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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Re: Re: Re: Re: 제6장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 안에서 본 노년

작성자펄군|작성시간26.06.08|조회수0 목록 댓글 0

 

업로드하신 제6장 원고를 기준으로, “여호와”를 삭제하지 않고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할 언약적 이름’으로 보존·확장하는 방향으로 개정했습니다.

 

6장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 안에서 본 노년

마태복음 633절과 기독교 노인학의 중심 구조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장 33절

 

 

1. 문제 제기: 노년은 무엇을 먼저 구해야 하는가

노년은 많은 현실 문제를 동반한다. 건강의 약화, 경제적 불안, 가족관계의 변화, 배우자와 친구의 상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교회 안에서의 역할 변화가 노년의 삶을 흔들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교회는 노인성도의 실제적 필요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기독교 노인학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노년의 문제를 무엇의 관점에서 해석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1] 이 말씀은 노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노인성도는 건강, 재물, 자녀, 안전, 죽음의 문제를 모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해야 한다. 노년의 불안은 대체로 “내가 무엇을 잃어 가는가”라는 질문에서 생긴다. 그러나 복음은 노인성도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시는가”를 보게 한다. 이것이 기독교 노인학의 중심 전환이다.

여기서 “하나님”이라는 이름과 “여호와”라는 칭호의 관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구약성경에서 “여호와”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언약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이름이다. 여호와는 언약을 세우시고, 언약을 기억하시며, 언약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이름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에서 이 칭호는 구약적 명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신약의 완성된 계시 안에서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은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충만히 드러나신다. 그러므로 본 연구에서 “여호와”의 칭호는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할 언약적 이름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가 속한 궁극적 질서이며, 하나님의 의는 그 나라가 세워지는 방식이다. 노인성도는 자기 힘으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덧입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믿음으로 누리며, 후대에게 그 나라와 의를 증언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노년은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신 삼위일체 언약의 하나님께서 성부의 작정과 섭리, 성자의 구속과 의, 성령의 적용과 성화 안에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를 배우고 증언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기독교 노인학의 중심 구조는 “노년의 문제 해결”이 아니라 “노년의 신학적 재해석”이다. 노년은 무엇을 잃어 가는 시기인가? 성경은 더 깊이 말한다. 노년은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더욱 분명히 바라보고, 하나님의 의가 아니고서는 설 수 없음을 더욱 깊이 고백하며, 그 은혜를 후대에 전하는 시기이다.

 

 

2. 하나님의 나라와 노인성도

1)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의 현실을 재해석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히 죽은 후에 들어가는 장소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통치의 질서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임하였고 장차 완성될 나라이다.[2] 성도는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으로 산다.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현실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노년은 세속적 관점에서 보면 사회적 역할이 축소되는 시기이다. 직업에서 물러나고, 경제활동이 줄어들며, 가정과 사회에서 영향력이 감소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노년은 주변화의 시간이 아니다. 성도는 직업적 지위에서 물러날 수 있으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신분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 노인성도는 여전히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며, 언약 공동체의 어른이며, 신앙 전승의 증인이다.

하나님 나라는 성도의 가치를 생산성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세상은 젊음, 효율, 성과, 소유를 가치의 기준으로 삼지만,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 받은 성도의 신분을 가치의 근거로 삼는다.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존귀는 그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지 않다. 그의 존귀는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에 있다.

2) 노인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기억을 가진 자이다

하나님 나라는 기억을 통하여 전승된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말고 자녀와 손자에게 알리라고 명령한다.[3] 이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기억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인성도는 이 기억을 품고 있는 자이다. 그는 자기 인생의 긴 세월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징계하시고 회복하셨는지를 경험하였다.

그러므로 노인성도는 과거를 회상하는 데 머물지 않고, 과거를 신앙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과거 회상은 자기중심적 추억이 될 수 있지만, 신앙적 기억은 하나님의 섭리를 증언한다. 노인성도가 자신의 삶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해석할 때,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인생담이 아니라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다스리셨는지를 보여주는 증언이 된다.

교회는 이 증언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젊은 세대는 노인성도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추상적 교리가 아니라 실제 인생 속에서 경험되는 통치임을 배운다. 노인성도는 말로만 “하나님이 다스리신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로 “성부께서 섭리하셨고, 성자께서 붙드셨으며, 성령께서 위로하고 성화하셨다”고 증언한다.

3) 노인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공인이다

노인성도는 개인적 신앙인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언약 공동체 안에서 공적 책임을 가진 성도이다. 하나님 나라는 개인 구원자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 받은 백성의 공동체이다.[4]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삶도 사적인 노후생활로만 축소될 수 없다. 그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공인이다.

공인으로서의 노인성도는 세 가지 사명을 가진다. 첫째, 그는 기억의 사명을 가진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않고 후대에 전해야 한다. 둘째, 그는 권면의 사명을 가진다. 말씀과 경험으로 젊은 세대가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도와야 한다. 셋째, 그는 찬송의 사명을 가진다. 노년의 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드러내야 한다.

이 사명은 직분자에게만 제한되지 않는다. 모든 노인성도는 각자의 은사와 형편에 따라 하나님 나라의 공적 증언에 참여할 수 있다. 어떤 이는 기도로, 어떤 이는 권면으로, 어떤 이는 삶의 본으로, 어떤 이는 신앙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교회를 세운다. 하나님 나라는 이러한 작은 증언들을 통하여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된다.

 

 

3. 하나님의 의와 노인성도

1) 노년은 자기 의의 한계를 배우는 시기이다

노년은 인간의 자기 의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배우는 시기이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능력, 계획, 성취, 도덕성, 헌신을 의지하기 쉽다. 그러나 긴 세월을 지나며 성도는 자기 안에 의지할 만한 것이 없음을 더 깊이 깨닫게 된다. 건강도 흔들리고, 관계도 변하며, 성취도 지나가고, 기억과 힘도 약해진다. 노년은 인간이 자기 의로 설 수 없음을 정직하게 배우는 시간이다.

성경은 사람의 의가 하나님 앞에서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며,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5]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의는 자기 인생의 공로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에서 나온다.

노인성도가 자신의 긴 신앙생활을 자랑할 때, 그는 쉽게 자기 의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참된 노년의 성숙은 “내가 오래 믿었다”는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고 나를 붙드셨다”는 감사이다. 하나님의 의를 아는 노인성도는 자기 경험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삶을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두고, 그 은혜를 증언한다.

2)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다

하나님의 의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윤리적 성취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의이다.[6] 그리스도는 성도의 의와 거룩함과 구속이 되신다.[7] 그러므로 노인성도는 자기 노년의 존귀를 자기 행위에서 찾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의에서 찾는다.

이 점은 기독교 노인학에서 매우 중요하다. 노인성도를 존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말은 그가 나이가 많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의롭다는 뜻이 아니다. 성경은 나이 자체를 의로 만들지 않는다. 백발이 영화의 면류관이 되는 것은 의로운 길에서 얻어질 때이다.[8] 그리고 그 의로운 길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의 안에서만 바르게 해석된다.

노인성도는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은 자로서 하나님 앞에 선다. 그의 신앙 연륜은 의의 근거가 아니라 은혜의 열매이다. 그의 봉사와 헌신도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감사의 표현이다. 그의 권면도 자기 의를 내세우는 판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누는 섬김이어야 한다.

3) 하나님의 의는 성화의 열매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의는 칭의의 은혜로 주어질 뿐 아니라, 성화의 열매로 삶 속에 나타난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성령의 역사로 점점 거룩하게 되어 간다.[9] 노년은 이 성화의 열매가 깊이 드러나야 할 시기이다.

디도서 2장은 늙은 남자에게 절제, 경건, 근신, 믿음, 사랑, 인내를 요구하고, 늙은 여자에게 거룩한 행실과 선한 교훈을 요구한다.[10] 이것은 노년의 신앙이 단지 내면적 확신이나 종교적 감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의를 덧입은 노인성도는 삶의 품위와 언어와 관계와 권면 속에서 성화의 열매를 드러내야 한다.

노년의 성화는 완벽주의가 아니다. 노인성도도 여전히 연약하고 죄와 싸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그리스도께 가지고 나아가며,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점점 더 온유하고 절제하며 감사하고 인내하는 사람으로 빚어진다. 이 성화의 열매가 교회 안에서 젊은 세대에게 강력한 신앙교육이 된다.

 

 

4. 하나님의 나라와 의의 통합: 노년의 양대언약 구조

1) 나라는 내용이고 의는 방식이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함께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가 속한 통치의 실체이며, 하나님의 의는 그 나라가 세워지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나라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언약의 내용이고, 의는 그 나라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언약의 방식이다.

노인성도는 이 두 가지를 분리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를 말하면서 하나님의 의를 떠나면, 노년의 신앙은 세속적 이상주의가 될 수 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의를 말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떠나면, 개인의 내면적 경건에만 머물 수 있다. 성경은 나라와 의를 함께 말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의로 하나님 나라에 속하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의를 삶 속에서 증언한다.

이 양대언약 구조는 여호와의 언약적 이름과도 연결된다. 구약에서 여호와는 자기 백성을 언약 안에서 부르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으로 계시되었다. 신약의 완성된 계시 안에서 이 언약의 하나님은 성부께서 나라를 작정하시고, 성자께서 의를 성취하시며, 성령께서 그 나라와 의를 성도 안에 적용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충만히 드러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는 삼위일체 언약의 하나님 안에서 통합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2) 노년은 나라와 의의 체험적 통합기이다

노년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체험적으로 통합되는 시기이다. 젊은 시절에는 교리를 배우고, 신앙을 훈련하며, 삶의 여러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면 지나온 삶 전체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어떻게 자신의 인생 속에서 역사했는지를 더 깊이 깨닫게 된다.

노인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평생의 섭리 속에서 경험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내 삶을 다스리셨다”고 고백한다. 또한 하나님의 의를 자신의 연약함 속에서 경험한다. 그는 “내가 의로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의 의가 되셨다”고 고백한다. 이 두 고백이 만날 때, 노년은 신앙의 깊은 성숙기로 나타난다.

3) 노년의 실체성과 은사성

노년생활의 두 가지 중요한 특성은 실체성과 은사성이다. 실체성이란 노인성도가 하나님 나라를 막연한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고백하게 되는 특성을 말한다. 그는 평생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언약대로 자기 백성을 다스리시는 분임을 배웠다. 그러므로 노년의 신앙은 이론적 지식에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현실성을 고백하는 생활신학으로 성숙한다.

은사성이란 노인성도가 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고백하게 되는 특성을 말한다. 건강도 은사이고, 약함도 하나님을 배우게 하는 자리이며, 가족도 은사이고, 상실도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통로이며, 지나온 모든 세월도 은혜의 선물로 해석된다. 이 은사성은 하나님의 의를 자기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선물로 아는 데서 나온다.

그러므로 노년의 실체성은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고, 노년의 은사성은 하나님의 의와 연결된다. 노인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현실로 믿고,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고백하며, 이 두 가지를 자신의 삶으로 증언한다.

 

 

5. 마태복음 633절과 노년생활의 재배열

1) 건강 문제의 재배열

노년의 건강 문제는 매우 실제적이다. 건강이 약해지면 생활의 독립성이 줄어들고, 마음도 위축될 수 있다. 그러나 노인성도는 건강을 최종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건강은 하나님 나라를 섬기기 위한 도구이며, 약함 속에서도 의지할 하나님의 은혜를 배우는 자리이다.

성도는 건강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몸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므로 청지기적 책임을 가지고 돌보아야 한다.[11] 그러나 건강을 우상화하지도 않는다. 건강이 좋을 때는 감사함으로 섬기고, 건강이 약해질 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의지하며, 질병 중에도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증언한다.

2) 경제 문제의 재배열

노년의 경제 문제도 중요하다. 은퇴 이후 수입이 줄어들고, 의료비와 생활비에 대한 염려가 커질 수 있다. 예수께서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며,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12] 이는 현실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심 안에서 해석하라는 뜻이다.

노인성도는 재물을 자기 안전의 절대 근거로 삼지 않는다. 재물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청지기적 도구이다. 노년의 재산관리와 상속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재물은 탐욕과 두려움의 도구가 아니라, 감사와 섬김과 전승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3) 가족 문제의 재배열

노년에는 가족관계의 변화가 크다. 자녀가 독립하고, 배우자와의 관계가 새롭게 정리되며, 손자녀 세대와의 관계가 중요해진다. 이때 노인성도는 가족을 소유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언약적 관계로 보아야 한다.

노인성도는 자녀에게 자기 뜻을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하는 어른이어야 한다. 손자녀에게는 단순한 정서적 사랑을 넘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들려주는 신앙 전승자가 되어야 한다.[13] 가족관계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배우고 전하는 중요한 장이다.

4) 죽음 문제의 재배열

노년의 가장 깊은 문제는 죽음이다. 세상은 죽음을 회피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미화하려 한다. 그러나 성도는 죽음을 그리스도 안에서 해석한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으므로, 성도는 죽음 앞에서도 소망을 가진다.[14]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노인성도는 죽음을 자기 인생의 실패로 보지 않는다. 죽음은 타락 이후의 엄연한 현실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최종 승리를 갖지 못한다. 성도의 죽음은 부활과 영화의 완성을 향한 통로이다. 그러므로 노인성도는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소망과 하나님의 의의 은혜를 증언할 수 있다.

 

 

6. 노인성도의 신앙적 정체성

1) 하나님 나라의 백성

노인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그는 세상의 평가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다. 세상이 그를 늙고 약한 사람으로만 보더라도, 하나님은 그를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신 자기 백성으로 보신다. 이 신분은 노년의 가장 깊은 위로와 존귀의 근거이다.

2) 하나님의 의를 덧입은 성도

노인성도는 하나님의 의를 덧입은 성도이다. 그는 자기 공로로 서지 않고 그리스도의 의로 선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신앙 연륜을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은혜를 찬송한다.

3) 언약 전승의 공인

노인성도는 언약 전승의 공인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언약대로 이루셨는지를 후대에게 말해야 한다. 그의 사명은 단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오래 살아오며 배운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다. 곧 그는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신 삼위일체 언약의 하나님께서 자기 인생을 어떻게 붙드시고 인도하셨는지를 증언하는 사람이다.

4) 새 창조를 바라보는 증인

노인성도는 새 창조를 바라보는 증인이다. 그는 죽음의 현실을 알고 있으나, 그리스도의 부활을 더 깊이 믿는다. 그는 세상의 쇠퇴를 보면서도 하나님의 완성을 바라본다. 그의 찬송은 이 땅의 젊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근거한다.

 

 

7. 6장 요약

본 장은 노년을 마태복음 6장 33절의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라는 양대언약 구조 안에서 살펴보았다. 노년은 많은 현실 문제를 동반하지만, 성도는 그 문제들을 건강, 재물, 가족, 죽음 자체의 관점에서만 해석하지 않는다. 노인성도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함으로 자신의 전 생애를 재해석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노인성도의 신분과 사명을 밝힌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교회 안에서 기억과 권면과 찬송의 사명을 가진 공인이다. 하나님의 의는 노인성도의 근거와 품위를 밝힌다. 그는 자기 의로 서지 않고, 그리스도의 의로 서며, 성령의 성화 안에서 믿음과 사랑과 인내의 열매를 드러낸다.

따라서 노년은 하나님 나라의 실체성과 하나님의 의의 은사성이 만나는 신앙의 성숙기이다. 노인성도는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님의 나라와 의 안에서 해석하고, 후대에게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신 삼위일체 언약의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셨고, 그리스도께서 나의 의가 되셨으며, 성령께서 나를 여기까지 붙드셨다”고 증언하는 언약 공동체의 성숙한 공인이다.

 

 

각주

[1] 마 6:33. 예수께서는 염려의 문제를 다루시면서 제자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명하셨다. 이 말씀은 성도의 생활 전체를 재배열하는 기준이다.

[2] 막 1:15; 눅 17:20–21;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임하였고,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경험되며, 장차 완성될 나라이다.

[3] 신 4:9; 신 32:7.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후대에 전하는 것은 언약 공동체의 핵심 사명이다.

[4] 벧전 2:9–10. 성도는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부름 받았다.

[5] 롬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6] 롬 3:21–26; 고후 5:21.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에게 전가된다.

[7] 고전 1:30.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성도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다.

[8] 잠 16:31. 백발은 의로운 길에서 얻을 때 영화의 면류관이다.

[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3장 1항. 유효하게 부르심을 받고 중생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효력으로 실제적이고 인격적으로 더욱 거룩하게 된다.

[10] 딛 2:1–5. 늙은 남자와 늙은 여자는 교회 안에서 성화의 품위와 선한 교훈의 본을 보여야 한다.

[11] 고전 6:19–20. 성도의 몸은 성령의 전이며, 하나님께 받은 것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12] 마 6:25–34. 예수께서는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한 염려를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심과 하나님의 나라의 우선성 안에서 다루셨다.

[13] 신 4:9; 시 78:4–7. 하나님의 행하신 일과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는 것은 언약 공동체의 교육 사명이다.

[14] 요 11:25–26; 고전 15:54–57.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이시며, 성도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가진다.

[15] 마 28:19; 고후 13:1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장 3항. 신약의 계시는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밝히 드러내며, 구약의 여호와 칭호는 이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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