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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백발

Re: Re: 제Ⅳ부 교회와 노인성도 사역

작성자펄군|작성시간26.06.08|조회수1 목록 댓글 0

 

첨부하신 제13장 원문을 기준으로 재개정했습니다. 원문은 교회의 노인사역을 복지 중심에서 말씀 중심·증언 중심·세대통합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부 교회와 노인성도 사역

13장 교회의 노인사역 재구성

복지 중심에서 말씀 중심·증언 중심·세대통합 중심으로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디모데후서 2장 2절

 

 

1. 문제 제기: 교회는 노인성도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

교회 안에서 노인성도는 어떤 존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교회의 노인사역 방향을 결정한다. 노인성도를 단지 돌봄과 위로의 대상으로만 보면, 교회의 노인사역은 식사 제공, 심방, 여행, 위문, 의료지원, 장례 돌봄 중심으로 제한되기 쉽다. 이러한 사역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노인성도는 단지 돌봄을 받는 수혜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언약 전승의 증인이다.

기독교 노인학의 관점에서 교회의 노인사역은 복지 중심 사역을 넘어 말씀 중심, 증언 중심, 세대통합 중심 사역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노인성도는 하나님께서 평생 동안 섭리하신 삶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그 은혜를 후대에 전하며,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권면하는 공적 성도이다. 교회가 이 사실을 놓치면 노인성도는 사역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반대로 교회가 이 정체성을 회복하면 노인성도는 교회의 기억과 지혜와 기도의 중요한 통로가 된다.

이때 노인성도가 증언하는 하나님은 막연한 신적 존재가 아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언약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이시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알리셨고, 그 이름은 언약을 세우시고 지키시며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낸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서 ‘여호와’의 칭호는 구약의 역사적 명칭에만 머물러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여호와’의 칭호는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할 언약적 이름이다. 곧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영원히 계시는 한 분 하나님이시며, 성부께서 교회를 택하시고, 성자께서 자기 피로 교회를 사시며, 성령께서 말씀과 은혜의 방편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시고 성도를 끝까지 견인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교회의 노인사역은 두 극단을 피해야 한다. 하나는 노인성도를 방치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 없는 교회의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노인성도를 돌봄의 대상으로만 고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노인성도의 사명을 약화시킨다. 성경적 노인사역은 돌봄과 사명을 함께 붙든다. 노인성도는 돌봄을 받아야 할 때 돌봄을 받아야 하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경륜으로 교회를 섬겨야 한다.

따라서 본 장은 교회의 노인사역을 네 방향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첫째, 복지 중심 노인사역의 한계를 살핀다. 둘째, 말씀 중심 노인사역의 원리를 제시한다. 셋째, 노인성도를 사역의 주체로 세우는 방안을 논한다. 넷째, 세대통합형 교회교육 모델을 제안한다.

 

 

2. 복지 중심 노인사역의 필요와 한계

1) 복지 중심 사역은 필요하다

교회의 노인사역에서 복지적 돌봄은 반드시 필요하다. 노년에는 건강의 약화, 이동의 어려움, 경제적 불안, 고독, 상실, 죽음의 두려움이 찾아올 수 있다. 교회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사랑의 공동체라 할 수 없다. 성경은 약한 자를 돌아보는 일을 하나님 백성의 중요한 책임으로 가르친다.[1]

교회는 노인성도의 실제적 필요를 살펴야 한다. 병든 노인성도를 방문하고, 거동이 불편한 성도를 예배로 연결하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성도를 돕고, 홀로 사는 성도를 정기적으로 돌보며, 장례와 상실의 과정에서 가족을 위로해야 한다. 이러한 돌봄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서로의 짐을 지는 사랑의 표현이다.[2]

그러므로 복지 중심 사역을 단순히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식사 한 끼, 차량 지원, 병원 동행, 안부 전화, 심방, 기도는 모두 귀하다. 주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작은 섬김도 하나님 앞에서 의미가 있다.[3]

다만 이 돌봄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반영해야 한다. 성부께서는 자기 백성을 가족으로 부르시고, 성자께서는 약한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목자로 교회를 돌보시며, 성령께서는 성도 안에 사랑과 긍휼과 섬김의 마음을 일으키신다. 그러므로 교회의 복지 사역은 일반적 선행을 넘어, 여호와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은혜를 드러내는 사역이어야 한다.

2) 그러나 복지가 노인사역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복지적 돌봄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노인사역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교회가 노인사역을 복지와 친교 중심으로만 운영하면, 노인성도는 수동적 위치에 머물게 된다. 그는 돌봄을 받는 사람으로는 남지만, 교회를 세우는 증인으로는 세워지지 못한다.

복지 중심 사역의 한계는 네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노인성도의 신앙적 정체성이 약화될 수 있다. 둘째, 노인성도의 은사와 경륜이 교회 안에서 사용되지 못할 수 있다. 셋째,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의 신앙 전승이 단절될 수 있다. 넷째, 노인사역이 행사 중심으로 흘러 말씀과 기도의 중심성을 잃을 수 있다.

노인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만이 아니라 사명이다. 그는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지체이면서 동시에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권면하고 증언해야 할 성숙한 지체이다. 교회는 이 두 측면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

복지가 사명과 분리될 때 노인성도는 교회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그러나 복지가 말씀과 증언과 연결될 때, 노인성도는 돌봄을 받는 가운데서도 하나님 나라의 공인으로 세워진다. 그는 받은 돌봄을 감사와 기도와 찬송과 권면으로 다시 공동체에 흘려보내는 성숙한 지체가 된다.

3) 복지는 말씀 아래 있어야 한다

교회의 복지는 말씀 아래 있어야 한다. 말씀 없는 복지는 일반 사회복지와 구별되기 어렵다. 물론 교회도 사회복지의 전문성과 제도적 지혜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교회의 노인복지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나님 나라의 관점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말씀 아래 있는 복지는 노인성도를 존귀하게 세운다. 노인성도는 단지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신 성도이다. 그의 삶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의미가 있고, 그의 남은 시간도 하나님 나라의 사명 안에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복지사역은 돌봄과 말씀을 결합해야 한다. 심방은 단순한 안부 확인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의 시간이어야 한다. 식사는 단순한 친교가 아니라 감사와 교제의 자리여야 한다. 장례 돌봄은 단순한 절차 지원이 아니라 부활 소망을 선포하는 신앙교육의 자리여야 한다.

말씀 아래 있는 복지는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적 돌보심을 삼위일체적으로 드러낸다. 성부께서는 노인성도의 생애와 필요를 아시고, 성자께서는 자기 몸 된 교회를 통해 그들을 돌보시며, 성령께서는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그 돌봄을 신앙의 위로와 사명으로 바꾸신다. 그러므로 교회의 복지는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나타내시는 언약적 사랑의 실천이다.

 

 

3. 말씀 중심 노인사역의 회복

1) 노인사역의 중심은 말씀이다

교회의 모든 사역 중심에는 말씀이 있어야 한다. 노인사역도 예외가 아니다. 노인성도는 말씀을 통해 자신의 노년을 해석해야 한다. 몸이 약해지는 이유, 질병과 죽음의 현실, 가족관계의 변화, 은퇴와 재산관리, 고독과 상실의 문제는 모두 말씀의 빛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말씀 중심 노인사역은 노인성도를 단순히 위로하지 않는다. 그것은 노인성도의 생각과 가치관을 하나님의 나라와 의의 관점으로 재정렬한다. 성도는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삶이 우연한 생존의 연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배운다. 또한 그리스도의 의가 아니고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음을 배운다. 그리고 새 창조의 소망 안에서 죽음까지도 믿음으로 해석하게 된다.

노인성도에게 필요한 말씀교육은 단편적 교훈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언약 구조를 보여주는 교육이어야 한다. 창조, 타락, 언약, 그리스도, 교회, 완성의 흐름 안에서 자기 인생을 다시 읽게 해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 노인학적 말씀교육의 핵심이다.

이 말씀교육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신약의 충만한 계시 안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한 분 하나님이시다. 성부의 작정과 섭리, 성자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 성령의 적용과 성화와 견인 안에서 노인성도는 자신의 생애를 해석해야 한다. 그러므로 말씀 중심 노인사역은 ‘여호와’의 이름을 삼위일체 언약 계시 안에서 충만히 가르치는 사역이어야 한다.

2) 노인성도는 말씀을 배우는 학생이다

노년은 배움이 끝나는 시기가 아니다. 노인성도는 여전히 말씀을 배워야 한다. 성도는 평생 하나님을 배운다. “늙었으니 이제 배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성경적이지 않다. 노년은 오히려 말씀과 삶의 경험이 깊이 만나는 시기이다.

노인성도는 젊은 시절과 다른 방식으로 말씀을 배운다. 젊은 시절에는 지식을 쌓고 교리를 정리하는 배움이 중요했다면, 노년에는 배운 말씀을 자신의 삶 전체에 비추어 해석하는 배움이 중요하다. 그는 말씀을 통해 지나온 고난을 다시 해석하고, 상실을 다시 해석하며, 죽음을 다시 해석한다.

교회는 노인성도를 위한 말씀교육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단순한 친교 모임이나 건강 강좌만이 아니라, 노년의 신학, 죽음과 부활, 언약 전승, 기도와 찬송, 장례 신앙, 세대통합 교육을 포함해야 한다. 노인성도는 말씀 안에서 다시 세워질 때, 교회 안에서 증언자로 설 수 있다.

이 배움의 중심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노인성도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배운다. 그러나 이 신실하심은 성부께서 택하시고 섭리하시며, 성자께서 구속하시고 중보하시며, 성령께서 믿음을 주시고 끝까지 견인하시는 은혜 안에서 충만히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노년의 말씀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하나님을 깊이 경외하고 찬송하는 신앙의 훈련이 된다.

3) 노인성도는 말씀을 전하는 증인이다

노인성도는 말씀을 배우는 학생이면서 동시에 말씀을 전하는 증인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이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게 하라고 명하였다.[4] 이것은 신앙 전승의 기본 구조이다. 받은 말씀은 다음 세대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노인성도는 자신의 경험을 말씀 아래 두고 후대에게 전해야 한다. 단순한 인생 경험은 교훈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자기 자랑이나 훈계로 흐를 수 있다. 그러나 말씀으로 해석된 경험은 증언이 된다. “내가 이렇게 살았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인도하셨다”고 말할 때, 노인성도의 경험은 복음의 증거가 된다.

교회는 노인성도가 자신의 신앙 이야기를 정리하고 나눌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간증 모임, 세대 간 대화, 신앙 회고록, 가족 신앙 유언, 장례 설교 자료 정리, 기도 제목 기록 등은 노인성도의 증언을 교회의 유산으로 보존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증언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을 전하는 증언이다. 그러나 그것은 구약적 역사 기억에만 머물지 않는다. 노인성도는 성부께서 자신의 생애를 섭리로 이끄셨고, 성자께서 자신의 죄와 죽음을 담당하셨으며, 성령께서 믿음과 인내를 붙드셨음을 증언해야 한다.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증언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후대에게 전하는 복음적 증언이다.

 

 

4. 노인성도를 사역의 주체로 세우기

1) 노인성도는 수혜자이면서 동역자이다

교회는 노인성도를 돌보아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노인성도를 동역자로 세워야 한다. 바울은 교회를 한 몸으로 설명하면서, 약하게 보이는 지체도 몸에 필요하다고 말한다.[5] 노인성도는 교회의 약한 지체일 수 있으나, 결코 불필요한 지체가 아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데 필요한 지체이다.

노인성도를 사역의 주체로 세운다는 것은 그에게 무리한 일을 맡긴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가진 은사와 건강과 형편에 맞게 교회를 섬기도록 돕는다는 뜻이다. 어떤 노인성도는 기도 사역을 감당할 수 있고, 어떤 이는 권면과 상담을 할 수 있으며, 어떤 이는 찬송과 예배의 본을 보일 수 있다. 또 어떤 이는 교회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노인성도에게 “당신은 아직 교회에 필요하다”는 신앙적 확신을 심어 주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심리적 격려가 아니다. 성경적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고 교회 안에 두신 동안, 성도에게는 감당할 사명이 있다.

이 사명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회 세우심 안에서 주어진다. 성부께서는 노인성도를 교회 안에 두시고, 성자께서는 그를 자기 몸의 지체로 사용하시며, 성령께서는 연약함 속에서도 은사와 기도의 능력을 주신다. 그러므로 노인성도는 단지 수혜자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는 일에 참여하는 동역자이다.

2) 노인성도의 사역 영역

노인성도의 사역은 다음과 같이 구체화될 수 있다.

첫째, 기도 사역이다. 노인성도는 교회와 목회자와 다음 세대를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영적 파수꾼이 될 수 있다.[6]

둘째, 권면 사역이다. 말씀과 경험으로 젊은 성도들을 격려하고, 가정과 신앙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지혜를 나눌 수 있다.[7]

셋째, 증언 사역이다.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섭리를 말씀 안에서 해석하여 후대에게 전할 수 있다.[8]

넷째, 환대 사역이다. 새가족, 병든 성도, 외로운 성도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돌볼 수 있다.

다섯째, 기억 사역이다. 교회의 역사와 신앙의 발자취를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할 수 있다.

여섯째, 장례 신앙 사역이다.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방식과 다른 성도의 장례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부활 소망을 증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역은 반드시 공식 직분이나 행정 조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작은 모임, 가정, 심방, 예배 전후의 대화, 기도회, 세대 간 만남 속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노인성도의 모든 사역은 은혜의 열매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는 자기 공로를 쌓기 위해 사역하지 않는다. 성부께 받은 삶을 성자 안에서 감사로 드리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교회와 후대를 섬긴다.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사역은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 나라의 증언이 될 수 있다.

3) 노인성도 사역의 배치 원리

노인성도를 사역의 주체로 세우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배치가 필요하다. 첫째, 건강을 고려해야 한다. 무리한 봉사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둘째, 은사를 고려해야 한다. 모든 노인에게 같은 사역을 맡겨서는 안 된다. 셋째, 성숙도를 고려해야 한다. 연륜이 곧 영적 성숙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넷째, 세대 간 관계성을 고려해야 한다. 젊은 세대와 연결할 때는 상호 존중과 경청의 구조가 필요하다.

노인성도 사역은 강요가 아니라 부르심의 확인이어야 한다. 교회는 노인성도에게 “무엇을 더 해야 한다”고 압박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은사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를 함께 분별해야 한다. 이때 노인성도는 부담이 아니라 기쁨으로 사역에 참여하게 된다.

이 분별은 말씀과 기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성부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분량이 있고, 성자께서 자기 몸의 지체들을 질서 있게 세우시며,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신다. 따라서 노인성도 사역의 배치는 행정적 효율보다 언약 공동체의 질서와 은혜를 우선해야 한다.

4) 사역 주체화의 위험과 교정

노인성도를 사역의 주체로 세울 때도 위험이 있다. 하나는 권위주의이다. 노인성도가 자신의 연륜을 앞세워 젊은 세대를 통제하려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공로주의이다. 과거의 헌신을 근거로 현재의 영향력을 주장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비교와 원망이다.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며 섭섭함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은 복음으로 교정되어야 한다. 노인성도의 사역은 자기 의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이다. 그는 섬기되 주장하지 않고, 권면하되 정죄하지 않으며, 기억하되 과거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양 무리 위에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고 본이 되라고 권면하였다.[9] 이 원리는 모든 노인성도 사역에도 적용된다.

사역의 주체화는 노인성도를 높이는 인간 중심 전략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교회의 모든 지체를 사용하신다는 교회론적 고백이다. 성부께서는 노인성도를 여전히 자기 백성으로 붙드시고, 성자께서는 그를 자기 몸 안에서 사용하시며, 성령께서는 그의 연약함 속에서도 교회를 세우는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사역은 자기 권위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야 한다.

 

 

5. 세대통합형 교회교육 모델

1) 세대통합은 선택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이다

교회는 세대별 집합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한 몸이다. 어린이, 청년, 장년, 노년은 각각 따로 존재하는 교회가 아니라 한 교회의 지체이다. 세대별 교육과 모임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세대 간 단절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자녀와 손자에게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전하도록 명하셨다.[10]

세대통합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다. 복음은 한 세대 안에 갇히지 않는다. 믿음은 듣는 데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11] 그러므로 말씀은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져야 한다. 노인성도는 이 전승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세대통합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드러내는 교회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한다. 성부께서는 세대에서 세대로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성자께서는 모든 세대의 유일한 주와 구주가 되시며, 성령께서는 늙은이와 젊은이와 자녀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 세우신다. 그러므로 세대통합은 단순한 교육 방법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언약 성취를 드러내는 교회론적 표지이다.

2) 세대통합 교육의 기본 원리

세대통합 교육은 다음 원리에 따라 구성되어야 한다.

첫째, 말씀 중심성이다. 세대 간 만남은 단순한 친교가 아니라 말씀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상호 경청이다. 노년 세대는 말하기만 하고 젊은 세대는 듣기만 하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의 질문과 경험을 나누는 구조여야 한다.

셋째, 신앙 증언이다. 노인성도는 자기 경험을 말씀으로 해석하여 나누어야 한다.

넷째, 기도 연결이다. 세대 간 기도 짝, 가정별 기도, 청년을 위한 노년 세대의 중보기도가 필요하다.

다섯째, 공동 섬김이다. 노년 세대와 젊은 세대가 함께 봉사하며 서로의 은사를 배우도록 해야 한다.

세대통합 교육의 목적은 젊은 세대가 노년 세대의 과거를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다. 목적은 함께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다. 노년 세대는 젊은 세대의 질문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이해하고, 젊은 세대는 노년 세대의 증언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배운다.

이때 함께 배우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세대통합 교육은 단순히 “어른들의 경험을 듣는 시간”이 아니라, 성부의 섭리, 성자의 복음, 성령의 적용 안에서 각 세대의 삶을 해석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그래야 전승은 전통의 반복이 아니라 복음의 계승이 된다.

3) 세대통합 교육의 실제 모델

교회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세대통합형 노인사역을 운영할 수 있다.

첫째, “신앙 인생 나눔” 모임이다. 노인성도가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정리하여 젊은 세대와 나눈다.

둘째, “기도 짝” 사역이다. 노인성도와 청년 또는 청소년을 연결하여 정기적으로 서로를 위해 기도하게 한다.

셋째, “성경과 인생” 대화 모임이다. 한 본문을 함께 읽고, 노년 세대는 삶의 경험을 나누며 젊은 세대는 현재의 질문을 나눈다.

넷째, “가정 신앙 유산 기록” 사역이다. 노인성도가 자녀와 손자녀에게 남길 신앙 고백, 기도 제목, 유언적 권면을 글로 정리한다.

다섯째, “장례와 부활 소망 교육”이다. 노년 세대와 젊은 세대가 함께 죽음과 부활의 신앙을 배우며, 성도의 마지막이 무엇을 증언해야 하는지 배운다.

여섯째, “공동 봉사 프로젝트”이다. 노년 세대와 젊은 세대가 함께 환우 심방, 지역 섬김, 교회 기록 정리, 선교 후원 등의 사역을 감당한다.

이러한 모델은 노인성도를 고립시키지 않고, 교회의 중심적 증언자로 세운다. 또한 젊은 세대가 신앙을 추상적 교리로만 배우지 않고, 한 생애 속에서 말씀과 은혜가 어떻게 견디고 열매 맺는지를 보게 한다.

4) 세대통합 사역의 열매

세대통합 사역은 교회에 여러 열매를 가져온다. 첫째, 젊은 세대는 믿음의 실제성을 배운다. 교리가 삶 속에서 어떻게 견디고 증언되는지를 본다. 둘째, 노인성도는 자신의 삶이 교회에 여전히 필요함을 확인한다. 셋째, 교회는 세대 간 갈등을 줄이고 상호 존중의 문화를 형성한다. 넷째, 신앙 전승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다섯째, 죽음과 부활 소망에 대한 교회의 교육이 깊어진다.

세대통합은 교회의 미래를 위한 전략만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가 본래 가져야 할 모습이다. 노년 세대와 젊은 세대가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함께 말씀을 배우며, 함께 기도하고, 함께 섬길 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더욱 건강하게 세워진다.

세대통합의 열매는 성령께서 교회 안에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의 표지이다. 성부께서 한 가족으로 부르신 백성이, 성자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성령 안에서 서로 다른 세대가 하나의 증언 공동체로 세워질 때,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세상 앞에 나타낸다.

 

 

6. 노인사역을 위한 교회의 구조 개혁

1) 노인사역 부서의 재정의

교회의 노인사역 부서는 단순한 친교와 돌봄 부서로만 정의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말씀교육, 기도사역, 신앙전승, 장례신학, 세대통합, 복지돌봄을 통합하는 사역이어야 한다. 명칭도 “노인부”보다 “노년신앙부”, “언약전승부”, “시니어말씀학교” 등 사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고민할 수 있다.

노인사역 부서는 다음 기능을 포함해야 한다. 첫째, 말씀교육 기능이다. 둘째, 돌봄과 심방 기능이다. 셋째, 중보기도 기능이다. 넷째, 세대통합 기능이다. 다섯째, 신앙기록과 증언 기능이다. 여섯째, 죽음과 장례 준비 교육 기능이다. 이러한 구조가 마련될 때 노인사역은 행사 중심에서 신학적 사역으로 전환된다.

이 구조 개혁은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다. 그것은 교회가 노인성도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신학적 고백이다. 노인성도는 성부께서 교회 안에 두신 존귀한 지체이며, 성자께서 피로 사신 성도이고, 성령께서 은사와 기도로 세우시는 증인이다. 그러므로 노인사역 부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회 세우심 안에서 노인성도를 말씀과 증언과 세대통합의 주체로 세우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2) 목회자와 직분자의 역할

목회자와 직분자는 노인성도를 단순한 관리 대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목회자는 노인성도에게 말씀으로 노년의 의미를 가르치고, 그들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해석하도록 도와야 한다. 장로와 권사는 노인성도의 돌봄과 권면, 기도와 심방, 세대통합 사역을 함께 감당해야 한다.

특히 직분자들은 노인성도의 은사를 발견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어떤 노인성도는 기도 사역에 적합하고, 어떤 이는 상담과 권면에 적합하며, 어떤 이는 교회 역사 기록에 적합하다. 교회는 이러한 은사를 방치하지 말고 질서 있게 세워야 한다.

목회자와 직분자의 역할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을 교회 안에서 섬기는 역할이다. 목회자는 성부께서 맡기신 양 무리를 말씀으로 돌보고, 성자의 목자 되심을 따라 섬기며, 성령의 은사와 열매가 각 성도 안에서 나타나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므로 노인사역의 지도자는 노인성도를 행정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증언하도록 세우는 말씀의 동역자이다.

3) 노인성도 자신의 책임

노인사역의 재구성은 교회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인성도 자신도 책임을 가져야 한다. 그는 “교회가 나를 어떻게 섬겨 주는가”만을 묻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교회를 어떻게 세우기 원하시는가”를 물어야 한다.

노인성도는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며, 말의 절제를 배우고, 젊은 세대를 축복하며, 과거의 공로를 주장하기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삶을 말씀 안에서 정리하고, 죽음과 장례까지도 복음의 증언이 되도록 준비해야 한다.

노인성도의 책임은 자기 힘으로 감당하는 도덕적 부담이 아니다. 성부께서 남은 날을 맡기시고, 성자께서 의와 생명이 되시며, 성령께서 연약함 속에서도 순종의 힘을 주신다. 그러므로 노인성도는 자기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교회의 기도자, 권면자, 증언자, 세대통합의 연결자로 서야 한다.

 

 

7. 13장 요약

본 장은 교회의 노인사역을 복지 중심에서 말씀 중심·증언 중심·세대통합 중심으로 재구성해야 함을 제시하였다. 복지적 돌봄은 필요하다. 그러나 복지가 노인사역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교회는 노인성도를 돌봄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공인과 언약 전승의 증인으로 세워야 한다.

특히 본 장에서 중요한 수정점은 ‘여호와’의 칭호를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하는 것이다. 교회가 노인성도를 세울 때 증언하게 해야 할 하나님은 단순한 일반 신 개념이 아니다. 구약에서 여호와는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언약을 세우시며, 세대에서 세대로 자기 신실하심을 나타내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이 이름을 구약적 명칭에만 머물러 이해하지 않는다.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영원히 계시는 한 분 하나님이시며, 성부의 택하심과 섭리, 성자의 구속과 교회의 머리 되심, 성령의 적용과 은사와 견인 안에서 자기 교회를 세우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말씀 중심 노인사역은 노인성도가 자신의 노년을 성경 전체의 언약 구조 안에서 해석하도록 돕는다. 노인성도는 말씀을 배우는 학생이며 동시에 후대에게 말씀을 전하는 증인이다. 교회는 노인성도를 기도자, 권면자, 증언자, 환대자, 기억의 보존자, 장례 신앙의 증인으로 세워야 한다. 또한 세대통합형 교회교육을 통해 노년 세대와 젊은 세대가 함께 하나님을 배우고 신앙을 전승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노인사역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회론의 문제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노인성도는 그 몸의 존귀한 지체이다. 교회는 노인성도를 끝까지 예배하는 자, 깊이 기도하는 자, 겸손히 권면하는 자, 은사대로 섬기는 자, 후대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증언하는 자로 세워야 한다.

 

 

각주

[1] 신 10:18–19; 약 1:27. 성경은 약한 자와 돌봄이 필요한 자를 돌보는 일을 하나님 백성의 중요한 책임으로 가르친다.

[2] 갈 6:2. 성도는 서로의 짐을 짐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해야 한다.

[3] 마 10:42. 주의 제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코 상을 잃지 않는다.

[4] 딤후 2:2. 바울은 디모데에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게 하라고 명한다.

[5] 고전 12:12–27.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약하게 보이는 지체도 몸에 필요하다.

[6] 딤전 2:1–2. 성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해야 한다.

[7] 딛 2:1–5. 늙은 남자와 늙은 여자는 경건과 절제와 선한 교훈의 본을 보여야 하며, 젊은 세대를 교훈해야 한다.

[8] 신 4:9; 시 71:17–18.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자녀와 손자에게 알리고,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은 노년 세대의 중요한 사명이다.

[9] 벧전 5:1–4.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양 무리 위에 주장하는 자세가 아니라 본이 되라고 권면한다.

[10] 신 6:4–9; 시 78:4–7. 하나님의 말씀과 행하신 일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은 언약 공동체의 교육 사명이다.

[11] 롬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12] 욜 2:28–29; 행 2:17–18. 성령의 부어 주심은 자녀, 젊은이, 늙은이를 포함하는 세대 통합적 약속으로 제시된다.

[1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장 3항. 신격의 단일성 안에 동일한 본질과 능력과 영원성을 가진 삼위,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계신다.

[1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장 1–3항. 보편 교회는 택함 받은 자들의 전체 수로 구성되며, 가시적 교회는 참 종교를 고백하는 모든 자와 그 자녀로 구성된다.

[1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6장 1–2항.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서로의 은사와 은혜에 참여하며, 사랑 안에서 서로의 유익을 위해 교제해야 한다.

[1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7장 1항. 성례는 은혜언약의 거룩한 표와 인으로서 그리스도와 그의 은택을 나타내고, 성도의 유익을 확증한다.

[17]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54문. 말씀, 성례, 기도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에 주신 은혜의 외적 수단이다.

[18]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23–133문. 제5계명은 각 사람의 지위와 관계에 따라 마땅한 존경과 책임을 요구한다.

[19]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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