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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Re: Re: 홉스의 자연법 이론과 리바이어던, 그 비참함에 대하여 (1/2)

작성자펄군|작성시간22.01.28|조회수137 목록 댓글 0

웹진 인-무브 - 홉스의 자연법 이론과 리바이어던, 그 비참함에 대하여 (1/2) (en-movement.net)

1. 들어가면서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가 1651년 출간한 그의 주저 『리바이어던 혹은 기독교적 코먼웰스와 시민적 코먼웰스의 질료, 형태, 권력(Leviathan or The matter, form, and power of A Commonwealth Ecclesiastical and Civil)』(이후 『리바이어던』)은 근대 정치철학에서 하나의 중요한 저작이다. 홉스는 중세철학에서와 같이 신으로부터 출발하는 정치철학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출발하는 정치철학을 전개함으로써, 근대 정치철학의 선구자로 불린다. 본고에서는 홉스의 주저인 『리바이어던』을 중심으로, 홉스의 정치철학과 법이론에 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2. 홉스의 자연법 이론과 리바이어던

 

  홉스는 주저인 『리바이어던』에서 사고실험을 통해 자연상태라는 하나의 개념을 도출하여, 인간의 본성(nature)과 본성에 따른 권리와 법, 즉 자연권(right of nature)과 자연법(law of nature)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철학을 정립한다. 이 장에서는 홉스의 인간 본성, 자연권, 자연상태 등의 개념에서 출발하여, 이로부터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사회계약과 이를 통한 리바이어던의 성립, 시민법 등에 관한 홉스의 이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2.1. 인간의 본성과 자연상태, 그리고 자연법

  홉스는 『리바이어던』 「서설」에서 하나의 인공인간, 즉 우리들이 신이 자연을 창조하는 “기예(art)”를 모방하여, 이러한 기예를 통해 “자연의 가장 합리적인고 가장 탁월한 작품인 ‘인간’”인 “리바이어던(Leviathan)”(혹은 “코먼웰스(commonwealth)”, “국가(State)”, “라틴어로는 키위타스(Civitas)”)에 대해 연구한다.(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 진석용 옮김, 나남, 2008, 21~22(이후 페이지 번호만 표기)) 홉스에게 이러한 리바이어던에 대한 연구의 출발점은 바로 인간의 본성(혹은 자연, 즉 nature)과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이다.

  먼저 홉스는 인간이 “평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인간의 권리적 평등과 같은 의미의 평등이 아니라, “육체적·정신적 능력의 측면에서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인간이 육체적 혹은 정신적 능력에 있어서 평등한가? 우리는 대게의 경우 서로 다른 육체적 능력과 서로 다른 정신적 능력을 보유한 인간들을 본다. 하지만 홉스는 1) 육체적 능력의 경우, 육체적 능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간계(奸計)나 음모를 통해, 혹은 다른 사람들과 연합을 통해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에 ‘평등’하며, 2) 다른 한편 정신적 능력의 경우, 탁월한 정신적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이며, 또한 그러한 능력이 중요한 영역 역시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평등’하고, 3) 결국 정신적 능력과 육체적 능력, 양자의 합을 고려할 때, “인간들 사이에 능력 차이는 거의 없”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주장한다.(168~169) 즉 대게 특별히 뛰어난 정신적 능력을 갖지 못하는 인간은 언제든, 누구든 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인간의 이 평등한 능력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라는 자연상태가 귀결된다. 홉스는 이러한 전쟁상태로서의 자연상태가 인간의 본성과 이에 따른 세 가지 원인, 즉 1) “경쟁(competition)”, 2) “자기 확신의 결여(diffidence)”, 3) “공명심(glory)”에서 발생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따라서 “동일한 수준의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이에 따라 모든 인간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대상을 둘러싼 경쟁이 생겨나게 되며, 모든 인간은 타인을 약탈하거나 약탈당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따라서 경쟁과 만인들 사이의 불신은 인간들이 자기보존을 위한 합리적 조치, 즉 “폭력이나 계략”을 사용하게 하며, 타인의 공격에 대한 예방권력의 증대를 목표로 행위하게 만든다. 따라서 인간들은 자연적 상태, 즉 “그들[인간들] 모두를 위압하는 공통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곳”, 다시 말하자면 “사회상태 밖에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상태에 들어가게 된다.(169~171) 결국 앞서 살펴본 인간이 평등하다는 홉스의 주장은 오늘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평등의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한편으로는, 앞서 말한 것처럼, 모든 인간이 타자에 의해 죽임당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평등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인간이 자기보존을 위해 어떠한 수단이든 사용할 수 있다는 평등이다. 홉스는 이러한 자연상태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

이러한 상태[자연상태]에서는 성과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근로의 여지가 없다. 토지의 경작이나, 해상무역, 편리한 지식, 시간의 계산도 없고, 예술이나 학문도 없으며, 사회도 없다. 끊임없는 공포와 생사의 갈림길에서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험악하고, 잔인하고, 그리고 짧다. (172)
만인이 만인에 대하여 전쟁을 하는 상황에서는 그 어떠한 것도 부당한 것이 될 수 없다. 정(政)[right, 옮음]과 사(邪)[wrong, 그름]의 관념, 정의[justice]와 불의[injustice]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통의 권력이 없는 곳에는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법이 없는 곳에서는 불의[즉 불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에서 요구되는 것은 오로지 폭력과 기만뿐이다. ...... 또 그러한 전쟁상태에서는 소유(propriety)도, 영유(dominion)도, ‘내 것’과 ‘네 것’의 구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 인간의 자연적 상태가 얼마나 가혹한가 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설명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174)

홉스는 말 그대로 ‘인간의 자연상태의 비참함(misery)’, 즉 제13장의 제목 그대로 「인간의 자연상태, 그 복됨과 비참함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홉스는 이러한 가치평가를 통해 자연상태로부터 사회상태로의 이행을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또 한번 인간 본성의 두 가지 측면, 곧 한편으로 “평화로 향하게 하는 정념, [즉] 죽음에 대한 공포”와 다른 한편 “인간들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적절한 평화의 규약(規約, article)”, 곧 이성법으로서의 “자연법(Laws of Nature)”에서 찾는다.(174~175)

  홉스에게 자연법(Laws of Nature, lex naturalis)은 “인간의 이성이 찾아낸 계율(precept) 또는 일반적 원칙(general rule)”이다. 자연상태에서 모든 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따라 자기보존을 위해서 각자 자신의 판단과 이성에 따라 어떠한 행위를 하거나 수단을 사용할 수 있는 “자연권”(right of nature, jus naturale)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자연권은 심지어 타인의 신체나 생명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인간이 가지는 모든 것에 대한 무제한적인 권리인 인간의 자연권으로 인해 모든 인간은 전쟁 상태에 있게 되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에 따라서 곧바로 첫 번째 “이성의 계율 혹은 일반적 원칙”, 곧 제1자연법(혹은 기본 자연법(The fundamental law of nature))이 등장한다 :

[1] 모든 사람은, 달성될 가망이 있는 한, 평화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2] 평화를 달성하는 일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어떤 수단이라도 사용해도 좋다. (177)

제1자연법에서 [1]은 전쟁상태로부터의 해방, 즉 평화에 대한 추구를 요구하는 자연법을 표현하고 있으며, [2]는 자기보존을 위해 모든 수단과 행위를 허용하는 자연권의 요지를 표현하고 있다.(177) 이러한 제1자연법으로부터 곧바로 제2자연법, 곧 “인간은 평화와, 그리고 자기 방어가 보장되는 한, 또한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이 그렇게 할 경우, 만물에 대한 이러한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고, 자신이 타인에게 허락한 만큼의 자유를 타인에 대해 갖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요구가 따른다. 인간의 무제한적인 권리인 자연권이 바로 인간을 전쟁상태에 있도록 만들기 때문에, 평화에 대한 추구를 요구하는 제1자연법으로부터 곧바로 인간의 자연권에 대한 포기를 요구하는 제2자연법이 따라 나오는 것이다.

  권리를 포기하는 방식에는 권리의 폐기(renounce)와 권리의 양도(transfer)가 있으며, 사람들 사이의 권리의 상호 양도는 계약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권리의 상호 양도에서 누군가가 먼저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계약의 선-이행자의 입자에서 보면, 이러한 권리의 상호 양도는 신의계약(covenant)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제1, 2자연법에 이어지는 제3자연법은 바로 “신의계약을 맺었으면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인간은 1) 자연권, 즉 자연상태에서의 만인이 가지는 만물에 대한 권리로 인해 전쟁상태에 있게 되며, 2) 이성의 계율, 곧 자연법은 전쟁상태라는 비참한 자연상태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3) 평화를 추구하라는 제1자연법과 4) 전쟁상태를 유발하는 원인인 자연권의 포기를 요구하는 제2자연법, 5) 권리의 상호 양도를 위한 신의계약의 준수를 요구하는 제3자연법이 요구된다. 홉스는 이외에도 『리바이어던』의 제14장과 제15장에 걸쳐서 제19자연법까지 언급하지만, 홉스의 자연법 이론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은 제1자연법이며, 이하의 다른 자연법은 제1자연법에 대한 조건과 같은 것으로 제시된다. 다만 제2, 3자연법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우 체계적인 조건이라기보다는 대게 격언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2.2. 리바이어던과 시민법

  지금까지 살펴본 자연법은 이성의 계율이며, 인간의 자기보존을 위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한편으로 자연법을 향한 이성을 가진 존재이면서, 동시에 “불공평·자부심·복수심”을 향하는 정념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이러한 자연법이 항상 지켜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권리의 상호 양도를 위한 신의계약은 신이나 국가, 즉 그러한 계약을 보증해줄 수 있는 어떤 존재를 필요로 한다. 홉스가 말하는 것처럼, “칼 없는 신의계약은 빈 말에 불과하며, 인간을 보호할 힘이 전혀 없다.”(227) 따라서 앞서 제시한 자연법을 위해서는 계약을 보증하고 강제할 수 있는 존재, 즉 하나의 국가, 리바이어던의 성립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홉스는 이러한 리바이어던이 인간의 본성, 곧 인간들의 자기보존을 위해서 1) 소수의 연합이어서는 안되며, 2) 다수의 연합이라고 하더라도, 하나의 통일된 의지에 따라 통치되어야 하며, 3) 이러한 통일성은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특징을 갖는다고 말한다.(228~229)

  홉스는 리바이어던의 생성과 정의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홉스의 문장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홉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동물들의 화합은 자연적인 것이지만, 인간의 화합은 오직 인위적인 신의계약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따라서 그 화합을 항상적으로, 그리고 영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신의계약 이외의 어떤 것이 요구된다 하더라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을 두렵게 하고 공동이익에 맞게 행동하도록 지도하는 공통의 권력(common power)이다. ...... 이 권력을 확립하는 유일한 길은 모든 사람의 의지를 다수결에 의해 하나의 의지로 결집하는 것, 즉 그들이 지닌 모든 권력과 힘을 ‘한 사람’(one Man) 혹은 ‘하나의 합의체’(one Assembly)에 양도하는 것이다. ...... 이것이 달성되어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인격으로 결합되어 통일되었을 때 그것을 코먼웰스(Commonwealth) -라틴어로는 키위타스(Civitas)- 라고 부른다. 이리하여 바로 저 위대한 리바이어던(Leviathan)이 탄생한다. 
코먼웰스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다수 사람들이 상호 신의계약을 체결하여 세운 하나의 인격으로서, 그들 각자가 그 인격이 한 행위의 본인이 됨으로써, 그들의 평화와 공동방위를 위해 모든 사람의 힘과 수단을 그가 임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31~233)

이러한 리바이어던의 정의와 생성은 자연스럽게 자연법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연법과 리바이어던은 필연적 관계를 맺고 있다. 즉 자연법이 평화추구, 권리포기, 계약을 통한 권리의 상호 양도와 신의계약 준수를 요구하는 한에서, 계약의 보증자, 즉 계약을 준수하도록 하는 하나의 공통 권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홉스는 한 사람과 다른 사람간의 신의계약이 아니라, 코먼웰스 전체의 구성원이 하나의 인간 혹은 합의체에 권리를 양도함으로써 생성되는 리바이어던을 계약의 보증자로 내세운다. 이러한 리바이어던은 코먼웰스의 주권자(sovereign)에게 종속된(subjected) 모든 백성들(subjects)의 권리를 양도받아 하나의 공통의 권력이 되며, 모든 백성들이 신의계약을 준수하도록 강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먼웰스에는 모든 시민들 혹은 백성들이 지켜야할 하나의 법, 곧 시민법(Civil Laws)이 등장한다. 시민법은 키위타스(civitas)에서 유래한 단어로, “인간이 코먼웰스 –어느 특정한 코먼웰스가 아니라 코먼웰스 일반- 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률이다.”(347) 사실 홉스에게서 자연법은 엄밀히 말하면 법이 아니다. 자연법은 “무엇이 인간의 자기보존과 방어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에 관한 결론[conclusion] 혹은 공리[theorem]일 뿐”이며, 엄밀한 의미에서 법은 “권리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자의 말(word)”이기 때문이다.(215)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법은 리바이어던의 성립 이후 등장하는 시민법이다. 시민법은 “그 법을 명령하는 인격이 ‘시민’(persona civitatis)인 법”이며, 코먼웰스에서 “유일한 입법자”는 코먼웰스의 인격, 곧 주권자이다.(348)

 

2.3. 자연법과 시민법(혹은 실정법)의 관계

  지금까지 본 것처럼, 홉스의 정치철학에서 자연법과 시민법은 하나의 연장선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 홉스는 자연법과 시민법의 관계에 대해 여러 곳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

자연법과 시민법은 상호 포함관계에 있으며, 그 범위는 같다. 자연법은 공평·정의·감사 및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도덕적 선이다. 완전한 자연상태에서 보면 이러한 자연법은 (이미 제15장 말미에서 말한 바와 같이) 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으로 하여금 평화와 복종을 지향하게 하는 성질이다. 코먼웰스가 설립되고 나면 그것이 법이 되지만, 코먼웰스가 설립되기 전까지는 아직 법이 아니다. 코먼웰스가 설립되어야 자연법이 코먼웰스의 명령이 되고, 따라서 시민법이 된다. (350)
시민법과 자연법은 서로 다른 종류의 법이 아니라, 법의 서로 다른 부분이다. 즉 하나는 성문화[成文化]되어 있기 때문에 ‘시민[법]’이라고 하고, 또 하나는 불문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법]’이라고 할 뿐이다. (351)
또 다른 법의 분류는 ‘자연법’과 ‘실정법’[positive laws]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자연법’은 태초부터 법으로 존재해 온 것으로서, ‘자연법’이라고 하기도 하고 ‘도덕법’이라고 하기도 한다. 정의·공평과 같은 도덕적 미덕은 물론, 평화와 자비에 기여하는 모든 정신적 습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 ‘실정법’은 태초부터 존재해 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주권을 소유한 사람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법으로서, 성문화되어 있거나 혹은 입법자의 의지를 표시하는 다른 어떤 증거에 의해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것을 말한다. (370~371)

우선 앞서 우리가 코먼웰스의 인격, 곧 주권자의 말 혹은 주권자에 의해 제정된 법을 시민법으로 불렀으나, 여기서 다른 분류에 따르면 실정법 역시 이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실정법은 이성의 계율과 같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인위적인 법, 곧 주권자에 이해 입법된 것 혹은 주권자의 말과 같은 것이다. 반면 자연법 혹은 도덕법은 “태초부터 법으로 존재해 온 것”으로 인위적인 법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자연적인 것 혹은 인간의 본성(nature), 곧 이성이 찾아낸 계율이다. 그리고 홉스는 위와 같이 자연법과 실정법을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서술한다. 다만 여전히 자연법과 실정법의 관계는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는다. 자연법은 한편으로 코먼웰스의 성립 이전부터 존재하지만, 코먼웰스의 성립과 함께 비로소 실정법으로 제정되는 것으로 다루어지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코먼웰스 내의 하나의 법의 두 부분, 즉 불문법으로서의 자연법과 성문법으로서의 실정법으로 다루기도 한다. 즉 전자의 경우로 이해된다면, 실정법은 자연법에 따라서 규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법과 실정법은 엄밀한 의미에서 구별된 규정을 가진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로 이해된다면, 자연법과 실정법은 서로 다른 계열을 갖는 상이한 법으로 이해된다. 홉스가 말하듯 “이성의 명령을 사람들은 법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적당한 말은 아니다. ...... 법이라는 것은 원래 권리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자의 말(word)”(215)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법은 이성의 명령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실정법과 같은 법이 아니며, 실정법은 지배자의 명령으로, 이것만이 엄밀한 의미에서 법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법과 실증법의 관계에 관한 모호한 서술은 다음 장에서 좀 더 자세히 다뤄질 것이다.

 

3. 홉스의 자연법 이론과 그 한계

 

  이 장에서는 앞서 살펴본 홉스의 자연법 이론과 코먼웰스와 시민법 혹은 실정법, 자연법과 실정법의 관계 등에 관해 비판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우선 홉스의 경험론적 방법론에 대한 비판로부터 시작하여, 제1자연법의 모순과 홉스의 일면적 자유 개념에 대한 비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연법과 실정법의 관계에 대한 비판을 다루고자 한다.

 

3.1. 홉스의 경험론적 방법론에 대한 비판

  홉스는 인간의 본성과 자연상태로부터 자연법, 코먼웰스의 성립과 시민법까지 이어지는 논증을 통해 자신의 정치철학을 개진한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인간의 본성과 그로 인한 전쟁상태에 있는 자연상태, 그리고 이 자연상태의 비참함이라는 가치평가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본성이나 자연상태에 관한 홉스의 명제가 타당한 것으로 증명될 수 없다면, 이후 코먼웰스의 성립이나 시민법과 같은 명제들 역시 타당한 것으로 증명될 수 없다.

홉스는 근대 경험론의 선구자인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개인 비서로 일했으며, 이는 이후 홉스의 경험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홉스는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전쟁상태로의 진입을 논증하며, “나의 추론이 과연 경험적으로도 뒷받침될 수 있는지”(172)에 대해 몇 가지 경험적 증거를 제시한다. 홉스가 제시하는 증거는 여행을 갈 때 다수의 사람들과 무장한 채로 간다는 것, 잠들기 전 문단속, 금고를 사용하는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자연상태에 대해서는, 홉스 자신도 모든 역사가 필연적으로 자연상태에서 출발한다거나 자연상태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는 주장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주장은 홉스 자신의 경험론적 방법론과도 맞지 않는다. 하지만 홉스는 여전히 어떤 지역, 예를 들어 “아메리카 곳곳에서 많은 야만족들”이라고 말하는 당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여전히 국가가 없는 상태로 자신이 말하는 자연상태와 유사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173)

  헤겔은 『자연법』에서 홉스, 로크 등 경험론적 방법론에 입각한 자연법 이론을 비판한다. 우선 홉스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몇 가지 중요한 명제들, 예컨대 인간의 본성, 자연권, 자연상태 등을 단적으로 규정하는데, 이러한 개념들은 홉스의 이론에서 부차적인 개념들이 아니라 이론 전체의 근거가 되는 핵심 개념들이다. 그러나 홉스는 이러한 개념들을 엄밀하게 규정하지 않으며, 몇 가지 경험적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왜 인간의 본성은 자기보존이며, 왜 자연상태의 인간은 전쟁상태에 놓이게 되어야만 하는가?

  경험적 인식에서 인간은 이기적이기도 하며, 자기보존을 추구하기도 하며, 다른 한편 이타적이기도 하며, 자기희생적이기도 하다. 헤겔은 (홉스만이 아니라 경험론 일반에 대한 비판이기는 하지만) 홉스가 이러한 개별 규정들 중 하나의 특정한 규정을 자의적으로 선택하여, 보편성 혹은 인간의 본성으로 격상시킨다고 비판한다.(G.W.F. 헤겔, 『자연법』, 김준수 옮김, 한길사, 2015. 역자의 해제 「근대 자연법론 비판과 절대적 인륜성의 체계」 21~26p 참조) 홉스에게 인간에 관한 수많은 개별 규정들 중 왜 하필 자기보존을 인간의 본성으로 규정하는지에 대한 근거는 오직 몇몇 역사적-경험적 사례들이 있을 뿐이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바로 자기보존이라는 인간의 본성이 이후의 리바이어던의 성립과 절대적 권리를 가진 주권자를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가 된다는 점이다. 인간의 본성, 자유, 자연상태가 비참한 전쟁상태로 귀결되기 때문에, 인간은 그러한 권리를 리바이어던에 양도함으로써, 이러한 자유와 권리를 포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리바이어던 안에서는 통치형태의 변경, 저항, 주권박탈 등 어떠한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은 근거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결론의 정당화를 위해 정당화되어야할 근거를 오히려 먼저 정당화된 것으로 가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3.2. 제1자연법의 모순과 일면적 자유

  홉스에 따르면, 제1자연법은 “[1] 모든 사람은, 달성될 가망이 있는 한, 평화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2] 평화를 달성하는 일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어떤 수단이라도 사용해도 좋다”라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제1자연법의 앞 문장은 자연법의 요구를 표현하고 있으며, 뒷 문장은 자기보존이라는 자연권을 표현하고 있다. 제1자연법은 자연법의 명제와 자연권의 명제의 선언지로 이루어져있다. 이를 재구성하자면, 제1자연법은 ‘[A] 평화가 달성될 가능성이 있다면, 평화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B] 평화가 달성될 가능성이 없다면,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자기보존을 위해 노력해야한다.’로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홉스의 제1자연법은 평화-권리포기 혹은 전쟁-자연권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우리에게 강제하며, 이후 홉스의 논의는 평화-권리포기-신의계약의 준수 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평화의 추구가 자연권의 포기를 요구하는 한에서, 앞의 문장은 ‘평화가 달성될 가능성이 있다면, 자연권을 포기해야하고, 평화가 달성될 가능성이 없다면, 자연권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로 정식화될 수 있으며, 이는 ‘A면 B고, -A면 -B다’라는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제1자연법에는 이미 자연권과 자연법의 모순, 혹은 자유와 법의 모순이 함축되어있다.

이와 같은 모순은 홉스의 협소한 자유 개념에 의해 생겨난다. 홉스는 자유와 자연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일반적으로 학자들이 ‘자연적 권리(jus naturale)라고 부르는 ’자연권‘(right of nature)은 모든 사람이 그 자신의 본성, 즉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자기 뜻대로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 즉 그 자신의 판단과 이성에 따라 가장 적합한 조치라고 생각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 자유(liberty)란 말은 정확히 말하면 외부적 방해의 부재를 의미한다. (176)

  이처럼 홉스는 자유를 단지 외적인 방해의 부재 상태라는 부정적 규정으로만 파악하고 있으며, 권리라는 말은 이런 자유의 사용 외에 어떠한 규정도 표함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홉스는 자유에 이어서 권리와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

흔히 ‘권리’(jus)와 ‘법’(lex)을 같은 뜻으로 혼용하는데, 이 둘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권리는 어떤 일을 하거나, 혹은 하지 않을 자유를 말하는 반면, 법은 어떤 일을 하도록 지시하거나 혹은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과 권리는 의무와 자유만큼이나 다르며, 똑같은 방식으로 서로 다른 말이다. (177)
최고의 학식을 자랑하는 저술가들조차 ‘시민법’(lex civilis)과 ‘시민권’(jus civile)을 같은 것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잘못된 일이다. 왜냐하면 ‘권리’는 ‘자유’, 즉 시민법이 우리에게 남겨준 자유를 말하는 반면, ‘시민법’은 ‘의무’이며, 자연법이 우리에게 부여한 권리를 가져가는 법이기 때문이다. (376)

자유에 대한 협소한 이해는 결국 권리와 법이 서로 다른 개념, 즉 권리는 자유를 의미하며, 법은 자연권을 가져가는 것이며, 하나의 의무 혹은 강제이고, 따라서 자유의 제약이다. 홉스처럼, 자유를 단지 외적인 방해의 부재로 이해한다면, 자연권과 자연법은, 또 자유와 법은 서로 모순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홉스는 스스로 코먼웰스의 성립과 시민법의 제정 이후에도 가능한 자유와 권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홉스가 “‘권리’[즉 시민권]는 ‘자유’, 즉 시민법이 우리에게 남겨준 자유”라고 말하는 것처럼, 여기서 자유 혹은 권리는 자연상태에서의 만물에 대한 무제약적 자유나 권리는 아니지만, 법 안에서 여전히 보존되어 있는 자유,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법에 의해서만 보호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의 자유가 인간을 전쟁상태에 놓이게 만들기 때문에 자유의 파괴로 귀결되는 것이었다면, 코먼웰스와 시민법 제정 이후 사회상태에서는 바로 이 코먼웰스 안에서 보장되는 자유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홉스의 소유에 대한 논의에서도 이와 같은 단초가 나타난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만물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자연상태가 전쟁상태로 귀결되는 한에서, 인간은 항상 약탈이나 침략의 위험에 놓여있기 때문에, 어떤 것을 확실한 ‘나의 것’으로 소유할 수 없다 :

전쟁상태에서는 소유(propriety), 영유(dominion)도, ‘내 것’과 ‘네 것’의 구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획득 가능한 모든 것이 자기 것이며, 자기 것으로 유지 가능한 기간 동안 자기 것이다. (174)
그들이[시민들]이 보편적 권리를 포기한 대가로 상호계약에 의해 소유권(propriety)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 ...... 그러므로 ‘각자의 것’, 즉 소유권이 없는 곳에는 불의가 없으며, 어떤 강제력, 즉 코먼웰스가 없는 곳에는 소유권이 없다. (195)
주권자는 백성 각자가 동료 백성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누릴 수 있는 재산이 무엇이며, 할 수 있는 활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는 전권을 가지고 있다. 그 규칙이 바로 사람들이 ‘소유권’(propriety)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주권이 설립되기 이전에는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만인이 만물에 대해 권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바로 전쟁의 필연적인 원인이었다. 따라서 소유권은 평화를 위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주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평화의 유지를 목적으로 한 주권의 행동이다. 소유권, 즉 ‘내 것’(meum)과 ‘네 것’(tuum)에 대한 규칙, 백성들의 행동에서 선과 악, 합법과 불법에 대한 규칙 등이 바로 시민법(civil laws)이다. (241~242)

이처럼 전쟁상태에서 오직 나의 것으로 유지할 수 있는 동안에만 가능한 소유, 더 정확히는 점유만이 존재하는 것과 달리, 코먼웰스와 시민법의 형성 이후에 시민들은 권리의 상호양도를 통해 보장받는 소유권, 곧 시민법에 의해 보장되는 소유권을 가지게 된다. 이는 소유에 관한 권리가 오직 국가와 법에 의해서만 부여될 수 있으며, 또 이를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홉스가 권리와 법을 자유의 긍정과 자유의 부정으로 파악하면서,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했던 것과 달리, 참된 의미에서의 권리는 국가나 법에 의해서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장되는 것이다. 독일어에서는 이러한 권리와 법의 밀접한 관계가 더 잘 드러나는데, 독일어에서 권리(das Recht)와 법(das Recht)은 동일한 단어이다. 예컨대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게서 법은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상충되지 않도록 모든 사회의 구성원에 대해 외적 행위를 제약하는 것이지만, 이는 자유에 대한 억압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의 실현을 위한 적극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홉스에게서 이러한 법 안에서의 자유나 권리에 관한 단초들은 더 이상 발전되지 않는다.

 

3.3. 리바이어던과 주권자의 권리. 자연법과 실정법의 관계

  홉스의 정치철학에서는 코먼웰스, 곧 리바이어던의 설립 이후에 주권자에 대한 어떠한 저항권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에 관해 홉스는 「제18장 설립에 의한 주권자의 권리에 대하여」에서 모든 시민들의 권리를 양도받은 주권자의 다음과 같은 권리에 대해 언급한다 : “1. 백성은 통치형태를 변경할 수 없다”, “2. 주권은 박탈되지 아니한다”, “3. 다수에 의해 선포된 주권의 설립에 항의하는 것은 불의이다”, “4. 주권자의 행위를 백성이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5. 백성은 주권자의 어떤 행위도 처벌할 수 없다.”(「제18장 설립에 의한 주권자의 권리에 대하여」 참조)  어떠한 경우에도 주권자의 행위를 처벌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처벌의 기준이 되는 법이 다름 아니라 주권자의 말(word), 곧 시민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일한 입법자로서 주권자는 시민법을 초월한 존재로 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없다. 반면 시민들, 아니 백성들(subjects)은 자연법의 요구에 따라 한 사람 혹은 합의체에 계약을 통해 권리를 상호 양도하며, 이에 따라 계약을 준수하며, 양도된 권리의 행사를 방해하지 않을 의무를 가지기 때문에, 홉스의 이론 안에서는 원칙적으로 시민들의 저항권의 가능성이 제시되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리바이어던, 곧 코먼웰스에서 유일한 입법자는 주권자이며, 주권자의 말이 곧 시민법이기 때문에, 이러한 저항권의 부재는 결국 한편으로 주권자가 절대적 권력을 갖게 되는 절대군주에 관한 옹호로 귀결되며,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자연권이나 자연법의 요구가 실정법에 대한 어떠한 규제적 역할도 할 수 없게 만든다. 우선 절대군주에 관한 옹호론에 관해서 보면, 홉스 스스로도 이러한 논의가 결국 주권자에게 절대적 권력을 부여하며, 이에 따라 “무제한적인 권력을 가진 자의 정욕과 변덕스런 정념에 백성들이 좌지우지된다면 백성들의 상태가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246)라는 반론이 제기될 가능성을 알고 있다. 하지만 홉스는 이러한 반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한다 :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불편이 전혀 없는 상태에 있을 수는 없다. 또한 통치형태를 불문하고 인간이 겪는 그 어떠한 극심한 불편도 ...... 법에 대한 복종도 없고, 약탈과 복수를 못하도록 그들의 손을 묶는 강제력도 없이, 즉 지배자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전쟁상태로서 자연상태에 있는 인간들]의 분열 상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247)

즉 홉스는 절대군주의 폭정이라는 위험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연상태보다는 ‘덜’ 비참한 상태라는 점에서 여전히 주권자의 절대적 권리를 옹호하고 있다.

  다른 한편 홉스가 여전히 주권자의 절대적 권리를 옹호하는 한에서,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처음 살펴본 것처럼, 홉스는 인간의 본성과 자연권, 자연상태의 비참함으로부터 자연법, 그리고 코먼웰스와 시민법 형성의 필연성에 논의로 나아간다. 또한 앞서 홉스는 자연법과 시민법, 곧 실정법 사이에 상호 연관성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홉스에게서 자연법과 실정법의 관계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또한 홉스가 주권자가 절대적 권리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어떠한 경우에도 주권자에 대한 저항이 정당화되지 않는 한, 그리고 주권자가 하나의 국가 안에서 유일한 입법자로서, 실정법이 주권자의 말이라면, 결국 자연법과 실정법은 앞서 언급한 후자의 경우, 즉 자연법과 실정법이 상이한 계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 자연법은 실정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없으며, 실정법의 입법 원리나 규제적 원리로도 역할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자연법은 법의 구성적 원리가 아니라 단지 주권자의 말인 실정법의 외부, 곧 자연상태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홉스의 논의 때문에, 홉스는 법실증주의의 선구자로 지목되기도 한다 :

앞서 리바이어던의 권능에서 언급하였듯이, 홉스의 이론 안에서 저항권은 원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특별히 부정의한 실정법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근거로서의 자연법 관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어떠한 내용의 법도 적법한 권위를 가진 자가 공포하면 실정법이 되는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는 현대 법률실증주의자들의 일반적인 주장과 연결된다. (이상영·이재승, 『법사상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14, 201~202)

 

 

4. 나가면서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홉스는 인간의 본성과 자연상태로부터 출발해서 국가와 시민법의 필연성에 대한 논의를 통해 자신의 정치철학을 전개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홉스의 이론은 1) 경험론적 방법론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인간의 본성이나 자연상태와 같은 논증의 출발점을 단지 몇몇 경험적 사례만을 제시하는데 그치면서, 이를 정당화하는데 실패하며, 또 이것이 단지 자신의 결론, 곧 리바이어던을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드러낸다. 또한 2) 자유에 관한 잘못된 이해, 곧 자유를 외적인 방해의 부재라는 자유의 일면적 의미만을 파악함으로써, 여러 차례 자유와 법, 혹은 권리와 법의 밀접한 관계의 단초들을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3) 결국 이러한 자유에 관한 일면적 파악은 홉스를 주권자의 절대적 권리를 옹호하는 입장으로 나아가게 만들며, 이는 자연법과 실정법 사이의 모호한 관계설정과 결합되어, 결국 자연법과 실정법의 관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법실증주의와 같은 입장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이에 따라 자연법은 실정법 체계 내에서 어떠한 구성적 원리나 규제적 원리로 작용하지 못하며, 리바이어던 안에서의 입법과 완전히 무관한 것으로 드러난다. 만약 실정법에 대한 어떠한 규제적 원리를 설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실정법의 입법자(들)의 무제약적인 권리 역시 제약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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