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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Re: Re: Re: Re: 제15장 노년기 위기와 목회 상담

작성자펄군|작성시간26.06.09|조회수2 목록 댓글 0

 

첨부하신 제15장 원문을 기준으로 재개정했습니다. 원문은 노년기의 위기를 고독·상실·질병·죽음의 두려움·가족 갈등·경제 불안·신앙 침체의 목회 상담 관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15장 노년기 위기와 목회 상담

고독·상실·질병·죽음의 두려움·가족 갈등·경제 불안·신앙 침체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편 1–2절

 

 

1. 문제 제기: 노년기의 위기를 어떻게 상담할 것인가

노년기는 인생의 풍성한 결실기이지만 동시에 여러 위기가 집중되는 시기이다. 건강은 약해지고, 사회적 역할은 줄어들며, 배우자와 친구를 먼저 떠나보내는 일이 많아진다. 자녀와의 관계도 달라지고, 경제적 불안과 죽음의 두려움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위기는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이 자기 인생 전체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신앙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독교 노인학은 노년기의 위기를 단순히 심리적 안정이나 사회적 적응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물론 심리적 돌봄과 사회적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성도에게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이 위기 속에서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나는 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부활 소망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새롭게 해석하게 하는가?” 노년기 목회 상담은 바로 이 질문들 앞에서 성도를 말씀으로 세우는 사역이다.

시편 121편은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고백한다. 여기서 ‘여호와’는 단순한 구약적 호칭이나 이스라엘 민족사의 신명칭으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여호와’의 칭호는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할 언약적 이름이다. 곧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영원히 계시는 한 분 하나님이시며, 성부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자기 백성을 섭리로 붙드시며, 성자께서 자기 백성을 죄와 죽음에서 구속하시고, 성령께서 성도 안에 거하시며 위로와 믿음과 인내를 주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노년기의 목회 상담은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일반적 위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상담은 노인성도가 자신의 위기를 성부의 섭리, 성자의 구속, 성령의 위로와 견인 안에서 해석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적 목회 상담을 일반 상담이나 단순한 정서적 위로와 구별하게 하는 핵심이다.

노년기 위기는 신앙을 약화시킬 수도 있고, 오히려 신앙을 더 깊게 할 수도 있다. 고독은 절망으로 흐를 수 있지만,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로 이끌 수도 있다. 상실은 원망이 될 수 있지만, 영원한 기업을 바라보게 할 수도 있다. 질병은 낙심이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배우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 죽음의 두려움은 성도를 흔들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을 더 깊이 붙들게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노년기 목회 상담의 목적은 단순히 노인성도의 감정을 안정시키는 데 있지 않다. 그 목적은 노인성도가 자신의 위기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 안에서 다시 해석하도록 돕는 데 있다. 목회 상담은 위기를 제거하는 기술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성령의 위로를 받도록 돕는 말씀 사역이다.

 

 

2. 고독과 목회 상담

1) 노년기의 고독

고독은 노년기의 대표적인 위기이다. 배우자와 친구를 먼저 떠나보내고, 자녀들이 독립하며, 사회적 역할과 관계망이 줄어들면 노인성도는 깊은 외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몸이 약해져 외출이 어렵거나, 청력과 시력이 약해져 대화가 줄어들면 고독은 더욱 깊어진다.

고독은 단순히 혼자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나는 잊힌 사람인가?”, “나는 아직 필요한 존재인가?”, “하나님께서도 나를 멀리하시는가?”라는 내면의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노년기의 고독은 정서적 문제이면서 동시에 신앙적 문제이다.

성경은 고독의 현실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시편에는 하나님 앞에서 외로움과 버림받은 듯한 마음을 토로하는 기도가 많다.[1] 그러나 성경은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는 분임을 증언한다. 사람은 떠날 수 있고, 관계는 약해질 수 있으나,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지키시며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신다.[2]

이때 “여호와께서 지키신다”는 고백은 삼위일체적으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한다. 성부께서는 자기 자녀를 잊지 않으시고, 성자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며, 성령께서는 성도 안에 거하시며 보혜사로 위로하신다.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고독은 “버려짐”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를 다시 배우는 자리로 해석될 수 있다.

2) 고독의 신학적 해석

고독은 인간이 본래 관계적 존재로 지음 받았음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다.[3]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공동체와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고독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적 존재인 인간이 겪는 깊은 결핍의 경험이다.

그러나 성도는 고독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배운다. 하나님은 성도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자기 백성과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다.[4] 성령께서는 성도 안에 거하시며 위로자와 보혜사로 역사하신다.[5] 그러므로 노인성도는 고독 속에서 “나는 혼자다”라는 감정에만 머물지 않고, “주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신앙은 현실적 관계를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회 공동체의 돌봄을 더욱 중요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교회라는 몸 안에 두셨다.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고독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문제이다.

고독의 신학적 해석은 삼위일체적이어야 한다. 성부께서는 인간을 관계적 존재로 창조하시고 교회 공동체 안에 두셨으며, 성자께서는 죄로 끊어진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셨고, 성령께서는 성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시며 교회 안에서 사랑의 교제를 가능하게 하신다. 따라서 고독 상담은 단순히 사회적 관계망을 늘리는 차원을 넘어,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제 안으로 성도를 다시 초대하는 사역이어야 한다.

3) 고독에 대한 목회적 돌봄

고독한 노인성도를 돌보는 목회 상담은 세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말씀으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확인시켜야 한다. 시편 23편, 시편 121편, 마태복음 28장 20절, 로마서 8장 38–39절과 같은 본문은 고독 속의 성도에게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증언한다.

둘째, 교회 공동체와 실제로 연결해야 한다. 정기 심방, 전화와 문자, 기도 짝, 소그룹 연결, 예배 참여 지원, 병상 성찬, 세대통합 만남 등은 노인성도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연결되어 있음을 실제로 경험하게 한다.

셋째, 노인성도를 다시 사명의 자리로 세워야 한다. 고독은 자신이 쓸모없다는 생각을 강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노인성도에게 기도 사명, 권면 사명, 신앙 증언 사명, 후대 축복의 사명을 일깨워야 한다. “나는 혼자 남았다”는 생각이 “나는 아직 기도할 사명이 있다”는 믿음으로 바뀔 때, 고독은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해석된다.

이 모든 돌봄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돌보심을 반영해야 한다. 성부께서는 고독한 성도를 잊지 않으시고, 성자께서는 그를 자기 몸의 지체로 붙드시며, 성령께서는 교회의 사랑을 통해 위로를 실제화하신다. 그러므로 고독에 대한 목회 상담은 말의 위로를 넘어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는 돌봄이어야 한다.

 

 

3. 상실과 목회 상담

1) 노년기의 상실

노년은 여러 상실을 경험하는 시기이다. 건강의 상실, 배우자와 친구의 상실, 직업과 역할의 상실, 경제력의 상실, 기억력과 활동력의 상실, 익숙한 환경의 상실이 연속적으로 찾아올 수 있다. 이러한 상실은 노인성도에게 깊은 슬픔과 허무를 가져온다.

상실은 단순히 무엇인가를 잃은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을 흔든다. 평생 일하던 사람이 은퇴하면 “나는 이제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배우자를 잃으면 “나는 이제 누구와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건강을 잃으면 “나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기독교 목회 상담은 이러한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질문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도록 돕는다. 성도는 상실을 애통할 수 있다. 성경은 애통을 금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도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우셨다.[6] 그러나 성도는 소망 없는 자와 같이 슬퍼하지 않는다.[7]

2) 상실의 신학적 해석

상실은 이 땅의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건강도, 관계도, 직업도, 재산도, 기억도, 이 땅의 집도 영원하지 않다. 노년의 상실은 이 사실을 매우 현실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성도는 상실 속에서 참으로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된다.

성도의 참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8] 성도의 참 기업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이다.[9] 성도의 참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10] 그러므로 상실은 성도에게 이 땅의 것을 절대화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기업을 바라보게 하는 신앙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상실의 고통을 가볍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상실을 최종 절망으로 만들지 않는다. 성도는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빼앗길 수 없는 은혜를 붙든다. 이것이 기독교적 애통이다.

상실 속에서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을 새롭게 배운다. 그러나 여호와의 언약적 신실하심은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한다. 성부께서는 상실 속에서도 자기 백성을 섭리로 붙드시고, 성자께서는 상실과 죽음의 자리까지 들어오셔서 부활의 소망을 여셨으며, 성령께서는 애통하는 성도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고 위로하신다. 그러므로 상실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를 배우는 자리이다.

3) 상실에 대한 목회적 돌봄

상실을 겪는 노인성도에게 목회자는 먼저 충분히 들어야 한다. 성급하게 교훈하거나 “믿음으로 이겨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상처가 될 수 있다. 애통의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 욥의 친구들이 처음에는 함께 앉아 침묵했을 때 더 지혜로웠던 것처럼, 목회 상담은 때로 함께 울고 함께 침묵하는 데서 시작된다.[11]

그 다음에는 말씀으로 상실을 해석하도록 도와야 한다. 시편의 탄식, 룻기의 상실과 회복, 요한복음 11장의 부활 소망, 고린도후서 4장 16–18절의 영원한 영광은 상실을 겪는 성도에게 중요한 본문이다.

마지막으로 상실 이후의 사명을 발견하도록 도와야 한다. 상실은 삶의 모든 의미를 끝내지 않는다. 배우자를 잃은 성도도 여전히 기도할 수 있고, 건강을 잃은 성도도 찬송할 수 있으며, 직업을 잃은 성도도 후대에게 지혜를 전할 수 있다. 목회 상담은 상실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사명을 보게 해야 한다.

상실 상담의 목표는 상실을 빨리 잊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성도가 상실을 성부의 섭리, 성자의 부활, 성령의 위로 안에서 다시 해석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럴 때 상실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영원한 기업을 바라보는 신앙의 통로가 된다.

 

 

4. 질병과 목회 상담

1) 노년기의 질병

노년기의 질병은 매우 현실적이고 빈번하다. 만성질환, 통증, 치매, 암, 심혈관 질환, 움직임의 제한, 시력과 청력의 약화 등은 노인성도의 삶을 크게 바꾼다. 질병은 몸만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신앙도 흔든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벌하시는가?”,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다.

기독교 상담은 질병을 단순한 의학적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그러나 질병을 무조건 영적 문제로만 보지도 않는다. 질병에는 신체적·정서적·사회적·영적 차원이 함께 있다. 따라서 목회자는 의학적 치료를 존중하면서도, 질병 속에서 성도가 하나님을 바르게 바라보도록 도와야 한다.

2) 질병의 신학적 해석

질병은 타락 이후 인간이 겪는 약함의 현실과 연결된다.[12] 그러나 특정 질병을 특정 죄의 직접적 결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이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셨다.[13]

질병은 성도에게 자기 한계를 가르친다. 인간은 자기 몸의 주인이 아니다. 생명과 호흡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 질병은 이 사실을 뼈저리게 배우게 한다. 그러나 질병은 또한 하나님의 능력을 배우는 자리이기도 하다. 바울은 자신의 약함 가운데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문다고 고백하였다.[14]

따라서 노인성도는 질병 속에서 두 가지를 함께 붙들어야 한다. 하나는 질병이 고통스러운 현실이라는 정직한 인식이다. 다른 하나는 질병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믿음이다.

질병 속의 여호와 신앙도 삼위일체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성부께서는 생명과 몸의 창조주와 섭리자이시며, 성자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대제사장이시고, 성령께서는 병든 성도 안에서 위로와 인내와 기도의 능력을 주신다. 그러므로 질병 상담은 단순한 긍정적 사고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을 붙들게 하는 말씀 사역이다.

3) 질병에 대한 목회적 돌봄

질병을 겪는 노인성도를 돌볼 때 교회는 말씀, 기도, 실제적 도움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 야고보서는 병든 자가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고, 장로들이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친다.[15] 이는 질병의 문제가 개인의 고립된 문제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함께 감당해야 할 문제임을 보여준다.

목회 상담은 질병을 겪는 노인성도에게 세 가지를 도와야 한다. 첫째, 죄책감과 잘못된 해석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둘째, 치료와 돌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도록 도와야 한다. 셋째, 병상에서도 감당할 수 있는 사명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 병상에 있는 성도도 기도할 수 있고, 가족에게 신앙의 말을 남길 수 있으며, 자신의 인내와 소망을 통해 그리스도를 증언할 수 있다.

질병에 대한 목회적 돌봄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돌보심을 반영해야 한다. 성부께서는 성도의 몸과 영혼을 아시고, 성자께서는 고난받는 성도의 중보자가 되시며, 성령께서는 교회의 기도와 말씀을 통해 병든 성도를 붙드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병든 노인성도를 단지 환자로 보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여전히 존귀한 지체로 돌보아야 한다.

 

 

5. 죽음의 두려움과 목회 상담

1) 죽음의 두려움

노년기의 가장 깊은 위기 중 하나는 죽음의 두려움이다. 죽음은 모든 사람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인간은 깊은 두려움을 경험할 수 있다. 통증에 대한 두려움, 혼자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가족을 남겨 두는 두려움, 심판에 대한 두려움, 죽음 이후에 대한 불확실성이 마음을 흔든다.

성경은 죽음을 가볍게 말하지 않는다. 죽음은 죄의 삯이며,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이다.[16] 그러므로 죽음을 단순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만 말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죽음은 타락 이후 인간에게 임한 엄연한 원수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셨다.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고,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사망의 쏘는 것이 패배했음을 선포한다.[17] 그러므로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할 수는 있으나, 죽음에게 최종 권세를 내어주지는 않는다.

2) 죽음의 신학적 해석

성도의 죽음은 불신자의 죽음과 동일하게 해석될 수 없다. 성도의 몸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며, 마지막 날 몸의 부활을 기다린다.[18]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은 허무의 종결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과 영화의 완성을 기다리는 과정이다.

이 소망은 막연한 위로가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에 근거한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므로, 그에게 속한 자들도 부활의 소망을 가진다.[19] 노인성도는 자신의 죽음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

죽음의 상담에서 중요한 것은 두려움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성도도 죽음 앞에서 떨릴 수 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그리스도께 가져가야 한다. 목회 상담은 성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리스도 안에서 두려움이 최종 승리를 얻지 못하는지를 말씀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죽음 앞에서 성도는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 고백은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더욱 충만하다. 성부께서는 자기 자녀를 영원한 집으로 부르시고, 성자께서는 죽음과 부활로 생명의 길을 여셨으며, 성령께서는 성도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과 소망을 붙드신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 안에서 해석되는 마지막 순례이다.

3) 죽음 준비와 목회적 돌봄

죽음 준비는 신앙적 준비, 관계적 준비, 실제적 준비를 포함한다. 신앙적 준비는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고 부활 소망을 붙드는 것이다. 관계적 준비는 가족과 화해하고, 용서와 감사의 말을 남기는 것이다. 실제적 준비는 유언, 장례, 재산, 의료적 결정 등을 질서 있게 정리하는 것이다.

교회는 노인성도가 죽음을 준비하도록 도와야 한다. 죽음을 말하는 것을 금기시하면, 성도는 혼자 두려움 속에 남게 된다. 오히려 교회는 성경적으로 죽음을 가르치고, 장례를 복음의 증언으로 준비하며, 가족에게 신앙의 유산을 남기도록 도와야 한다.

기독교 장례는 마지막 신앙교육의 자리이다. 성도의 장례는 죽음의 승리를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승리를 선포해야 한다. 노인성도는 자신의 마지막까지도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온다”고 고백하는 증인으로 설 수 있다.

이 장례의 고백은 삼위일체적이어야 한다. 성부께서 생애 전체를 섭리로 인도하셨고, 성자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으며, 성령께서 성도를 인치시고 끝까지 견인하셨음을 선포할 때, 장례는 단순한 이별 의식이 아니라 언약의 하나님을 증언하는 마지막 예배가 된다.

 

 

6. 가족 갈등과 목회 상담

1) 노년기의 가족 갈등

노년기에는 가족 갈등이 자주 발생한다. 돌봄 책임의 분담, 경제적 지원, 재산 상속, 거주 문제, 의료 결정, 배우자 사별 이후의 생활, 자녀와의 정서적 거리 등이 갈등의 원인이 된다. 부모는 자녀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자녀는 부모 돌봄의 부담을 느낄 수 있다. 형제자매는 상속 문제로 다툴 수 있다.

가족 갈등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며, 재물과 책임 앞에서 쉽게 이기적으로 된다. 그러므로 노년기의 가족 갈등은 심리적 조정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서로의 죄와 책임을 보아야 한다.

2) 가족 갈등의 신학적 해석

성경은 가정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족장들의 가정에도 편애, 속임, 경쟁, 상처가 있었다. 이삭의 가정과 야곱의 가정은 가족 갈등이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20] 그러나 하나님은 불완전한 가정 속에서도 언약을 이루셨다. 이것이 가정 상담의 소망이다.

부모와 자녀 관계는 제5계명의 질서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하며,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한다.[21] 노년기에도 이 원리는 계속된다. 자녀는 노부모를 부담으로만 보지 않아야 하고, 부모는 자녀를 소유하거나 통제하려 하지 않아야 한다.

가족 갈등의 회복은 그리스도의 용서와 화목 안에서 가능하다. 그리스도는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화목하게 하시는 분이다.[22] 가정 안의 화목도 그리스도의 은혜를 떠나서는 깊이 회복될 수 없다.

이 회복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언약 사역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성부께서는 가정을 창조 질서와 언약 전승의 자리로 세우셨고, 성자께서는 십자가로 화목을 이루셨으며, 성령께서는 굳어진 마음을 새롭게 하여 용서와 사랑과 절제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러므로 가족 갈등 상담은 단순한 관계 기술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화목케 하시는 은혜를 가정 안에 적용하는 사역이다.

3) 가족 갈등에 대한 목회적 돌봄

목회 상담은 가족 갈등에서 편을 가르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먼저 각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사실과 감정과 책임을 구분해야 한다. 그 다음 말씀 앞에서 각자의 의무를 확인해야 한다. 부모 공경, 자녀 사랑, 형제 화목, 재물에 대한 청지기직, 용서와 화해의 원리를 가르쳐야 한다.

상속과 재산 문제는 특히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목회자는 법률 전문가가 아니므로 법적 조언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신앙적 원칙은 제시할 수 있다. 탐욕을 경계하고, 공정성과 명확성을 추구하며, 가족의 화목을 재물보다 귀히 여기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정리하도록 권면해야 한다.

가족 갈등의 목회적 돌봄은 십자가 아래로 가족을 초대하는 일이다.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모두가 자기 의를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의와 용서를 붙들 때 회복의 길이 열린다. 성령께서 각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지 않으면 참된 화해는 어렵다. 그러므로 가정 상담은 말씀과 기도와 회개의 구조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7. 경제 불안과 목회 상담

1) 노년기의 경제 불안

노년기에는 경제 불안이 커질 수 있다. 은퇴 이후 소득이 줄어들고, 의료비와 돌봄 비용은 늘어난다. 자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과 실제 생활의 어려움이 충돌하기도 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불안할 수 있다.

경제 불안은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안전감, 자존감, 가족관계, 죽음 준비와 연결된다. 돈이 부족하면 불안하고, 돈이 많아도 잃을까 두려워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목회 상담은 경제 문제를 현실적으로 다루면서도, 재물에 대한 신앙적 해석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

2) 경제 불안의 신학적 해석

예수께서는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한 염려를 다루시면서,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고 말씀하셨다.[23] 그리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24] 이 말씀은 경제 현실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라, 경제 현실을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심 안에서 해석하라는 뜻이다.

성도는 재물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25] 그러나 성도는 경제적 책임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성경은 정직한 노동, 책임 있는 재산관리, 궁핍한 자를 향한 나눔을 가르친다.[26]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경제 상담은 믿음과 책임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

경제 불안 속에서도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한다. 그러나 이 여호와 하나님은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한다. 성부께서는 자기 자녀의 필요를 아시는 아버지이시고, 성자께서는 성도의 참 보물과 의가 되시며, 성령께서는 탐욕과 두려움에 묶인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감사와 절제와 나눔으로 살게 하신다. 그러므로 경제 상담은 재정 문제의 해결만이 아니라 마음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다루는 신앙 상담이어야 한다.

3) 경제 불안에 대한 목회적 돌봄

경제 불안을 겪는 노인성도에게 교회는 실제적 도움과 신앙적 권면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 실제적 도움에는 구제, 복지제도 연결, 재정 상담 소개, 의료지원 정보, 교회 내 돌봄 네트워크가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목회자는 재정 전문가가 아닌 영역에서는 적절한 전문가와 연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신앙적 권면은 노인성도가 재물을 생명의 주인으로 삼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동시에 자신의 형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도움을 받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성도는 서로의 짐을 진다.[27]

목회자는 경제 불안을 다룰 때 두 극단을 피해야 한다. 하나는 “믿음만 있으면 경제 문제는 해결된다”고 단순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 문제를 신앙과 무관한 현실 문제로만 보는 것이다. 성경적 상담은 실제적 지원과 말씀의 해석을 함께 제공한다. 노인성도는 교회의 도움과 사회 제도를 사용할 수 있으나, 궁극적 안전은 성부의 돌보심, 성자의 의, 성령의 위로 안에 있음을 배워야 한다.

 

 

8. 신앙 침체와 목회 상담

1) 노년기의 신앙 침체

노년에는 신앙이 깊어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침체될 수도 있다. 오랜 신앙생활이 습관화되어 감격이 줄어들 수 있다. 몸이 약해져 예배 참석이 어려워지고, 기도와 말씀생활이 느슨해질 수 있다. 상실과 질병이 반복되면서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나 무감각이 생길 수 있다.

신앙 침체는 단순한 게으름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몸의 약화, 우울, 고독, 인지 기능의 변화, 관계 단절, 해결되지 않은 죄책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목회 상담은 정죄보다 분별이 필요하다.

2) 신앙 침체의 신학적 해석

성도는 자기 힘으로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끝까지 붙드신다.[28] 성도의 견인은 노년의 신앙 침체를 다룰 때 매우 중요한 위로이다. 노인성도는 자신의 믿음이 약해질 때에도, 자신을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인은 성도를 게으르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성도는 은혜 안에서 말씀과 기도와 성례라는 은혜의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29] 신앙 침체에 빠진 노인성도는 다시 말씀 앞으로, 기도 앞으로, 예배 공동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신앙 침체 속의 여호와 신앙도 삼위일체적으로 고백되어야 한다. 성부께서는 택하신 자를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성자께서는 자기 양을 손에서 빼앗기지 않게 하시며, 성령께서는 약해진 믿음을 말씀과 은혜의 수단으로 다시 일으키신다. 그러므로 신앙 침체 상담의 핵심은 노인성도의 감정 상태가 아니라, 그를 붙드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다.

3) 신앙 침체에 대한 목회적 돌봄

신앙 침체를 겪는 노인성도에게는 세 가지 돌봄이 필요하다. 첫째, 복음의 재확인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이나 열심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로 하나님 앞에 선다는 사실을 다시 들어야 한다. 둘째, 은혜의 수단 회복이다. 말씀, 기도, 성례, 교제의 자리에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 셋째, 작은 순종의 회복이다. 긴 기도와 많은 봉사를 요구하기보다, 짧은 말씀 묵상, 짧은 기도, 감사 한 가지 기록, 한 사람을 위한 중보기도처럼 작은 순종부터 시작하게 해야 한다.

교회는 신앙 침체에 빠진 노인성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붙드시는 성도를 교회도 끝까지 돌보아야 한다. 목회 상담은 노인성도가 다시 “하나님을 경외하며 찬송하는 승리자”로 서도록 돕는 은혜의 사역이다.

이 돌봄은 조급하지 않아야 한다. 노년의 신앙 침체는 오랜 상처와 몸의 약화와 관계 단절이 함께 얽혀 있을 수 있다. 목회자는 말씀을 반복해서 들려주고, 짧은 기도를 함께 드리며, 성례와 예배와 교제의 자리로 천천히 연결해야 한다. 성령께서 말씀을 효력 있게 하셔서 성도를 다시 세우신다는 믿음으로 인내해야 한다.

 

 

9. 노년기 목회 상담의 기본 원칙

노년기 목회 상담은 다음 원칙을 따라야 한다.

첫째, 경청의 원칙이다. 노인성도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야 한다. 긴 인생의 이야기 속에는 상처와 은혜, 죄와 회개, 자랑과 두려움이 함께 있다.

둘째, 말씀의 원칙이다. 상담은 단순한 공감에 머물지 않고 말씀으로 삶을 해석하게 해야 한다.

셋째, 복음의 원칙이다. 노인성도는 자기 공로나 실패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 안에서 하나님 앞에 선다.

넷째, 공동체의 원칙이다. 노인성도의 위기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문제이다.

다섯째, 소망의 원칙이다. 노년기 상담은 죽음과 상실 앞에서도 부활과 새 창조의 소망을 제시해야 한다.

여섯째, 사명의 원칙이다. 노인성도는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기도와 증언과 찬송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 원칙을 더해야 한다.

일곱째, 삼위일체적 언약 해석의 원칙이다. 목회 상담은 노인성도가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신다”는 고백을 성부의 창조와 섭리, 성자의 구속과 중보, 성령의 위로와 견인 안에서 충만히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상담은 일반적 종교 위로가 아니라, 복음적이고 언약적인 말씀 사역이 된다.

 

 

10. 15장 요약

본 장은 노년기의 주요 위기인 고독, 상실, 질병, 죽음의 두려움, 가족 갈등, 경제 불안, 신앙 침체를 목회 상담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노년기의 위기는 단순한 심리적·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성도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드러내는 신앙의 자리이다.

특히 본 장에서 중요한 수정점은 ‘여호와’의 칭호를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하는 것이다. 시편 121편의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는 고백은 노년기 위기 상담의 핵심 본문이다. 그러나 이 ‘여호와’의 이름은 구약의 역사적 명칭에만 머물지 않는다. 여호와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영원히 계시는 한 분 하나님이시며, 성부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자기 백성을 섭리로 붙드시며, 성자께서 죄와 죽음에서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고, 성령께서 성도 안에 거하시며 위로와 믿음과 인내를 주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고독은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다시 해석되어야 하며, 상실은 영원한 기업의 소망 안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질병은 타락 아래 있는 몸의 현실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배우는 자리가 될 수 있다. 죽음의 두려움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의 영화 소망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가족 갈등은 제5계명과 그리스도의 화목 안에서 다루어야 하며, 경제 불안은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심과 청지기직의 관점에서 다루어야 한다. 신앙 침체는 성도의 견인과 은혜의 수단을 통해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노년기 목회 상담은 문제 해결 기술이 아니라 말씀으로 삶을 해석하게 하는 사역이다. 그 목적은 노인성도가 위기 속에서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여호와로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며, 성령의 위로 안에서 교회와 후대 앞에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 서도록 돕는 데 있다.

 

 

각주

[1] 시 25:16; 시 38:9–10; 시 42:5. 시편은 외로움, 낙심, 탄식의 감정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토로한다.

[2] 시 121:1–8.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지키시며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3] 창 2:18.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4] 마 28:20.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자기 백성과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다.

[5] 요 14:16–18. 성령은 보혜사로서 성도와 함께하시며 성도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신다.

[6] 요 11:35.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우셨다.

[7] 살전 4:13. 성도는 죽은 자들에 대하여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는다.

[8] 골 3:3–4. 성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

[9] 벧전 1:3–4. 성도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된다.

[10] 빌 3:20–21. 성도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이다.

[11] 욥 2:11–13. 욥의 친구들은 처음에 그와 함께 앉아 칠 일 동안 말하지 않았다.

[12] 창 3:17–19; 롬 5:12. 타락 이후 인간은 수고와 죽음의 현실 아래 놓이게 되었다.

[13] 요 9:1–3. 예수께서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고난을 특정 죄의 직접 결과로 단정하지 않으셨다.

[14] 고후 12:9–10. 주님의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하여지며, 바울은 약함 가운데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문다고 고백한다.

[15] 약 5:13–16. 병든 자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고, 장로들은 주의 이름으로 그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16] 롬 6:23; 고전 15:26. 죄의 삯은 사망이며,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다.

[17] 요 11:25–26; 고전 15:54–57.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이시며, 성도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가진다.

[1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2장 1–3항. 사람의 몸은 죽은 후 흙으로 돌아가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며, 마지막 날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다.

[19] 고전 15:20–23.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20] 창 25–27장; 창 37장. 이삭과 리브가의 편애, 야곱의 요셉 편애는 가족 갈등의 대표적 사례이다.

[21] 출 20:12; 엡 6:1–4. 부모 공경과 자녀 양육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 질서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22] 엡 2:14–18.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시며, 십자가로 원수 된 것을 소멸하신다.

[23] 마 6:25–32. 예수께서는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한 염려를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심 안에서 다루셨다.

[24] 마 6:33. 성도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한다.

[25]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며,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26] 엡 4:28; 딤전 6:17–19. 성도는 정직하게 일하고, 선한 일을 행하며, 나누어 주기를 좋아해야 한다.

[27] 갈 6:2. 성도는 서로의 짐을 짐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해야 한다.

[28] 요 10:27–2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7장 1항. 그리스도의 양은 그의 음성을 들으며, 아무도 그들을 그리스도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

[2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장 3항. 신격의 단일성 안에 동일한 본질과 능력과 영원성을 가진 삼위,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계신다.

[30]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54문. 말씀, 성례, 기도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에 주신 은혜의 외적 수단이다.

[31]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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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하신 결론부 원문을 기준으로 재개정했습니다. 원문은 제Ⅴ부 결론에서 노인성도의 네 가지 신앙적 정체성, 곧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자·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행복한 선민·세속적 가치에 대응하는 신앙의 전사·하나님을 경외하며 찬송하는 승리자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부 결론

노인성도의 네 가지 신앙적 정체성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잠언 16장 31절

 

 

16장 노인성도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자이다

1. 노년은 지혜의 검증기이다

노인성도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자이다. 이는 노인성도가 나이가 많기 때문에 자동으로 지혜롭다는 뜻이 아니다. 성경은 나이를 절대화하지 않는다. 백발이 영화의 면류관이 되는 것은 그것이 “의로운 길”에서 얻어질 때이다.[1] 그러므로 성경적 지혜는 단순한 연령이나 경험의 축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나오는 신앙적 분별이다.[2]

예수께서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를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에 비유하셨다.[3]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않는 것은 그 집이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노인성도의 삶은 이 말씀의 실제적 검증장이 된다. 긴 세월 동안 고난과 질병과 상실과 실패와 죽음의 그림자를 경험하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지켜 온 성도의 삶은 반석 위에 세워진 집과 같다.

노년은 지혜가 검증되는 시기이다. 젊은 시절에는 말로 신앙을 고백할 수 있다. 그러나 노년에는 그 고백이 삶 속에서 드러난다. 건강이 약해지고, 경제적 능력이 줄어들며,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고, 죽음이 가까워질 때, 사람이 무엇 위에 자기 인생을 세웠는지가 드러난다. 그리스도 위에 세운 인생은 흔들릴 수 있으나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지혜는 자기 인생을 자기 능력과 자기 의지 위에 세우지 않는 데 있다. 그는 성부의 작정과 섭리, 성자의 구속과 의, 성령의 적용과 견인 안에서 자기 삶을 해석한다. 노년의 지혜는 단순히 “오래 살면서 얻은 인생 경험”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긴 세월 속에서 배우고 익힌 신앙적 분별이다.

2. 지혜는 여호와 하나님을 삼위일체 언약의 하나님으로 아는 지식이다

성경적 지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그러나 여기서 여호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구약적 명칭을 기억한다는 뜻이 아니다. 여호와는 스스로 계시며 자기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언약적 이름이다.[4] 이 여호와 하나님은 신약의 충만한 계시 안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알려진다.[5]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지혜는 여호와 하나님을 삼위일체 언약의 하나님으로 아는 지식이다.

‘여호와’의 칭호는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할 언약적 이름이다.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언약을 세우시며,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분으로 계시되셨다. 그러나 이 계시는 신약에서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성부·성자·성령의 계시 안에서 충만해진다. 성부께서는 언약을 작정하시고, 성자께서는 언약을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으로 성취하시며, 성령께서는 그 언약의 은혜를 성도에게 적용하시고 끝까지 견인하신다.

성부 하나님은 영원한 작정과 선택 안에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고, 그들의 전 생애를 섭리 가운데 인도하신다.[6] 성자 하나님은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으로 성도의 의가 되시며, 노인성도가 죽음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게 하시는 유일한 중보자이시다.[7] 성령 하나님은 말씀과 은혜의 방편을 통하여 성도를 거듭나게 하시고, 성화시키시며, 끝까지 믿음 안에 견인하신다.[8] 그러므로 노인성도는 자기 인생을 단순한 우연이나 자연적 노화의 과정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전 생애를 성부의 작정과 섭리, 성자의 구속과 중보, 성령의 적용과 위로 안에서 해석한다.

이것이 노인성도의 지혜이다. 그는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내가 살아남았다”고 말하지 않고, “성부께서 계획하시고, 성자께서 구속하시며, 성령께서 붙드셨다”고 고백한다. 요셉이 형들의 악한 행위까지도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안에서 해석한 것처럼, 노인성도는 자기 삶의 아픔과 굴곡까지도 삼위 하나님의 언약 섭리 안에서 다시 읽는다.[9] 이것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신앙적 해석이며, 단순한 경험담이 아니라 지혜의 증언이다.

따라서 노인성도의 지혜는 추상적 신지식이 아니다. 그는 삼위일체 교리를 머리로만 암송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부의 선택과 돌보심, 성자의 의와 중보, 성령의 위로와 성화를 자신의 삶 속에서 배운 사람이다. 노년은 이 지혜가 깊어지는 자리이다. 젊은 시절에는 교리를 배웠다면, 노년에는 그 교리가 삶의 고난과 기다림과 상실과 죽음 앞에서 참된 위로와 능력임을 익힌다.

이 지혜는 후대에게 전승되어야 한다. 지혜자는 자기만 깨닫고 침묵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녀와 손자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말하는 사람이다.[10] 그러므로 노인성도는 가정과 교회 안에서 “삼위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다”고 증언하는 지혜자이다. 그는 성부의 신실하심을 말하고, 성자의 은혜를 전하며, 성령의 위로를 증언한다. 이때 노인성도의 백발은 단순한 세월의 흔적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언약 신실성을 증거하는 영화의 면류관이 된다.

3. 반석 위의 지혜자는 흔들리지만 무너지지 않는다

노인성도도 흔들릴 수 있다. 질병 앞에서 두려워할 수 있고, 상실 앞에서 울 수 있으며, 죽음 앞에서 떨릴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무너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인생의 반석은 자기 의지나 자기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11]

반석 위의 지혜자는 자기 믿음의 강함을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성부께서 나를 택하시고, 성자께서 나를 구속하시며, 성령께서 나를 끝까지 붙드셨다”고 고백한다. 성도의 견인은 성도의 강한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부의 선택과 성자의 중보와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자기 백성을 끝까지 붙드시는 삼위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온다.[12]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지혜는 자기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찬송이다. 그는 삶의 폭풍을 피한 사람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도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 무너지지 않은 사람이다. 그의 흔들림은 실패가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내며, 그의 무너지지 않음은 삼위 하나님의 언약적 붙드심을 드러낸다.

결론적으로 노인성도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자이다. 그는 말씀 위에 인생을 세웠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를 덧입었으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 왔다. 그의 삶은 후대에게 “무엇 위에 인생을 세워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훈이다.

 

 

17장 노인성도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행복한 선민이다

1.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신분에서 나온다

노인성도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행복한 선민이다. 세상은 행복을 건강, 재산, 자녀의 성공, 사회적 인정, 편안한 노후에서 찾는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삶의 중요한 선물일 수 있다. 그러나 성도의 참된 행복은 이러한 조건에 최종 근거를 두지 않는다. 성도의 행복은 성부께서 그를 택하시고, 성자께서 그를 피로 사시며, 성령께서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셨다는 사실에서 나온다.[13]

성경에서 복 있는 사람은 세상 조건이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를 의지하고 그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다.[14] 여기서 여호와를 의지한다는 것은 막연한 종교적 의존이 아니다. 그것은 성부의 선택과 돌보심, 성자의 구속과 중보, 성령의 인치심과 견인 안에서 삼위일체 언약의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행복은 외적 조건이 점점 약해지는 노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건강은 약해질 수 있고, 재산은 줄어들 수 있으며, 관계는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삼위 하나님께 속한 언약 백성의 신분은 사라지지 않는다. 노인성도는 택하신 족속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이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15] 이 신분은 노년의 불안과 상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과 보존하심 안에서 행복한 자이다.

2. 선민의 행복은 하나님의 의를 의지하는 데 있다

노인성도의 행복은 자기 의를 붙드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의지하는 데 있다. 노년은 자기 의의 허약함을 깊이 배우는 시기이다. 아무리 오래 믿고 봉사했어도, 성도는 자기 공로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며,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16]

노인성도는 이 진리를 젊은 시절보다 더 깊이 깨닫는다. 그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연약함과 죄와 부족함을 안다. 동시에 그 모든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고 붙드셨음을 안다. 그래서 그의 고백은 “내가 잘했다”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의 의가 되셨다”이다.[17]

하나님의 의는 삼위일체 구원 사역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성부께서는 은혜로 죄인을 의롭다 하시고, 성자께서는 성도의 의와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시며, 성령께서는 그 의를 믿음으로 붙들게 하시고 성도의 삶 속에 성화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러므로 선민의 행복은 자기 공로를 계산하는 데 있지 않고, 삼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는 데 있다.

이 고백이 노인성도의 행복을 만든다. 자기 의를 붙드는 노년은 불안하다. 자신의 공로가 인정받지 못하면 분노하고, 자신의 헌신이 잊히면 원망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의지하는 노년은 감사한다. 그는 자신의 모든 선행과 봉사까지도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로 고백한다.[18]

3.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행복은 염려를 이긴다

노년에는 염려가 많아진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어디에서 살까, 누가 나를 돌볼까, 죽음은 어떻게 맞이할까 하는 질문들이 마음을 흔든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러한 염려 앞에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19]

노인성도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필요를 아신다는 사실을 믿는다.[20] 그리고 그는 그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이 성자 그리스도 안에 열렸으며, 그 길을 걷도록 성령께서 자신의 연약함을 도우신다는 사실을 믿는다. 이것은 현실을 무시하는 낙관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심 안에서 해석하는 믿음이다.

그는 생활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고, 교회의 돌봄을 받고, 지혜롭게 준비한다. 그러나 염려가 하나님보다 앞서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신분에서 나오며, 그의 안전은 재물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언약적 붙드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인성도는 행복한 선민이다. 그는 많은 것을 잃어도 하나님을 잃지 않는다. 그는 약해져도 하나님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그리스도의 생명을 붙든다. 이 행복은 세상이 줄 수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행복이다.

 

 

18장 노인성도는 세속적 가치에 대응하는 신앙의 전사이다

1. 노년은 세속적 가치와 충돌하는 자리이다

노인성도는 세속적 가치에 대응하는 신앙의 전사이다. 현대 사회는 젊음, 생산성, 효율성, 건강, 소비능력, 자기표현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이러한 기준에서 노년은 쉽게 결핍과 쇠퇴와 부담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성경은 노년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발을 영화의 면류관으로 말한다.[21]

노인성도는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맡기지 않아야 한다. 그는 더 이상 많은 일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이전처럼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고, 경제적 생산성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가치는 기능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의 가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라는 사실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에서 나온다.[22]

이 점에서 노년은 영적 전투의 자리이다. 세상은 노인성도에게 “너는 이제 쓸모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복음은 “너는 여전히 삼위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다”라고 말한다. 성부께서 나라를 작정하시고, 성자께서 나라를 선포하고 성취하시며, 성령께서 교회 안에서 그 나라의 백성을 세우시기 때문이다. 세상은 “젊음이 힘이다”라고 말하지만,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가 힘이다”라고 말한다. 세상은 “죽음이 끝이다”라고 말하지만,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이 있다”고 말한다.

2. 신앙의 전사는 자기 의와도 싸운다

노인성도의 싸움은 세상과의 싸움만이 아니다. 그는 자기 안의 죄와도 싸워야 한다. 노년에는 고집, 원망, 자기연민, 과거 자랑, 공로의식, 젊은 세대에 대한 정죄, 재물 집착, 죽음의 두려움이 강해질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노인성도의 신앙을 약하게 한다.

그러므로 노인성도는 자기 의와 싸워야 한다. “내가 이 교회를 위해 얼마나 수고했는가”, “내가 자녀를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가”, “젊은 사람들은 나만 못하다”는 생각은 자기 의로 흐르기 쉽다. 성도는 자신의 수고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해야 한다.[23]

신앙의 전사는 다른 사람을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다. 그는 세속적 가치와 싸우면서 동시에 자기 안의 세속성과도 싸운다. 그는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며,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구한다.[24]

이 싸움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가능하다. 성부께서는 성도를 거룩하게 하시려는 뜻 안에서 붙드시고, 성자께서는 자기 의로 성도의 자기 의를 무너뜨리시며, 성령께서는 성도 안에서 죄를 죽이고 거룩한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전투는 자기 힘으로 버티는 싸움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께 의지하여 세속성과 자기 의를 이기는 영적 싸움이다.

3. 신앙의 전사는 후대를 위해 싸운다

노인성도의 전투는 개인적 신앙 유지에만 있지 않다. 그는 후대를 위해 싸운다. 자녀와 손자녀 세대가 세속적 가치에 휩쓸리지 않도록 기도하고 권면하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전해야 한다. 신명기는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자녀와 손자에게 알리라고 명한다.[25] 시편도 하나님의 능력과 기이한 일을 후대에 전하라고 가르친다.[26]

노인성도는 후대를 향해 단순한 잔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그는 말씀으로 해석된 인생을 증언해야 한다. “내가 살아 보니 세상은 헛되다”에서 그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 곧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언약의 하나님만이 신실하시다”고 말해야 한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에서 그치지 않고, “삼위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노인성도는 신앙의 전사이다. 그는 세속적 노년관에 맞서 싸우고, 자기 안의 죄와 싸우며, 후대의 믿음을 위해 기도와 권면으로 싸운다. 그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복음의 진리를 지키는 영적 싸움이다.[27]

 

 

19장 노인성도는 삼위 하나님을 경외하며 찬송하는 승리자이다

1. 노년의 마지막 언어는 찬송이어야 한다

노인성도는 삼위 하나님을 경외하며 찬송하는 승리자이다. 노년의 마지막 언어는 원망이 아니라 찬송이어야 한다. 이것은 노인성도가 아무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성도는 질병과 상실과 죽음 앞에서 울 수 있다. 그러나 그 눈물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자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셨고, 성부께서 자기 백성을 영원히 사랑하시며, 성령께서 성도를 끝까지 붙드시기 때문이다.[28]

시편 기자는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다음 세대에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29] 또한 의인은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낸다고 노래한다.[30] 여기서 “여호와의 정직하심”은 자기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고백은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한다. 성부의 변함없는 사랑, 성자의 완전한 구속, 성령의 지속적인 견인이 노인성도의 찬송의 근거이다.

이것이 노인성도의 승리이다. 그는 젊음의 힘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송함으로 승리한다. 노년의 찬송은 특별한 무게를 가진다. 건강하고 형통할 때의 찬송도 귀하지만, 몸이 약해지고 죽음이 가까워질 때의 찬송은 교회에 깊은 증언이 된다. 그것은 “삼위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다”는 믿음의 선언이다.

2. 경외는 노년 신앙의 중심이다

노인성도의 찬송은 삼위 하나님 경외에서 나온다. 그는 성부의 주권을 경외하고, 성자의 구속 은혜를 찬송하며, 성령의 내주와 위로를 감사한다. 성경은 인생의 결론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한다.[31] 하나님 경외는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의 주권과 거룩과 은혜 앞에 엎드리는 신앙이다.

노인성도는 평생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운다. 젊은 시절에는 자기 힘을 믿기 쉽다. 그러나 노년에는 인간의 힘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깨닫게 된다. 건강도, 재물도, 관계도, 명예도 영원하지 않다. 이때 성도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한 하나님만이 영원하시며, 삼위 하나님만이 의지할 분임을 더 깊이 배운다.

경외는 노인성도를 겸손하게 만든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절대화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낮아진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생명과 죽음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한다. 이것이 노년 신앙의 깊은 품위이다.

3. 승리는 부활 소망 안에서 완성된다

노인성도의 승리는 이 땅의 조건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그의 몸은 약해질 수 있고, 병상에 누울 수 있으며, 결국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러나 성도의 승리는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완성된다. 바울은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외친다.[32] 이것은 성도의 최종 승리가 죽음 너머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선포한다.

성도의 죽음은 실패가 아니다. 성도의 몸은 흙으로 돌아가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며, 마지막 날 몸의 부활을 기다린다.[33] 그러므로 노인성도는 죽음을 향해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 부활과 새 창조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다.

이 소망은 삼위일체적이다. 성부께서는 자기 자녀를 영원한 나라로 부르시고, 성자께서는 죽음과 부활로 생명의 길을 여셨으며, 성령께서는 성도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과 소망을 붙드신다.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승리는 인간적 낙관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언약 성취에 근거한 부활 소망이다.

요한계시록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고, 다시는 사망과 애통과 곡하는 것과 아픈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34] 이 약속이 노인성도의 마지막 소망이다. 그는 이 땅에서 늙어 가지만, 새 창조의 영광을 바라본다. 그는 죽음을 통과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소망한다.

4. 노인성도는 찬송으로 후대를 세운다

노인성도의 찬송은 개인적 위로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후대를 세우는 증언이다. 젊은 세대는 노인성도의 찬송을 통해 복음의 실제성을 본다. 병상에서도 찬송하는 성도, 상실 속에서도 감사하는 성도, 죽음 앞에서도 부활을 고백하는 성도는 교회 전체에 살아 있는 설교가 된다.

그러므로 노인성도는 마지막까지 찬송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목소리가 약해져도 찬송할 수 있고, 말이 줄어도 감사의 태도로 찬송할 수 있으며, 병상에서도 기도와 눈물로 찬송할 수 있다. 찬송은 노인성도의 마지막 사역이다.

이 찬송은 여호와 하나님, 곧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언약의 하나님께 드려진다. 노인성도는 성부의 섭리를 찬송하고, 성자의 의와 부활을 찬송하며, 성령의 위로와 견인을 찬송한다. 그러므로 노인성도의 마지막 찬송은 한 생애의 회고가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을 후대에게 남기는 복음적 증언이다.

 

 

20장 종합 결론: 기독교 노인학의 최종 명제

본 연구는 기독교 노인학을 단순한 노인복지론이나 심리적 위로의 학문으로 보지 않았다. 기독교 노인학은 노년을 삼위 하나님의 언약 섭리 안에서 해석하는 실천적 성경신학이다. 노년은 창조의 복과 타락의 약함, 언약의 전승과 그리스도의 성취, 성령의 성화와 새 창조의 완성이 한 인생 안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시기이다.

노인성도는 단지 늙은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성부께서 작정하시고 섭리하신 삶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성자께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며, 성령의 위로와 견인 안에서 여호와 삼위 하나님을 경외하고, 후대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증언하는 언약 공동체의 성숙한 공인이다.

여기서 다시 강조해야 할 핵심은 이것이다. ‘여호와’는 폐기할 이름이 아니라, 삼위일체 계시 안에서 충만히 해석되어야 할 언약적 이름이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신약에서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충만히 계시되며, 노인성도의 지혜와 행복과 전투와 찬송은 이 삼위 하나님의 언약 신실성을 자기 전 생애 속에서 알고 증언하는 데 있다.

이 연구의 결론은 네 명제로 정리된다.

첫째, 노인성도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자이다. 그는 말씀 위에 인생을 세웠고,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증언한다. 그의 지혜는 여호와 하나님을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언약의 하나님으로 아는 지식이다.

둘째, 노인성도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행복한 선민이다. 그는 건강과 재산과 지위가 아니라, 성부의 선택과 성자의 의와 성령의 보존하심 안에서 행복을 누린다. 그의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께 속한 언약 백성의 신분에서 나온다.

셋째, 노인성도는 세속적 가치에 대응하는 신앙의 전사이다. 그는 젊음과 생산성과 소비능력을 절대화하는 세상 속에서, 백발의 존귀와 기도와 권면과 찬송의 가치를 증언한다. 그는 세속적 가치뿐 아니라 자기 안의 자기 의와도 싸우며, 후대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도록 기도와 권면으로 싸운다.

넷째, 노인성도는 삼위 하나님을 경외하며 찬송하는 승리자이다. 그는 죽음을 향해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과 새 창조의 완성을 바라보며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이다. 그의 마지막 언어는 원망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에 대한 찬송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노인학의 최종 명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기독교 노인학은 노년을 기능 쇠퇴의 시기가 아니라, 성부의 작정과 섭리, 성자의 구속과 의, 성령의 적용과 위로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배우고 증언하며, 그리스도의 부활과 새 창조의 완성을 소망하는 성숙한 신앙의 공인기로 해석하는 실천적 성경신학이다.

교회는 이 명제를 따라 노인성도를 다시 보아야 한다. 노인성도는 교회의 부담이 아니라 교회의 기억이며, 단순한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언약 전승의 증인이다. 교회가 노인성도를 말씀과 기도와 찬송과 세대통합의 자리로 세울 때, 노년은 교회 안에서 다시 영화의 면류관으로 드러날 것이다.

 

 

각주

[1] 잠 16: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2] 잠 1:7; 전 12:13. 지혜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며, 인생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3] 마 7:24–27. 예수께서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를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에 비유하셨다.

[4] 출 3:14–15; 출 6:2–8.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로 계시하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시는 여호와로 나타내셨다.

[5] 마 28:19; 고후 13:13. 신약은 한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함께 계시한다.

[6] 엡 1:3–6; 롬 8:29–30;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장 5항, 5장 1항. 성부 하나님은 영원한 작정과 선택 안에서 자기 백성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섭리로 인도하신다.

[7] 요 14:6; 롬 3:24–26; 고전 1:30; 히 7:2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8장 1–8항. 성자 그리스도는 유일한 중보자이며 성도의 의와 구속과 생명이 되신다.

[8] 요 14:16–17; 롬 8:14–16; 딛 3:5–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0장 1항, 13장 1항, 17장 1–2항. 성령은 구속을 적용하시고 성도를 성화시키며 끝까지 보존하신다.

[9] 창 50:20; 롬 8:28. 성도는 고난과 악까지도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안에서 해석한다.

[10] 신 4:9; 시 78:4–7; 시 71:17–18. 하나님의 행하신 일은 후대에게 전승되어야 한다.

[11] 고전 3:11.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12] 요 10:27–2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7장 1항. 그리스도의 양은 그의 손에서 빼앗길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끝까지 보존하신다.

[13] 신 7:6–8; 벧전 2:9–10.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거룩한 백성과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셨다.

[14] 시 1:1–3; 시 146:5.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를 의지하고 그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15] 벧전 2:9–10. 성도는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

[16] 롬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17] 고전 1:30; 빌 3:9. 그리스도는 성도에게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시며, 성도는 자기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의지한다.

[18] 고전 15:10;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장 2항. 성도의 선행은 참되고 살아 있는 믿음의 열매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은혜의 결과이다.

[19] 마 6:33. 성도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한다.

[20] 마 6:25–32. 하늘 아버지께서는 성도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

[21] 잠 16:31. 백발은 의로운 길에서 얻을 때 영화의 면류관이다.

[22] 창 1:26–28; 벧전 2:9–10.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았다.

[23] 고전 15:10. 바울은 자신의 수고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하였다.

[24] 갈 5:22–23.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다.

[25] 신 4:9.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자녀와 손자에게 알리라고 명한다.

[26] 시 78:4–7. 하나님의 영예와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해야 한다.

[27] 엡 6:10–18. 성도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영적 싸움이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28] 고전 15:54–57. 그리스도 안에서 사망의 쏘는 것은 패배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다.

[29] 시 71:17–18. 시편 기자는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다음 세대에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30] 시 92:12–15. 의인은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낸다.

[31] 전 12:13. 일의 결국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이다.

[32] 고전 15:55–57. 바울은 사망의 승리와 쏘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패배했음을 선포한다.

[3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2장 1–3항. 사람의 몸은 죽은 후 흙으로 돌아가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며, 마지막 날 몸의 부활을 기다린다.

[34] 계 21:1–4.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고, 사망과 애통과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게 하신다.

[35] 롬 8:29–30;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장 1항, 5장 1항. 성도의 전 생애는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36]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 대요리문답 제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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