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아름다운 백발

Re: Re: Re: 제9장 노년기의 가정생활

작성자펄군|작성시간26.06.08|조회수0 목록 댓글 0

 

아래는 첨부하신 제9장 노년기의 가정생활 원문을 기준으로, 요청하신 핵심 수정, 곧 “‘여호와’의 칭호는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할 언약적 이름’”이라는 관점을 반영한 재개정안입니다. 원문은 노년기의 가정생활을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 조부모의 신앙교육, 유언과 축복, 가정생활의 왜곡과 회복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9장 노년기의 가정생활

부부관계·부모와 자녀·조부모의 신앙교육·유언과 축복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한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애굽기 20장 12절

 

 

1. 문제 제기: 노년기의 가정생활은 왜 중요한가

노년기의 가정생활은 기독교 노인학에서 반드시 다루어야 할 중요한 영역이다. 노년은 개인의 건강과 죽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가족관계가 새롭게 재편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부부관계는 젊은 시절의 양육과 경제 중심 구조에서 동행과 돌봄 중심 구조로 변화된다. 부모와 자녀 관계는 독립과 의존, 존경과 돌봄, 상속과 책임의 문제를 새롭게 마주한다. 조부모와 손자녀 관계는 세대 간 신앙 전승의 중요한 통로가 된다. 또한 노년의 말기에는 유언, 축복, 장례, 기억의 문제가 가정 안에서 중요한 신앙교육의 기회가 된다.

일반적으로 노년기의 가정생활은 가족 돌봄, 부양 부담, 재산 상속, 세대 갈등, 독거와 고독의 문제로 논의된다. 이러한 문제들은 실제적이며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 노인학은 가정생활을 기능적 관계나 정서적 관계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성경은 가정을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적 질서 안에서 이해하게 한다. 그러므로 노년기의 가정생활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배우고 전승하는 생활신학의 장이다.

특히 제5계명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한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여호와’는 단순한 구약적 호칭이나 이스라엘 민족사의 신명칭으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여호와’의 칭호는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할 언약적 이름이다. 곧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영원히 계시는 한 분 하나님이시며, 성부께서 언약의 질서를 세우시고, 성자께서 그 언약을 성취하시며, 성령께서 그 언약의 은혜를 가정과 교회 안에 적용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부모 공경, 부부의 동행, 자녀 돌봄, 조부모의 신앙교육, 유언과 축복은 단순한 가족 윤리가 아니다.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세대에서 세대로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가르치시고, 보존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의를 전승하게 하시는 언약적 생활 질서이다.

노인성도는 가정 안에서 단지 돌봄을 받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배우자와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동행자이며, 자녀에게 하나님의 섭리를 증언하는 부모이며, 손자녀에게 신앙을 전승하는 조부모이며, 마지막 말과 삶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언약의 증인이다. 따라서 노년기의 가정생활은 사적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대에서 세대로 언약의 진리를 전하게 하시는 중요한 자리이다.

 

 

2. 노년기의 부부관계

1) 부부관계는 언약적 동행이다

노년기의 부부관계는 젊은 시절과 다른 방식으로 성숙한다. 젊은 시절에는 결혼생활이 자녀 출산과 양육, 경제활동, 가정 형성의 사명과 깊이 연결된다. 그러나 노년에는 부부가 함께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고, 서로의 약함을 돌보며, 죽음과 이별의 현실을 함께 준비하는 관계로 변화된다. 이때 부부관계는 단순한 동거 관계가 아니라 언약적 동행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성경은 결혼을 단지 인간의 사회 제도로만 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셨다.[1] 바울은 이 부부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가리키는 신비로 설명한다.[2] 그러므로 노년기의 부부관계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언약적 사랑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 언약적 동행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 안에서 더욱 깊어진다. 성부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결혼의 질서를 세우셨으며, 성자께서는 자기 몸을 내어 주는 사랑으로 교회를 사랑하셨고, 성령께서는 부부가 서로 용서하고 오래 참고 섬기도록 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 노년의 부부관계는 단순한 정서적 동반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가정 안에 나타내시는 언약적 사랑의 훈련이다.

노년의 부부는 서로의 강함보다 약함을 더 많이 보게 된다. 병든 몸, 느려진 걸음, 약해진 기억, 반복되는 말, 감정의 변화가 서로에게 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부부는 서로를 부담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를 통해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돌보심을 배운다. 배우자의 약함을 감당하는 일은 단지 윤리적 의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는 자리이다.

2) 노년의 부부는 기억을 함께 해석해야 한다

노년의 부부에게는 많은 기억이 있다. 함께 겪은 고난, 자녀 양육의 수고, 경제적 어려움, 교회의 섬김, 실패와 회복, 기쁨과 눈물이 있다. 그러나 기억은 자동으로 은혜가 되지 않는다. 기억은 때로 원망이 되기도 하고, 후회가 되기도 하며, 자기 의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노년의 부부는 지나온 기억을 말씀 안에서 함께 해석해야 한다.

신앙적 부부는 “우리가 이렇게 살았다”에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셨다”고 고백한다. 이것이 노년 부부의 중요한 신앙 과제이다. 부부가 지나온 세월을 하나님의 섭리로 함께 해석할 때, 그들의 가정사는 단순한 가족사가 아니라 은혜의 증언이 된다.

이때 “여호와께서 우리를 인도하셨다”는 고백은 삼위일체적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성부께서는 가정의 모든 시간을 섭리 가운데 보존하셨고, 성자께서는 부부의 죄와 실패를 십자가의 은혜 아래 두셨으며, 성령께서는 상처와 기억을 말씀 안에서 새롭게 해석하도록 도우셨다. 그러므로 노년 부부의 회상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고백하는 신앙 행위이다.

요셉은 자신의 고난을 형들의 악의로만 해석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많은 생명을 구원하게 하신 섭리로 해석하였다.[3] 노년의 부부도 마찬가지이다. 서로의 상처와 실수까지도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회복의 은혜 안에서 해석할 때, 가정은 원망의 장소가 아니라 감사의 장소가 된다.

3) 배우자의 죽음과 신앙의 동행

노년의 부부관계에서 가장 깊은 문제 중 하나는 배우자의 죽음이다. 긴 세월을 함께한 배우자의 죽음은 노인성도에게 큰 상실과 외로움을 가져온다. 기독교 신앙은 이 슬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성도는 울 수 있으며, 상실을 애통해할 수 있다. 예수께서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다.[4]

그러나 성도는 소망 없는 자와 같이 슬퍼하지 않는다.[5] 배우자의 죽음은 부부 언약의 이 땅에서의 형태가 끝나는 사건이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까지 끊는 사건은 아니다. 성도는 죽은 자의 부활을 믿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새 창조를 소망한다.

배우자를 먼저 보낸 노인성도에게 교회는 실제적 돌봄과 영적 위로를 제공해야 한다. 남겨진 배우자는 단지 “혼자 남은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고 교회의 지체이다. 그는 자신의 남은 생애를 배우자와 함께했던 기억을 하나님께 감사로 돌리고, 주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믿음으로 살아가는 증인으로 서야 한다.

배우자의 죽음 앞에서도 성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지한다. 성부께서는 성도의 날을 정하시고 생명의 주권자로 다스리시며, 성자께서는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주이시고, 성령께서는 슬픔 가운데 있는 성도를 위로하시는 보혜사이시다. 그러므로 노년의 사별은 소망 없는 단절이 아니라, 부활과 새 창조를 바라보는 언약적 기다림이 된다.

 

 

3. 부모와 자녀 관계

1) 부모 공경은 언약 공동체의 질서이다

십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며,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말한다.[6] 부모 공경은 단순한 동양적 효 사상이나 가족 윤리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 공동체의 질서이다. 자녀는 부모를 통해 생명을 받았고, 가르침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전해 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부모 공경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 질서를 존중하는 신앙의 표현이다.

출애굽기 20장 12절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이 계명의 근거가 단순한 사회 안정이나 가족 질서에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부모 공경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언약 질서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여호와의 이름은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한다. 성부께서는 가정과 권위 질서를 세우시고, 성자께서는 참 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으며, 성령께서는 자녀에게 공경과 사랑과 절제의 마음을 주신다. 그러므로 부모 공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질서와 은혜에 참여하는 신앙적 순종이다.

노년기의 부모와 자녀 관계는 쉽지 않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을 더 자주 찾아오고 돌봐 주기를 기대할 수 있다. 자녀는 부모 돌봄의 책임과 현실적 부담 사이에서 갈등할 수 있다. 경제 문제, 건강 문제, 거주 문제, 상속 문제는 가족 안에 긴장을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부모 공경은 감정적 호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말씀 안에서 서로의 책임과 한계를 정직하게 이해해야 한다.

자녀는 노년의 부모를 귀찮은 부담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부모의 약함과 반복되는 요구 속에서도, 그들을 하나님께서 세우신 부모로 존중해야 한다. 동시에 부모도 자녀를 자기 뜻대로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 노년의 부모는 자녀를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로 인정하고, 자신의 기대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야 한다.

2) 노년의 부모는 자녀에게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노년의 부모는 자녀에게 재산보다 더 중요한 것을 남겨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다. 성경은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명령한다.[7] 신앙 전승은 자녀가 어릴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자녀가 장성한 후에도 부모의 말과 삶은 여전히 영향을 미친다.

노년의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야 할 가장 중요한 유산은 세 가지이다. 첫째, 하나님께서 인생을 다스리셨다는 섭리 신앙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의가 아니고서는 설 수 없다는 복음 신앙이다. 셋째,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는 삶의 방향이다. 이러한 유산은 재물보다 오래가며, 자녀와 손자녀 세대에 신앙의 길을 열어 준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분명히 해야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야 할 하나님 지식은 일반적 신앙 감정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언약적 지식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여호와께서 우리 가정을 여기까지 인도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고백은 성부의 섭리, 성자의 구속, 성령의 견인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가정의 신앙 전승은 구약적 언약 기억과 신약적 복음 계시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고백으로 이어진다.

부모가 자녀에게 남기는 말은 신중해야 한다. 노년의 말은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부모는 자녀에게 원망과 비교와 통제를 남기지 말고, 감사와 권면과 축복을 남겨야 한다. 성경의 족장들이 말년에 자녀들을 축복한 것처럼, 노년의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말을 남겨야 한다.[8]

3) 자녀에게 의존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노년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때가 온다. 이것은 많은 부모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평생 자녀를 돌보던 부모가 이제는 자녀의 돌봄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움을 받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성도는 서로 의존하며 살아간다.[9]

노년의 부모는 자녀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지혜와 감사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자녀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은 요구는 갈등을 낳을 수 있다. 반대로 자녀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고집도 때로는 교만이나 두려움일 수 있다. 신앙적 태도는 서로의 한계를 인정하며 사랑 안에서 책임을 나누는 것이다.

자녀도 부모의 의존성을 불편하게만 보지 말아야 한다. 부모를 돌보는 일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연결된다. 그러나 돌봄은 한 사람에게만 과도하게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 가족과 교회는 가능한 범위 안에서 함께 지혜롭게 분담해야 한다. 부모 공경은 개인적 효심만이 아니라 공동체적 사랑의 질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상호 의존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배워야 한다. 성부께서는 자기 백성을 가족과 교회 안에 두시고, 성자께서는 연약한 자를 돌보는 사랑의 본을 보이셨으며, 성령께서는 서로 짐을 지는 공동체적 사랑을 가능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노년의 의존은 단순한 약화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사랑을 배우는 은혜의 자리이다.

 

 

4. 조부모의 신앙교육 사명

1) 조부모는 언약 전승의 중요한 통로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자녀와 손자에게 알리라고 명령한다.[10] 이는 조부모 세대가 신앙 전승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조부모는 단지 손자녀를 돌보는 보조 양육자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전하는 언약 전승의 증인이다.

조부모는 손자녀에게 부모와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준다. 부모가 일상적 훈육과 책임의 중심에 있다면, 조부모는 긴 시간의 기억과 신앙적 해석을 제공할 수 있다. 손자녀는 조부모를 통해 “믿음은 한 세대의 유행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전승되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배울 수 있다.

조부모의 신앙교육은 복잡한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된다. 함께 식사하며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우셨는지 말해 주는 것, 예배를 귀히 여기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 손자녀의 이름을 부르며 축복기도하는 것이 모두 신앙교육이다.

그러나 조부모의 신앙교육은 단순히 “옛날 신앙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조부모가 전하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언약 사역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성부께서 우리 가정을 창조와 섭리 가운데 보존하셨고, 성자께서 죄인을 구속하시며 교회의 머리가 되셨고, 성령께서 각 세대의 믿음을 일으키고 붙드신다는 고백이 함께 전해져야 한다. 그래야 조부모의 전승은 전통 보존이 아니라 복음 전승이 된다.

2) 조부모는 자기 경험을 복음 아래 두어야 한다

조부모가 손자녀에게 자신의 경험을 말할 때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경험이 복음보다 앞서면, 신앙교육은 도덕주의나 훈계로 흐를 수 있다. “내가 살아 보니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이렇게 인도하셨다”는 증언이다.

조부모의 경험은 귀하지만, 그 경험은 말씀의 해석 아래 있어야 한다. 자신의 고생을 자랑하거나 자녀 세대와 손자녀 세대를 비난하는 방식은 신앙 전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부모는 자신의 실패와 연약함까지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손자녀는 신앙을 완벽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은혜로 붙들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배우게 된다.

바울은 자신이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였다.[11] 조부모의 신앙교육도 이 고백 위에 서야 한다. “내가 잘해서 여기까지 왔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여기까지 붙드셨다”는 고백이 손자녀에게 복음을 전한다.

이 은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이다. 성부의 택하심과 섭리, 성자의 대속과 중보,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견인이 조부모의 생애 전체를 붙들었다. 따라서 조부모는 자기 경험을 절대화하지 않고, 그 경험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 아래 두어야 한다.

3) 조부모의 기도 사명

조부모의 가장 중요한 사역 중 하나는 기도이다. 노년에는 활동의 범위가 줄어들 수 있으나, 기도의 사명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노인성도는 자녀와 손자녀 세대를 위해 더 깊고 지속적으로 기도할 수 있다.

성경은 성도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라고 가르친다.[12] 조부모는 가정 안에서 중보기도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손자녀의 믿음, 인격, 진로, 결혼, 교회생활, 고난과 시험을 위해 기도하는 조부모는 가정의 영적 파수꾼이다.

조부모의 기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깊은 영향을 미친다. 손자녀가 당장 그 기도의 의미를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들은 자신을 위해 기도하던 조부모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다. 그 기억은 훗날 신앙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조부모의 기도는 성자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부께 나아가는 기도이다. 그러므로 조부모는 단지 가족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녀와 손자녀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도록 중보하는 언약적 기도자이다.

 

 

5. 유언과 축복의 신학

1) 유언은 재산 분배를 넘어 신앙 고백이어야 한다

노년의 마지막 과제 가운데 하나는 유언이다. 일반적으로 유언은 재산 분배나 가족 간 법적 문제와 연결된다. 그러나 기독교적으로 유언은 단지 물질의 정리가 아니다. 그것은 한 성도가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남기는 마지막 신앙 고백이 될 수 있다.

성경에서 족장들의 마지막 말은 단순한 가족적 유언이 아니라 언약적 의미를 가진다.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아들들을 불러 축복하였다.[13] 요셉은 죽기 전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말하며 자신의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고 유언하였다.[14] 이들의 마지막 말은 재산 정리를 넘어 하나님의 언약을 바라보는 신앙 고백이었다.

노인성도의 유언도 그러해야 한다. 자녀에게 남길 가장 중요한 말은 재산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권면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스도의 의를 붙들라”, “교회를 사랑하라”, “형제와 화목하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라”는 말은 노인성도가 남길 수 있는 가장 귀한 유산이다.

유언의 중심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있어야 한다. “여호와께서 우리 가정을 지키셨다”는 고백은 성부의 섭리, 성자의 구속, 성령의 견인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유언은 단순한 가족사의 마무리가 아니라, 한 성도가 평생 배운 언약적 하나님 지식을 후대에 남기는 마지막 증언이 된다.

2) 축복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게 하는 말이다

축복은 단순한 좋은 말이나 덕담이 아니다. 성경적 축복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바라보게 하는 말이다. 부모와 조부모가 자녀와 손자녀를 축복할 때, 그 중심은 세상적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어야 한다.

이삭은 야곱과 에서를 축복하였고, 야곱은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였다.[15] 히브리서는 이 사건들을 믿음의 행위로 해석한다.[16] 축복은 미래를 인간이 조종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는 말이다.

노인성도는 자녀와 손자녀에게 세상에서 높아지라는 말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을 남겨야 한다. 부자가 되라는 말보다 의인의 길을 걸으라는 말을 남겨야 한다. 편하게 살라는 말보다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말을 남겨야 한다. 이러한 축복은 세속적 욕망을 신앙의 언어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게 하는 영적 권면이다.

축복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주어져야 한다. 성부께서 자녀와 손자녀를 자기 섭리 가운데 붙드시고, 성자께서 그들의 의와 생명이 되시며, 성령께서 그들의 믿음을 일으키고 지키시기를 구하는 것이 기독교적 축복이다. 그러므로 노년의 축복은 단순한 덕담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께 후대를 맡기는 언약적 기도이다.

3) 장례를 준비하는 신앙

노인성도는 자신의 장례를 신앙적으로 준비할 수 있다. 이것은 죽음을 앞당겨 생각하는 어두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마지막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성숙한 태도이다. 성도는 죽음 이후의 장례가 가족에게 단순한 슬픔의 시간이 아니라 복음의 소망을 듣는 시간이 되도록 준비할 수 있다.

장례 준비에는 몇 가지 신앙적 요소가 포함될 수 있다. 첫째, 가족에게 남길 신앙의 말을 정리하는 것이다. 둘째, 장례 예배에서 선포되기를 원하는 성경 본문과 찬송을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 셋째, 가족 간 분쟁을 줄이기 위해 재산과 절차의 문제를 지혜롭게 정리하는 것이다. 넷째,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도 그리스도의 부활 소망이 드러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성도의 죽음은 끝이 아니다. 사람의 몸은 죽은 후 흙으로 돌아가지만, 의인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며, 마지막 날 몸의 부활을 기다린다.[17]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장례 준비는 절망의 준비가 아니라 소망의 준비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가정을 향해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다”고 증언한다.

장례의 증언도 삼위일체적으로 정돈되어야 한다. 성부께서 성도의 생애를 섭리 가운데 이끄셨고, 성자께서 죽음과 부활로 생명의 길을 여셨으며, 성령께서 성도를 인치시고 끝까지 견인하셨음을 선포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장례는 죽음의 비극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언약 성취를 증언하는 마지막 신앙교육의 자리이다.

 

 

6. 노년기 가정생활의 왜곡과 회복

1) 왜곡된 가정생활의 모습

노년기의 가정생활은 죄로 인해 왜곡될 수 있다. 부모는 자녀를 소유하려 하고, 자녀는 부모를 부담으로 여기며, 형제자매는 상속 문제로 다투고, 조부모는 손자녀를 자기 방식대로 통제하려 할 수 있다. 부부 사이에는 오래된 상처가 굳어져 냉소와 침묵이 생길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한 세대 차이나 성격 차이만이 아니라, 죄로 말미암은 자기중심성의 결과이다.

기독교 노인학은 가정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성경의 가정들도 많은 갈등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의 가정, 이삭의 가정, 야곱의 가정, 다윗의 가정에는 모두 죄와 편애와 다툼과 상처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불완전한 가정 속에서도 언약을 이루셨다. 이것이 성경적 소망이다.

가정의 왜곡은 여호와의 언약 질서를 거스르는 일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죄로 무너진 가정을 방치하지 않으시고, 삼위일체 구원 사역 안에서 회복의 길을 여신다. 성부께서는 가정을 자기 백성을 세우는 언약적 자리로 보존하시고, 성자께서는 십자가로 화목을 이루시며, 성령께서는 굳어진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용서와 사랑을 가능하게 하신다.

2) 가정생활의 회복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가능하다

노년기 가정생활의 회복은 단순한 윤리교육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참된 회복은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가능하다. 그리스도는 죄인을 용서하시고,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화목하게 하시며, 성도에게 서로 용서하고 사랑할 힘을 주신다.[18]

노인성도는 가정 안에서 먼저 은혜 받은 자로 서야 한다. 그는 자녀에게 완벽한 부모였다고 주장하기보다, 부족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자녀도 부모의 연약함을 정죄만 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공경과 사랑의 길을 찾아야 한다. 가정의 회복은 서로의 죄와 상처를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가져갈 때 시작된다.

이 회복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은혜 안에서 이루어진다. 성부께서는 가정의 주인이시며, 성자께서는 화목의 중보자이시고, 성령께서는 성도 안에 사랑과 절제와 오래 참음을 맺게 하신다. 그러므로 가정생활의 회복은 인간적 노력의 결과만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가 가정 안에 적용되는 열매이다.

3) 가정은 작은 교회이다

가정은 작은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가정 안에서 말씀을 기억하고, 기도하고, 용서하고, 섬기고, 축복하고, 죽음과 소망을 함께 배울 때, 가정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드러내는 자리가 된다. 노인성도는 이 작은 교회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그는 가정의 제사장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성도로서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기억하게 하는 사람이다. 그는 가족의 중심에 자신을 세우지 않고, 하나님을 중심에 세운다. 그는 자녀와 손자녀가 자신을 의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게 한다. 이것이 노년기 가정생활의 성경적 목표이다.

여기서 하나님 중심성은 삼위일체적이어야 한다. 가정은 성부께서 세우신 창조 질서와 섭리의 자리이며, 성자께서 사랑과 용서로 다스리시는 은혜의 자리이고, 성령께서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하시는 생활의 자리이다. 그러므로 노년기의 가정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배우고 전승하는 작은 언약 공동체이다.

 

 

7. 9장 요약

본 장은 노년기의 가정생활을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 관계, 조부모의 신앙교육, 유언과 축복의 신학, 가정생활의 왜곡과 회복이라는 주제로 살펴보았다. 노년기의 가정생활은 단순한 가족 돌봄이나 부양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대에서 세대로 언약의 진리를 전하게 하시는 중요한 생활신학의 장이다.

특히 본 장에서 중요한 수정점은 ‘여호와’의 칭호를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20장 12절의 “네 하나님 여호와”는 부모 공경과 가정질서가 단순한 가족윤리나 문화적 효 사상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언약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질서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여호와’의 이름은 구약적 명칭에만 머물지 않는다.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영원히 계시는 한 분 하나님이시며, 성부께서 언약 질서를 세우시고, 성자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언약을 성취하시며, 성령께서 그 은혜를 가정과 교회 안에 적용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노년의 부부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반영하는 언약적 동행으로 성숙해야 한다. 부모와 자녀 관계는 공경과 돌봄, 권면과 자유, 책임과 사랑의 질서 안에서 재정립되어야 한다. 조부모는 손자녀에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전하는 언약 전승의 증인이다. 유언과 축복은 재산 분배를 넘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마지막 신앙 고백이 되어야 한다. 또한 가정의 왜곡과 상처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노인성도는 가정 안에서 단지 보호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증언하는 공인이다. 그는 부부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배우고, 자녀와의 관계 속에서 언약적 사랑을 실천하며, 손자녀에게 신앙을 전승하고, 마지막 말과 삶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와 부활 소망을 남기는 성숙한 증인으로 서야 한다.

 

 

각주

[1] 창 2:18–24.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 하시고 돕는 배필을 지으셨으며,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게 하셨다.

[2] 엡 5:22–33.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추어 설명한다.

[3] 창 50:20. 요셉은 형들의 악한 행위를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안에서 해석하였다.

[4] 요 11:35.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우셨다. 이는 성도가 죽음 앞에서 애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5] 살전 4:13–18. 성도는 죽은 자들에 대하여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는다.

[6] 출 20:12; 엡 6:1–3. 부모 공경은 약속 있는 첫 계명으로 제시된다.

[7] 신 6:4–9.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한다.

[8] 창 48–49장. 야곱은 말년에 요셉의 아들들과 자기 아들들을 축복하였다.

[9] 고전 12:21–26.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지체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며 함께 돌본다.

[10] 신 4:9; 시 78:4–7.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자녀와 손자에게 전하는 것은 언약 공동체의 중요한 사명이다.

[11] 고전 15:10.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12] 딤전 2:1. 성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해야 한다.

[13] 창 49장. 야곱의 마지막 말은 가족적 유언이면서 동시에 언약적 축복의 성격을 가진다.

[14] 창 50:24–26; 히 11:22. 요셉은 죽을 때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을 떠날 것을 말하며 자기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고 유언하였다.

[15] 창 27장; 창 48장. 이삭과 야곱의 축복은 족장사 안에서 언약 전승의 중요한 장면이다.

[16] 히 11:20–21. 히브리서는 이삭과 야곱의 축복을 믿음의 행위로 해석한다.

[1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2장 1–3항. 사람의 몸은 죽은 후 흙으로 돌아가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며, 마지막 날에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다.

[18] 엡 2:14–18; 골 3:12–14. 그리스도는 화평이시며,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

[1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장 3항. 신격의 단일성 안에 동일한 본질과 능력과 영원성을 가진 삼위,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계신다.

[20]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장 3항.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에게 은혜언약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생명과 구원을 제공하셨다.

[2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8장 1항.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목적 안에서 독생자 주 예수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 택하고 세우셨다.

[2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4장 1–2항.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이루어지며, 부부의 상호 도움과 경건한 자손의 증가와 교회의 거룩한 씨를 위하여 제정되었다.

[23]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23–133문. 제5계명은 부모와 자녀뿐 아니라 모든 상하 관계와 연령 관계 안에서 합당한 존경과 책임을 요구한다.

[24]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64문. 제5계명은 각 사람의 지위와 관계에 따라 마땅히 존경하고 의무를 행할 것을 요구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