 성취하시며, 성령께서 그 은혜를 적용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충만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노년 세대는 자신들이 경험한 역사를 하나님 중심으로 해석하여 후대에 전해야 했다. 이것은 오늘의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노인성도는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하여 후대에게 전하는 사람이다. 교회가 노인성도의 증언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교회는 세대 간 신앙 전승의 중요한 통로를 잃게 된다. 반대로 노인성도가 자신의 삶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후대에게 전할 때, 교회는 삼위일체 언약의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세대에서 세대로 배우게 된다.

4) 노인과 장로성

구약에서 노인은 장로성과도 연결된다. 장로는 공동체 안에서 판단, 권면, 대표, 지도, 증언의 역할을 감당했다. 물론 모든 노인이 곧 직분상의 장로는 아니지만, 노년의 연륜과 지혜는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는 중요한 요소로 인정되었다. 모세 시대에도 장로들은 백성 가운데 세워져 공동체를 대표하고 지도하는 역할을 감당하였다.[7]

장로성은 단지 나이에서 나오지 않는다. 장로성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 공동체를 위한 책임, 후대를 향한 권면, 말씀에 근거한 판단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성경적 노년은 권위를 요구하는 자리가 아니라, 말씀과 삶으로 공동체를 섬기는 자리이다. 노인성도는 자신의 연륜을 이용하여 지배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은사로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인성도의 권위는 제도적 강요로 세워지지 않는다. 성경적 존경은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동 발생하지 않는다. 노인성도가 여호와 경외의 지혜를 삼위일체 하나님 경외의 신앙으로 충만히 이해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말씀 안에서 절제와 경건의 본을 보일 때, 젊은 세대는 그에게서 신앙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성경적 권위는 사랑과 진리와 본에서 나온다.

 

 

3. 신약성경에서의 노인 이해

1) 노인과 교회의 경건

신약성경은 노인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경건의 본으로 세운다. 디도서 2장 1–5절은 늙은 남자와 늙은 여자의 신앙적 품위를 구체적으로 말한다. 늙은 남자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에 온전해야 한다. 늙은 여자는 행실이 거룩하고, 참소하지 아니하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고,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한다.[8]

여기서 바울은 노년의 신앙을 감정적 위로나 내세 소망으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노인성도의 구체적 품위를 말한다. 절제, 경건, 근신, 믿음, 사랑, 인내, 거룩한 행실, 선한 교훈은 노인성도가 교회 안에서 드러내야 할 성화의 열매이다. 노년은 자기중심적 고집이 강화되는 시간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품위를 드러내야 할 시간이다.

신약적 노인 이해는 성화와 분리될 수 없다. 성도는 구원받은 후에도 성령의 역사로 점점 거룩하게 되어 간다. 노년은 이 성화의 열매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시기이다. 따라서 노인성도의 삶은 젊은 세대에게 복음의 능력이 한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가 된다. 이 성화는 성부의 뜻, 성자의 구속, 성령의 적용 안에서 이루어지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다.

2) 노인과 권면

신약성경은 나이 많은 사람을 함부로 책망하지 말고, 아버지에게 하듯 권면하라고 가르친다.[9] 이것은 교회 안에서 연장자에 대한 존중과 질서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 존중은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서로를 대하는 신앙적 태도이다. 교회는 세대 간 경쟁의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를 가족으로 대하는 언약 공동체이다.

노인성도 역시 권면의 책임을 가진다. 디도서 2장에서 늙은 여자는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는 자로 제시된다. 이것은 노인성도가 단순히 침묵하거나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노인성도는 자기 경험을 말씀 아래 두고, 젊은 세대가 가정과 교회와 사회 속에서 믿음으로 살도록 권면해야 한다. 그의 권면은 잔소리가 아니라 말씀으로 해석된 지혜의 나눔이어야 한다.

노인성도의 권면은 특히 삶의 구체적 자리에서 힘을 가진다. 결혼생활, 자녀양육, 고난의 인내, 경제적 어려움, 질병, 상실, 죽음의 준비와 같은 문제들은 책으로만 배울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말씀 안에서 지나온 노인성도는 젊은 세대에게 실질적이고 신앙적인 권면을 제공할 수 있다. 이 권면은 자신의 경험을 절대화하는 말이 아니라, 삼위일체 언약의 하나님께서 그 경험 속에서 어떻게 은혜로 일하셨는지를 증언하는 말이어야 한다.

3) 노인과 목양적 본

신약 교회에서 장로는 양 무리를 돌보는 목양적 책임을 가진 자로 나타난다.[10] 여기서 장로 직분과 일반 노인성도를 완전히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장로성의 원리는 노인성도의 삶에도 적용될 수 있다. 노인성도는 교회의 연장자로서 젊은 세대에게 목양적 본을 보여야 한다.

베드로전서 5장은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주장하는 자세가 아니라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권면한다.[11] 이 원리는 교회 안의 모든 성숙한 성도에게도 중요하다. 노인성도는 자신의 연륜을 주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본을 보이는 방식으로 교회를 섬겨야 한다.

성경적 노년의 권위는 지배의 권위가 아니라 본의 권위이다. 노인성도는 말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권면할 수 있다. 그는 자기 의를 자랑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자랑한다. 그는 젊은 세대를 정죄하지 않고, 자신이 받은 은혜로 그들을 세운다. 이것이 신약적 장로성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4) 노인과 종말 소망

신약성경에서 노년은 종말 소망과 깊이 연결된다. 누가복음 2장의 시므온과 안나는 성전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던 노년의 신앙을 보여준다.[12]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으로 아기 예수를 보고 하나님의 구원을 찬송하였다.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다가 예수를 보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였다.

시므온과 안나는 노년이 영적 무력의 시기가 아니라,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고 증언하는 시기임을 보여준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젊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믿음에서는 깨어 있었다. 그들의 노년은 기다림, 기도, 예배, 증언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것은 오늘의 노인성도에게 중요한 본을 제공한다. 노년은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이 아니다. 노년은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었고, 또 어떻게 완성될 것인지를 바라보며 증언하는 시간이다. 성도는 노년에 이르러 더욱 분명히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을 바라본다. 그러므로 노인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로만 서지 않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과 완성을 소망하는 증인으로 선다.

 

 

4. 노인에 대한 일반적 정의와 그 한계

일반 노인학은 보통 노인을 생리적, 심리적, 사회적 변화의 과정에 있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는 노년기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노년에는 신체 기능이 약화되고, 사회적 역할이 변화하며, 심리적 적응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일반 노인학의 정의는 현실적 분석의 측면에서 일정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만으로는 기독교 노인학을 세울 수 없다. 생리적 변화만 강조하면 노인은 쇠퇴하는 존재가 된다. 심리적 적응만 강조하면 노년은 자기 안정의 문제가 된다. 사회적 역할만 강조하면 노인의 가치는 생산성과 관계망에 따라 평가된다. 이러한 관점은 노년의 궁극적 의미와 하나님 앞에서의 정체성을 충분히 밝히지 못한다.

기독교 노인학은 노인을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와 구속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며, 타락으로 인하여 죽음과 약함 아래 놓였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받고 성령 안에서 성화되며, 마침내 부활과 영화의 소망을 가진다. 그러므로 노년은 단순한 노화의 과정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섭리 안에서 해석되어야 할 신앙의 시간이다.

또한 일반적 정의는 노인을 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이해하기 쉽다. 물론 노년에는 돌봄이 필요하다. 교회는 노인성도를 실제로 돌보아야 한다. 그러나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노인성도의 사명을 지우지는 않는다. 노인성도는 돌봄을 받는 자이면서 동시에 교회를 돌보는 자이다. 그는 기도와 권면과 증언과 사랑으로 교회를 섬길 수 있다.

 

 

5. 노인에 대한 성경신학적 정의

성경신학적으로 노인성도는 단순히 나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그는 중생한 성도로서, 저주 아래 있는 몸의 약함을 경험하면서도, 하나님의 언약대로 이루시는 섭리를 통하여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신 삼위일체 언약의 하나님을 배워 알고 경외하며, 그 믿음을 후대에 전승하는 성숙한 언약 공동체의 공인이다.

이 정의에는 다섯 가지 요소가 포함된다.

첫째, 노인성도는 중생한 성도이다. 성경적 노인 이해는 단순한 자연인 이해가 아니다. 물론 모든 노인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으로서 존엄하다. 그러나 기독교 노인학이 다루는 노인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고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다.[13]

둘째, 노인성도는 약함을 경험하는 성도이다. 노년은 육체의 약함을 피할 수 없는 시기이다. 그러나 이 약함은 절망의 이유만은 아니다. 성도는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배운다. 바울이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고백한 것처럼, 노인성도는 자기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법을 깊이 배운다.[14]

셋째, 노인성도는 섭리를 배운 성도이다. 긴 세월을 지나온 노인성도는 인생의 수많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한다. 그가 믿음으로 자기 삶을 해석할 때, 그의 인생은 우연한 사건들의 모음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붙드시고 인도하신 섭리의 증거가 된다.

넷째, 노인성도는 언약을 전승하는 성도이다. 그는 자기 경험을 자랑하기 위해 말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인생을 어떻게 붙드시고 인도하셨는지를 후대에게 전한다. 이것이 성경적 노년의 공적 사명이다.

다섯째, 노인성도는 완성을 바라보는 성도이다. 그는 죽음을 향하여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과 새 창조의 소망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노년의 마지막은 허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화의 완성을 바라보는 자리이다.[15]

따라서 기독교 노인학에서 노인성도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노인성도란 삼위일체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안에서 한평생을 살아오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덧입고, 성령의 성화 사역 가운데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신 삼위일체 언약의 하나님을 배워 경외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후대에 증언하는 언약 공동체의 성숙한 공인이다.

이 정의는 노인을 복지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또한 노년을 쇠퇴의 시기로만 보지 않는다. 노인성도는 하나님 나라 안에서 존귀한 증인이다. 그는 자신의 약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증언하고, 자신의 지나온 세월을 통하여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언하며, 자신의 소망을 통하여 새 창조의 완성을 증언한다.

 

 

6. 4장 요약

본 장은 노인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구약과 신약의 증언을 따라 살펴보았다. 구약성경에서 노인은 연륜, 지혜, 언약 전승, 장로성과 연결된다. 노인은 단순히 나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후대에 전하는 언약 공동체의 어른이다. 특히 구약의 “여호와” 칭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언약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이름이며, 신약의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할 언약적 이름이다.

신약성경에서 노인은 교회 안에서 경건과 절제와 믿음과 사랑과 인내의 본을 보이며, 젊은 세대를 권면하고 교회를 세우는 성숙한 성도로 제시된다. 일반 노인학은 노년의 신체적·심리적·사회적 변화를 설명하는 데 공헌하지만, 노년의 궁극적 의미와 하나님 앞에서의 정체성을 충분히 밝히지 못한다. 기독교 노인학은 노년을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창조와 타락, 구속과 성화, 부활과 완성의 구조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신학적으로 노인성도는 하나님의 언약 섭리를 평생 경험하고,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신 삼위일체 언약의 하나님을 배워 경외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후대에 증언하는 성숙한 언약 공동체의 공인이다. 이 정의는 이후 기독교 노년생활의 실제를 해석하는 기초가 된다.

 

 

각주

[1] 창 18:11–12; 창 24:1; 수 13:1. 히브리어 zāqēn은 일반적으로 나이 많음과 노년의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나 성경 안에서 노년은 단순한 생물학적 상태를 넘어 공동체적 지혜와 전승의 의미를 가진다.

[2] 욥 12:12.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

[3] 잠 16: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4] 잠 1:7; 전 12:13.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있으며, 인생의 본분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데 있다. 구약 본문의 “여호와 경외”는 신약의 완성된 계시 안에서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한다.

[5] 신 4:9.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자녀와 손자에게 알리라는 명령은 언약 전승의 핵심 본문이다.

[6] 신 32:7–9. 이 본문은 역대의 연대를 기억하고 아버지와 어른들에게 물으라고 명령한다. 이는 공동체 안에서 어른 세대가 하나님의 섭리를 해석하고 전승하는 역할을 감당했음을 보여준다.

[7] 출 18:17–26; 민 11:16–17. 모세 곁에 세워진 지도자들과 장로들은 백성을 대표하고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는 역할을 감당했다.

[8] 딛 2:1–5. 바울은 늙은 남자와 늙은 여자의 신앙적 품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9] 딤전 5:1–2. 바울은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아버지에게 하듯 권면하라고 가르친다.

[10] 행 20:17, 28; 딤전 3:1–7; 딛 1:5–9. 신약의 장로는 교회를 돌보고 가르치며 감독하는 목양적 직분과 연결된다.

[11] 벧전 5:1–4.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권면하며,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영광의 관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12] 눅 2:25–38. 시므온과 안나는 노년의 기다림, 예배, 기도, 증언을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다.

[13] 요 3:3–8; 고후 5:17. 중생과 새 창조는 성도가 하나님을 알고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해석하는 근거가 된다.

[14] 고후 12:9–10. 바울은 약함 가운데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문다고 고백한다.

[15] 고전 15:42–44; 계 21:1–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2장 1–3항. 성도의 죽음과 부활은 노년을 허무가 아니라 완성의 소망 안에서 해석하게 한다.

[16] 마 28:19; 고후 13:1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장 3항. 신약의 계시는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밝히 드러내며, 구약의 여호와 칭호는 이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한다.

수정의 중심은 세 부분입니다. 첫째, 문제 제기에 “여호와” 칭호의 해석 원칙을 삽입했습니다. 둘째, 구약의 여호와 경외를 “삼위일체 하나님 경외”로 충만히 해석하도록 보강했습니다. 셋째, 노인성도의 최종 정의를 “하나님을 여호와로 배워 경외”에서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신 삼위일체 언약의 하나님을 배워 경외”로 정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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