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요청하신 중점 수정 사항을 반영한 제10장 재개정안입니다. 핵심은 “여호와”를 삭제하지 않고,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되는 언약적 이름으로 보강한 것입니다.
제10장 노년기의 교회생활
예배와 성례·권면과 중보기도·봉사와 은사·세대통합 교회론
“교훈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갈라디아서 6장 6절
1. 문제 제기: 노인성도는 교회 안에서 어떤 존재인가
교회 안에서 노인성도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목회 행정의 문제가 아니다. 노인성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교회의 노인사역, 예배 참여, 교육 구조, 봉사 배치, 세대 관계가 달라진다. 만일 노인성도를 단지 돌봄과 위로의 대상으로만 이해하면, 교회는 노인성도를 수동적 위치에 머물게 할 수 있다. 반대로 노인성도를 언약 공동체의 성숙한 공인으로 이해하면, 교회는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증인과 세대 전승의 동역자로 세우게 된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한다.[1] 몸에는 여러 지체가 있고, 각 지체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약하게 보이는 지체도 몸에 반드시 필요하다.[2] 그러므로 노인성도는 교회 안에서 불필요한 주변 지체가 아니다. 그는 오랜 신앙 경험과 기도와 권면과 찬송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는 중요한 지체이다.
노년기의 교회생활은 네 가지 방향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노인성도는 예배와 성례에 참여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둘째, 노인성도는 권면과 중보기도를 통해 교회를 섬긴다. 셋째, 노인성도는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에 따라 봉사하며, 그 봉사는 일의 양보다 은혜의 증언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넷째, 노인성도는 세대통합의 중요한 연결자로서 젊은 세대에게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전승해야 한다.
여기서 교회가 고백하고 예배하며 증언하는 하나님은 막연한 신적 존재가 아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언약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이시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여호와라는 언약적 이름으로 자신을 알리셨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서 ‘여호와’의 칭호는 구약의 역사적 명칭에만 머물러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여호와’의 칭호는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할 언약적 이름이다. 곧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영원히 계시는 한 분 하나님이시며, 성부께서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성자께서 교회의 머리로서 구속을 성취하시며,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교회 안에 적용하시고 성도를 끝까지 견인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노년기의 교회생활은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는 생활”이 아니다.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성도를 끝까지 교회 안에 붙드시고, 그를 통해 다른 지체를 세우시는 생활이다. 노인성도는 교회생활 속에서 돌봄을 받으며 동시에 돌보는 자이고, 배움을 받으며 동시에 가르치는 자이며, 위로를 받으며 동시에 위로하는 자이다. 그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교회 안에서 배우고, 고백하고, 전승하는 공적 성도이다.
2. 예배와 성례 참여
1) 예배는 노인성도의 중심 생활이다
예배는 노인성도의 교회생활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자리이다. 성도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신지 듣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며, 성령 안에서 교회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한다. 노인성도에게 예배는 단지 주일의 종교적 습관이 아니라, 평생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자리이다.
이 예배의 대상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성부께서는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예배받으시며, 성자께서는 중보자로서 성도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되시고, 성령께서는 말씀과 믿음과 찬송 안에서 교회를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 공동체로 세우신다. 그러므로 노인성도가 “여호와께 예배한다”고 고백할 때, 그 고백은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이해되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예배 가운데 만나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노년에는 예배 참여가 어려워질 수 있다. 몸이 약해지고, 이동이 불편해지며, 청력과 시력이 약해질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노인성도가 가능한 한 예배 공동체 안에 머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교통 지원, 좌석 배려, 음향과 글자 크기, 방문예배, 온라인 예배 보조 등은 단순한 편의 제공이 아니라, 지체를 귀히 여기는 교회적 돌봄이다.
노인성도 또한 예배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노년의 예배는 젊은 세대에게 강력한 증언이 된다. 몸이 약해졌음에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노인성도의 모습은 “하나님은 끝까지 예배받으실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노인성도의 예배는 말 없는 설교가 될 수 있다.
2) 성례는 언약의 은혜를 확인하게 한다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에 주신 은혜의 표와 인이다.[3] 세례는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임을 보여주며,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그 은혜에 참여하게 한다. 노인성도는 성례를 통하여 자신의 신앙이 자기 감정이나 기억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객관적 은혜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노년에는 기억이 약해지고 감정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성례는 성도에게 복음의 객관성을 보여준다. 성도는 자신의 믿음의 강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몸을 주시고 피를 흘리셨다는 복음의 사실을 붙든다. 성찬상 앞에서 노인성도는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나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임을 다시 고백한다.
성례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언약 사역을 교회 가운데 보이는 말씀으로 확인하게 한다. 성부께서는 은혜언약 안에서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성자께서는 자기 몸과 피로 그 언약을 성취하시며, 성령께서는 말씀과 성례를 통하여 성도에게 그리스도의 은택을 실제로 적용하신다. 그러므로 성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자기 백성에게 베푸시는 언약 은혜의 표와 인이다.
교회는 노인성도가 성례에 합당하게 참여하도록 가르치고 도와야 한다. 병상에 있는 노인성도, 거동이 불편한 노인성도도 교회의 질서 안에서 말씀과 성례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목회적 배려가 필요하다. 성례는 교회 공동체가 노인성도를 그리스도의 몸 안의 지체로 끝까지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지가 된다.
3) 예배와 성례는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게 한다
노인성도에게 예배와 성례는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는 은혜의 수단이다. 예배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성도의 생명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가르치고,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성도의 소망임을 확인하게 한다. 성도는 예배와 성례를 통해 자신의 마지막이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감임을 배운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4] 그러므로 노인성도는 예배 속에서 죽음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승리 안에서 죽음을 해석한다. 그는 성찬상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억하며, 자신의 몸도 장차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것을 소망한다.[5]
죽음 앞에서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 고백은 삼위일체적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성부께서는 자기 자녀를 영원한 나라로 부르시고, 성자께서는 죽음과 부활로 생명의 길을 여셨으며, 성령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성도의 믿음과 소망을 붙드신다. 그러므로 예배와 성례는 노인성도에게 죽음보다 강한 언약의 생명을 확인하게 하는 은혜의 수단이다.
3. 권면과 중보기도
1) 노인성도는 권면의 사명을 가진다
노인성도는 교회 안에서 권면의 사명을 가진다. 권면은 단순한 충고나 잔소리가 아니다. 성경적 권면은 말씀에 근거하여 형제를 세우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돕는 사랑의 행위이다. 노인성도는 긴 신앙의 여정과 삶의 경험을 통해 젊은 세대가 쉽게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경험은 반드시 말씀 아래 있어야 한다.
디도서 2장은 늙은 남자와 늙은 여자가 교회 안에서 경건과 절제와 선한 교훈의 본이 되어야 함을 가르친다.[6] 특히 늙은 여자는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는 자로 제시된다. 이것은 노인성도가 교회 안에서 침묵하거나 소외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말씀과 삶의 본으로 젊은 세대를 세우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권면은 사랑으로 해야 한다. 노인성도가 자신의 경험을 절대화하거나 젊은 세대를 정죄하는 태도를 취하면, 권면은 상처가 된다. 반대로 자신의 경험을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두고 겸손히 나누면, 권면은 교회를 세우는 도구가 된다. 노인성도의 권면은 “내가 옳다”는 주장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붙드셨다”는 증언이어야 한다.
이때 권면의 내용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향해야 한다. 노인성도는 젊은 세대에게 단지 자신의 경험이나 처세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부의 섭리, 성자의 구속, 성령의 견인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을 권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권면은 도덕적 훈계가 아니라 복음적 증언이 된다.
2) 노인성도는 중보기도의 사명을 가진다
노년의 중요한 교회 사역 중 하나는 중보기도이다. 노년에는 활동의 폭이 줄어들 수 있으나, 기도의 사명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노인성도는 인생의 깊은 경험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교회와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라고 가르친다.[7] 교회는 목회자, 직분자, 가정, 청년, 어린이, 병든 자, 시험당하는 자, 선교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노인성도는 이 기도의 자리에서 중요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그는 교회의 영적 파수꾼으로 서야 한다.
중보기도는 보이지 않는 사역이지만, 교회에 깊은 영향을 준다. 젊은 세대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을 통해 교회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 병든 성도는 자신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노인성도의 기도를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목회자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노인성도들의 존재를 통해 큰 힘을 얻는다.
노인성도의 기도는 성자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부께 나아가는 기도이다. 그러므로 중보기도는 단순한 정성이나 선한 마음의 표현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께 참여하는 교회의 은혜로운 사역이다. 노인성도는 기도 속에서 교회의 필요를 여호와 하나님께 아뢰며, 그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자기 교회를 붙드시고 세우시는 분임을 믿는다.
3) 권면과 기도는 함께 가야 한다
노인성도의 권면과 기도는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기도 없는 권면은 쉽게 비판이 되고, 권면 없는 기도는 책임 없는 거리두기가 될 수 있다. 노인성도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그 기도 안에서 형제를 사랑으로 권면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위해 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고, 돌이킨 후에는 형제를 굳게 하라고 말씀하셨다.[8] 이 구조는 노인성도의 사명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는 젊은 세대를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넘어질 때 정죄하기보다 다시 세우는 권면을 해야 한다.
권면과 기도가 함께 갈 때 노인성도의 말은 무게를 얻는다. 그는 사람을 움직이기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며 말한다. 그는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 권면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말씀으로 사람을 새롭게 하시기를 바라며 권면한다.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권면과 기도는 교회를 세우는 언약적 섬김이다.
4. 봉사와 은사
1) 노인성도의 봉사는 일의 양이 아니라 은사의 표현이다
노년의 봉사는 젊은 시절의 봉사와 다를 수 있다. 젊을 때는 많은 활동과 노동으로 교회를 섬겼다면, 노년에는 지혜, 기도, 상담, 권면, 환대, 찬송, 기억의 나눔으로 섬길 수 있다. 따라서 교회는 노인성도의 봉사를 일의 양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봉사는 은사의 표현이며, 은사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신 선물이다.[9]
노인성도는 “이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사역은 여전히 많다. 병든 이를 위해 기도하는 일, 젊은 부부를 격려하는 일, 주일학교 아이들을 축복하는 일, 교회 역사를 기억하고 전하는 일, 어려움에 처한 성도를 위로하는 일,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일 모두가 귀한 봉사이다.
교회는 노인성도의 은사를 발견하고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모든 노인에게 같은 봉사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건강, 성격, 신앙의 성숙도, 경험, 은사에 따라 사역은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노인성도를 수동적 수혜자로만 두지 않고, 그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교회를 세우게 하는 것이다.
노인성도의 은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회 세우심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성부께서는 각 성도를 교회 안에 두시고, 성자께서는 몸의 머리로서 각 지체를 연결하시며, 성령께서는 다양한 은사를 나누어 주셔서 교회를 세우신다. 그러므로 노년의 작은 봉사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교회를 돌보시는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다.
2) 봉사는 성화의 열매이다
성도의 봉사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성화의 열매이다. 성도는 선행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믿음의 참됨을 나타내며, 형제에게 유익을 준다.[10] 노인성도의 봉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봉사를 통해 자기 의를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나눈다.
노년의 봉사는 특별히 겸손을 요구한다. 과거에 많은 일을 했던 사람일수록, 현재의 작은 봉사를 하찮게 여기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작은 섬김도 귀하다. 물 한 그릇의 섬김도 주 안에서 의미가 있다.[11] 노인성도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낙심하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감사함으로 감당해야 한다.
이때 봉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화 사역의 열매이다. 성부께서는 성도를 선한 일을 위하여 부르시고, 성자께서는 섬김의 본이 되시며, 성령께서는 성도 안에 사랑과 충성과 절제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봉사는 자기 공로가 아니라 은혜의 열매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 예배이다.
3) 은퇴는 사명의 종료가 아니라 방식의 변화이다
은퇴는 교회생활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직분에서 은퇴하거나 공식 사역에서 물러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은퇴는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사역의 방식이 변화되는 것이다.
직분에서 은퇴한 노인성도는 더 이상 공식적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후배 직분자들을 격려하며, 젊은 세대에게 본을 보일 수 있다. 은퇴 이후의 태도는 교회에 큰 영향을 준다. 감사와 겸손으로 물러나는 노인성도는 교회에 아름다운 본을 남긴다. 반대로 직분과 영향력을 내려놓지 못하고 불평과 간섭으로 일관하면 교회에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성경적 은퇴는 사라짐이 아니라 성숙한 물러남이다. 그것은 자신이 중심이 되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다음 세대를 세우시는 일을 기뻐하는 태도이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세우고, 다윗이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의 준비를 넘겨준 것처럼, 노인성도는 다음 세대가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감당하도록 축복해야 한다.[12]
이 세대 이양도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한 세대의 헌신으로 교회를 끝내지 않으시고, 성부의 섭리와 성자의 통치와 성령의 능력 안에서 다음 세대를 세우신다.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은퇴는 사명의 폐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속되는 교회 세우심을 믿음으로 인정하고 축복하는 행위이다.
5. 세대통합 교회론
1) 교회는 세대별 집합체가 아니라 한 몸이다
현대 교회는 효율적인 교육과 사역을 위해 세대별 부서를 운영한다. 이것은 필요한 면이 있다. 그러나 세대별 분리가 지나치면 교회는 한 몸이라는 의식이 약해질 수 있다. 어린이, 청년, 장년, 노년이 서로 만나지 않으면 신앙 전승은 약해진다.
성경은 교회를 한 몸으로 말한다.[13] 한 몸 안에는 나이와 은사와 기능이 다른 지체들이 함께 있다. 노인성도와 젊은 성도는 서로 경쟁하는 세대가 아니라 함께 몸을 이루는 지체이다. 젊은 세대는 노인성도의 지혜와 기도를 필요로 하고, 노인성도는 젊은 세대의 활력과 질문과 순종을 통해 격려를 받는다.
세대통합 교회론은 노인성도를 단지 노년부 안에 가두지 않는다. 노인성도는 교회의 전체 공동체 속에서 젊은 세대와 만나야 한다. 함께 예배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섬기고, 함께 말씀을 나누는 구조가 필요하다.
교회가 한 몸이라는 고백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회론 안에서 이해된다. 성부께서는 자기 백성을 한 가족으로 부르시고, 성자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성령께서는 여러 세대와 여러 은사를 가진 성도들을 한 몸으로 연결하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단순한 세대별 집합체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세워지는 하나의 언약 공동체이다.
2) 노인성도는 신앙 전승의 연결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전하도록 명하셨다.[14] 노인성도는 이 전승의 중요한 연결자이다. 그는 교회의 과거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증언하며, 젊은 세대가 자기 시대의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도와야 한다.
신앙 전승은 일방적 훈계가 아니다. 그것은 증언과 경청이 함께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노인성도는 젊은 세대에게 말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질문을 들어야 한다. 젊은 세대의 고민, 문화, 언어, 상처를 무시하면 전승은 단절된다. 전승은 말씀의 진리를 변질시키지 않으면서도, 다음 세대의 실제 질문에 성실히 응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노인성도의 삶은 그 자체로 전승의 자료이다. 교회는 노인성도의 신앙 이야기를 기록하고 나누는 일을 할 수 있다. 간증, 인터뷰, 세대 간 대화 모임, 기도 짝, 멘토링, 장례 신앙 기록 등은 노인성도의 증언을 교회의 신앙 자산으로 보존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전승의 중심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구약적 역사 기억에만 머물지 않아야 한다. 여호와의 행하심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언약 사역으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한다. 성부께서 교회를 택하시고 보존하시며, 성자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교회를 사시고, 성령께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며 선교의 증인으로 세우신다는 사실이 다음 세대에 전해져야 한다. 그래야 신앙 전승은 단순한 전통 보존이 아니라 복음의 계승이 된다.
3) 세대통합은 하나님 나라의 표지이다
하나님 나라는 세대 간 단절이 아니라 세대 간 화목을 지향한다. 오순절 성령 강림의 약속은 자녀들이 예언하고,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이 꿈을 꾸는 공동체적 회복으로 표현된다.[15] 이는 성령께서 세대 전체를 하나님 나라의 증언자로 세우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교회는 노년 세대와 젊은 세대를 분리된 이해집단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세대통합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적 모습이다. 노인성도는 젊은 세대를 축복하고, 젊은 세대는 노인성도를 존중하며,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증언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성이다.
세대통합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역 안에서 이루어진다. 성부께서는 세대에서 세대로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성자께서는 모든 세대의 유일한 주와 구주가 되시며, 성령께서는 늙은이와 젊은이와 자녀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 세우신다. 그러므로 세대통합 교회론은 단순한 목회 전략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언약 성취를 드러내는 교회의 표지이다.
6. 노년기 교회생활의 왜곡과 회복
1) 왜곡된 노년기 교회생활
노년기 교회생활은 여러 방식으로 왜곡될 수 있다. 첫째, 수동화이다. 노인성도를 단지 돌봄의 대상으로만 여기면, 그들은 교회 안에서 사명을 잃고 수동적 위치에 머물게 된다. 둘째, 권위주의이다. 노인성도가 자신의 연륜을 절대화하여 젊은 세대를 통제하려 하면, 세대 간 갈등이 깊어진다. 셋째, 고립이다. 노년 세대가 자기들끼리만 모이고 젊은 세대와 단절되면, 신앙 전승이 약해진다. 넷째, 원망이다. 과거의 헌신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노인성도는 불평과 섭섭함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왜곡은 모두 복음 안에서 교정되어야 한다. 노인성도는 자기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로 서야 하며, 자기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해야 한다. 교회도 노인성도를 단순한 관리 대상으로 보지 말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귀한 지체로 세워야 한다.
왜곡된 교회생활의 회복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 안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이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성부께서는 교회를 자기 백성의 공동체로 세우시고, 성자께서는 교회의 머리로서 죄와 분열을 십자가 아래 다루시며,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 회개와 사랑과 화목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2) 회복된 노년기 교회생활
회복된 노년기 교회생활은 다음과 같은 모습을 가진다. 첫째, 예배 중심성이다. 노인성도는 예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한다. 둘째, 말씀 중심성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말씀 아래 두고 해석한다. 셋째, 기도 중심성이다. 그는 교회와 후대를 위해 중보하는 자로 선다. 넷째, 은사 중심성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와 형편에 따라 교회를 섬긴다. 다섯째, 세대통합성이다. 그는 젊은 세대와 만나 신앙을 전승한다.
회복된 노년기 교회생활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노인성도는 자신의 마지막까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송하는 증인으로 선다. 그의 예배, 기도, 권면, 봉사, 침묵, 인내, 죽음 준비까지도 교회에 복음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회복된 노년기 교회생활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낸다. 성부께서는 노인성도를 끝까지 자기 백성으로 붙드시고, 성자께서는 그를 자기 몸의 지체로 사용하시며, 성령께서는 그의 연약함 속에서도 교회를 세우는 은사를 나타내신다. 그러므로 노년기 교회생활은 쇠퇴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더욱 깊이 증언하는 성숙의 시간이다.
7. 제10장 요약
본 장은 노년기의 교회생활을 예배와 성례 참여, 권면과 중보기도, 봉사와 은사, 세대통합 교회론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노인성도는 교회 안에서 단지 돌봄을 받는 대상이 아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이며, 하나님 나라의 공인이며, 후대에게 하나님의 섭리를 증언하는 성숙한 성도이다.
특히 본 장에서 중요한 수정점은 ‘여호와’의 칭호를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하는 것이다. 교회가 예배하고 고백하는 여호와 하나님은 구약의 언약 역사 속에서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보존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이 이름을 구약적 명칭에만 머물러 이해하지 않는다.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영원히 계시는 한 분 하나님이시며, 성부께서 교회를 택하시고, 성자께서 피로 교회를 사시며, 성령께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고 끝까지 견인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예배와 성례는 노인성도의 정체성을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확인하게 한다. 권면과 중보기도는 노인성도가 교회를 세우는 중요한 방식이다. 봉사와 은사는 일의 양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은퇴는 사명의 종료가 아니라 사역 방식의 변화이다. 세대통합 교회론은 노인성도를 젊은 세대와 연결하여 언약 전승의 사명을 감당하게 한다.
그러므로 노년기의 교회생활은 “끝까지 예배하고, 깊이 기도하며, 겸손히 권면하고, 은사대로 섬기며, 후대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증언하는 생활”이다. 교회는 노인성도를 이러한 공적 증언의 자리로 세워야 하며, 노인성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기까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지체로 살아가야 한다.
각주
[1] 엡 1:22–23; 골 1:18.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는 그의 몸이다.
[2] 고전 12:12–27. 바울은 몸의 지체 비유를 통해 약하게 보이는 지체도 몸에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7장 1항. 성례는 은혜언약의 거룩한 표와 인으로서 그리스도와 그의 은택을 나타내고, 그 안에 있는 성도의 유익을 확증한다.
[4] 고전 15:20–26, 54–57.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 소망과 죽음에 대한 승리의 근거이다.
[5] 고전 11:23–26. 성찬은 주께서 오실 때까지 그의 죽으심을 전하는 표이다.
[6] 딛 2:1–5. 늙은 남자와 늙은 여자는 절제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의 본을 보여야 하며, 젊은 세대를 교훈해야 한다.
[7] 딤전 2:1–2. 성도는 모든 사람과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해야 한다.
[8] 눅 22:31–32.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시고, 돌이킨 후 형제를 굳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9] 롬 12:4–8; 고전 12:4–11.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각 성도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신다.
[10]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장 2항. 선행은 참되고 살아 있는 믿음의 열매이며 증거로서, 성도는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형제에게 유익을 준다.
[11] 마 10:42. 주의 제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코 상을 잃지 않는다.
[12] 신 31:7–8; 대상 28:9–10. 모세는 여호수아를 세웠고, 다윗은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의 사명을 권면하였다.
[13] 고전 12:12–27; 엡 4:15–16. 교회는 여러 세대와 여러 은사를 가진 지체들이 함께 자라가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14] 신 4:9; 시 78:4–7.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자녀와 손자에게 전하는 것은 언약 공동체의 교육 사명이다.
[15] 욜 2:28–29; 행 2:17–18. 성령의 부어 주심은 자녀, 젊은이, 늙은이 모두를 포함하는 세대 통합적 약속으로 제시된다.
[1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장 3항. 신격의 단일성 안에 동일한 본질과 능력과 영원성을 가진 삼위,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계신다.
[1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장 1–3항. 보편 교회는 택함 받은 자들의 전체 수로 구성되며, 가시적 교회는 참 종교를 고백하는 모든 자와 그 자녀로 구성된다.
[1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6장 1–2항.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서로의 은사와 은혜에 참여하며, 사랑 안에서 서로의 유익을 위해 교제해야 한다.
[1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7장 1항. 성례는 은혜언약의 표와 인이며, 그리스도와 그의 은택을 나타내고 성도에게 확증한다.
[20]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54–175문. 말씀, 성례, 기도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에 주신 은혜의 외적 수단이며, 성도는 이를 통해 믿음이 강화되고 은혜 가운데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