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개정 성경읽기
https://youtu.be/1lH_YUAlgJY?si=zaC5sUnSnQjgftas
| 제1권 메시야 언약 (구약) | |
| 제2편 찬양을 통한 언약 (욥기-아가) 역사서의 모든 하나님의 섭리는 모세오경을 통한 언약대로 ‘하나님의 의’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계시하시는 섭리이다. 그러므로 시가서나 선지서의 배경도 이러한 언약성취 섭리 사역을 배경으로 한 하나님에 대한 계시섭리이다. 하나님의 속성은 이러한 역사 섭리를 보고 깨달은 믿음의 사람들이 찬양한 내용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모세오경을 통한 언약이 성취되는 역사 현장에서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통해 증거된다. 시가서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인 다섯 권의 책을 말하는데, 각권에 따라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언약성취 섭리 사역을 통해 드러내신 내재적이고 초월적인 속성에 대한 언약자손의 찬양내용이다. 이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내실 것에 대한 예표로서의 모형적인 언약섭리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땅 끝까지 교회를 세워 음부의 권세가 무너트리지 못하도록 견인케 하심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실 예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인 계시섭리이다. 하나님께서 천상계와 천하계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이 땅에서 이루시는 사역을 하신다. 즉 첫 아담과 하와를 생령으로 창조하셔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따라 복을 주시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실체적인 양대(兩大) 언약을 세우신다. 이와 같은 언약성취 섭리에 대해 노아를 통해 예표적으로 이루신다. 그리고 이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체적으로 이루실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타락한 아담의 후손 가운데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모형적인 양대 언약을 세우신다. 여호수아서로부터 사사기에 이르기까지 가나안 땅에 대한 언약을 이루시고 룻기로부터 에스더서까지 선민국가를 창건하시되 3대가 못가서 분국케 하신다. 그리고 남북으로 나뉜 선민국가를 결국 죄인의 모습으로 포로가 되게 하셨다가 다시 회복해 주신다. 물론 이는 모세오경에서 이미 언약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시 섭리이다. 이같은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드러내신 여호와 하나님의 내재적이고 인격적인 공유적 속성과 초월적이고 신격적인 비공유적 속성을 주제로 하여 찬양하게 하신 내용을 시문학적으로 기록했다. 이는 장차 영광의 광채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본체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하신대로 ‘하나님의’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때 드러내실 때에 찬양할 것에 대한 예표로서의 언약섭리 사역이다. | |
제4부 여호와의 계시적(啓示的) 영원성 찬양 (전도서) 전도서는 하나님의 뜻을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사역과 언약성취 섭리 사역을 통해 드러내신 내재적이고 초월적인 속성에 대해 언약자손으로 하여금 깨닫고 찬양하게 하신다. 그 목적은 언약자손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성이 계시로서 가치가 있음을 찬양하게 하신다. 그리고 그 내용은 해 아래서의 세계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계시로서 영원한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이는 언약자손을 해 아래 세계에 살게 하시면서 하나님의 계시적인 영원성을 드러내시기 위한 언약성취 섭리 사역임을 깨닫고 찬양하게 하시는 섭리이다. 전도서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내재적이고 인격적인 공유적 속성은 계시성이며, 초월적이고 신격적인 비공유적 속성은 영원성이다. 이는 본래 하나님이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죄인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하나님은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증거하실 것에 대한 예표적인 찬양을 통한 언약섭리 사역이다. 이는 해 아래의 무익한 사물일지라도 이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행사를 계시하시는데 가치가 있음을 들어 계시적 영원성으로 수단적 가치와 목적적 가치의 관계를 통해 가치론에 기초가 된다. 이는 실천신학 가운데 성도의 세계관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
| 전도서 연대표 | ||
| 연대 (B.C.) | 주요 사건 | |
| 970 | 솔로몬의 등위와 다윗의 죽음 | |
| 966~959 | 성전 건축 | |
| 959~946 | 왕궁 건축 | |
| 935 | 여로보암의 반역 | |
| 931 | 솔로몬의 죽음과 르호보암 등위 | |
| 931 | 여로보암의 즉위, 선민국가의 분국 | |
| 722 | 앗수르에 의해 북왕조 멸망 | |
| 586 | 바벨론에 의해 남왕조 유수 | |
| 538 | 고레스의 칙령 | |
| 538 | 스룹바벨에 의해 제1차 포로 귀환 | |
| 520~516 | 스룹바벨에 의한 성전 재건 | |
우리말 성경은 이 책의 이름을 '전도서'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원래 히브리어의 명칭은 ‘코헬렛’이다. ‘코헬렛’은 구약성경의 다른 곳에서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확정하기가 어렵다. 학자들은 이 말이 아마도 회중을 소집하여 지혜를 전하는 ‘스승’이나, ‘설교자’, 또는 ‘집회 인도자’를 가리키는 말로 보고 있다. 이 말과 관련이 있는 히브리어 명사형(카할)은 ‘집회’(assembly)를 의미한다. 70인역에는 ‘Ekklesiastes’로 ‘회중을 소집하는 자’ 또는 ‘모인 회에서 설교하는 자’의 뜻이다. 벌게이트에는 'Concionator'란 이름으로 ‘회를 불러 모은 자’란 뜻이 있다.
저 자
저자는 자신을 ‘다윗의 아들’(1:1)이며, ‘이스라엘의 왕’(1:12)이라고 소개한다. 이 말은 솔로몬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또한 저자의 행적들이 1:12~2:26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묘사에 어울리는 사람은 솔로몬 한 사람 뿐이다. 이 때문에 많은 유대인 학자들과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솔로몬의 저작설을 이의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비평주의자들은 본서의 저자가 솔로몬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왕과 신하가 관련된 금언을 기록할 때(전8:1~10)에는 저자 자신이 신하의 입장에서 기록한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루터 이후 많은 학자들은 솔로몬을 본서의 기자로 보지 않았다. 진보적 신학자들에 의하면 마카비 시대(B.C. 150년경)에 본서가 기록되었다고 한다. 즉 본문에 사용된 언어가 미슈나에서 사용되던 언어로 발전했다. 따라서 본서는 포로기 시대 이후에 기록되었으며, 저자는 포로기 시대 이후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메시지 전달의 효과를 위해 솔로몬의 입을 도용한 것 같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본서의 저자는 본서 스스로 증언하듯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1:1), 즉 본문 중에서 다른 사람과 비길 수 없는 지혜와(1:16) 재산(2:7), 그리고 대규모 토목 사업(2:4~6)에 대해 언급되어 있는 것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솔로몬을 가리킨다.
기록 연대
유대 전설에 의하면 아가는 솔로몬이 젊었을 때에, 잠언은 솔로몬의 중년기에, 그리고 전도서는 그의 노년기에 기록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도서는 다섯 개의 두루마리들(메길로트 : 룻기, 아가, 애가, 에스더, 전도서)로 구성되어 있었고, 주후 5세기 초에 ‘성문서’에 포함되었다. 히브리 맛소라 사본들 속에서 전도서는 5개의 두루마리 중에 4번째 두루마리에 속해 있었다. 전통적으로 전도서는 유대인의 마지막 절기인 ‘장막절’(초막절)에 낭독되었다. 그 이유는 한 해를 마감하고 돌이켜보는 장막절(초막절)이 인생의 의미를 돌이켜 보는 전도서의 내용과 일치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도서는 솔로몬의 저작인 잠언과 함께 다윗의 시(시편)의 뒤에 놓여 있다. 이러한 배열은 솔로몬이 다윗의 아들인 점을 고려할 때에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전도서의 저자가 솔로몬이라는 전통적인 입장을 받아들인다면, 전도서는 솔로몬 말기(주전 935년경)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요절 및 주제
전도서의 요절은 3:12~14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이다.
이처럼 전도서의 내용은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사람의 모습으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 아래서의 수단적 가치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의미를 깨닫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시는 궁극적 가치에 대해 계시하신 내용이다. 이는 모세오경의 언약을 이루시는 언약성취 섭리의 품위와 맥을 같이 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계시된 피조세계를 포월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뜻대로 이루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원하신 여호와이심으로 본서의 주제는 “계시적(啓示的)인 영원하신 하나님”이다.
기록 배경
저자는 세속적인 목표나 동기를 가지고 인생을 추구할 때, 진정한 즐거움과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설명하고 있다. 이 세상은 수수께끼로 가득 찼으며, 가장 어려운 수수께끼는 사람 자체이다. 본서는 정확한 문학 양식에 의거하여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본서의 내용은 보는 사람들마다 그 해석들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다양한 관점에서 동일한 주제를 말하고 있다. 저자 스스로는 인생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낭비하였다고 한다(왕상 10:14∼11:9 참조). 그러면서 자신이 이제와서 그러한 부분들을 되돌려 놓기에는 너무나 늙었으며, 젊은이들은 인생에 있어서 낭비하는 부분이 없어야 함을 말한다(전12:1). 이세상의 모든 것에서는 참다운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한다(전1:2). 그러나 인생은 인간들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면서 행복한 생활을 누리라고 한다(전3:12,13; 전9:7-9). 이와 같은 깨달음을 얻은 저자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라는 말로 이 책을 끝맺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전 12:13).
기록 목적
본서의 기록 목적은 인간이 육체적인 쾌락만으로는 참된 삶의 가치를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 안에 거할 때만이 참다운 인생의 가치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함이다. 즉 인간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으로는 오는 영광과 축복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때는 좌절과 공허함만이 존재하게 된다. 본서는 인간 스스로의 수준을 넘을 수 없는 세상의 모든 이념들은 모두 무용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결국 노년의 전도자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 안내자가 되어 주고자 한 셈이다. 이는 장차 오실 메시야만이 주권적인 ‘하나님의 의’의 실현으로 선민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온전한 안식을 누릴 수 있음에 대해 기술한 것이다.
내용 분해
전도서의 가르침은 목적상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해 아래서의 수단적 가치에 관한 것이다. 또 하나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계명 가운데 대인 계명과 대신 계명으로 구분하는 것과 같다. 특히 무엇보다 중요한 가르침은 후자의 것인데, 그 전제는 모든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께 있고 그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사상이다.
본 통섭 성경개론에서는 인간의 시공간 생활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깨닫게 하시는 과정인 여호와의 계시적(啓示的) 속성을 내재적 속성으로 보았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영원성 찬양이라는 관점에서 제1장 해 아래 하나님의 사역(전1:~7:)과 제2장 영원한 하나님의 사역(8∼12:)으로 구분하였다. 전도서의 이런 구조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시는 구조에 성경신학적 의미를 부여했다.
신학적 의미
먼저 주경신학적 입장에서 살펴보면 전도서는 지혜문학 양식으로써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사와 만물을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시는 영원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영원하신 분이라면 창건된 선민국가를 나누시고 심지어 유수에 이르게 하셨을까 하는 질문이 생긴다. 이는 계시를 통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계시하시기 위한 섭리이기 때문이다. 교회에 대해 천상교회와 지상교회, 승리교회와 전투교회, 비가시적 교회와 가시적 교회로 구분하는 것은 신약성경 해석에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된다. 특히 신약성경 해석에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속성은 초월적이고 비공유적 속성이 있고, 내재적이며 공유적 속성이 있다. 전도서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속성은 첫째, 초월적이고 신격적인 비공유적 속성인 영원성이다. 비공유적 속성은 ‘하나님의 나라’를 작정하시고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만의 독특한 속성이다. 둘째, 내재적이고 인격적인 공유적 속성인 계시성이다. 공유적 속성은 하나님께 ‘하나님의 의’를 실현하시고자 보내심을 입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신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내신 속성이다. 이러한 속성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들의 중생인으로서 성경적 세계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한다.
다음 역사신학적 입장에서 살펴보면 정경성에 대한 오해를 불식케 한다. 탈무드에서 전도서는 잠언, 아가서와 더불어 '정경성'에 있어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다른 솔로몬의 저작처럼 이는 교회에서 받아들인 하나님의 말씀인 정경이다. 인생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있다. 전도서는 과거나 현재의 삶이 마치 무의미한 삶인 것처럼 보이지만 미래에 대한 참된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는 가치로운 것임을 강조한다. 인생의 가치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 안에서 살아갈 때 찾아오는 것이다. 세상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면 모든 것이 헛될 뿐이다. 전도서는 이 세상의 모든 창조물을 하나님의 창조물로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생을 사용해야 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역사는 계시로서 가치가 있는 긍정적 섭리이다.
다음 교의신학적 입장에서 보면 유기적 성격에 따라 말씀으로 성육신하신 주권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에 대한 관계는 물론 조건언약과 무조건 언약의 상관관계를 보다 정확하게 지시한다.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공유적 속성과 비공유적 속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품위에 대한 설명이 분명해 진다. 삼위일체론과 교회론 등의 원리에 대해서 성경의 내적 증거로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품위를 감당하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이해와 선민국가의 회복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의미를 가진다. 영광의 본체가 되시는 하나님과 광채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 또는 음부의 권세가 무너트리지 못하는 교회의 품위에 대한 예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이다.
끝으로 앞의 이론적인 신학에서 설명된 대로 친히 이루시는 실천신학적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을 배우는 지혜의 단계를 통한 배움공부로부터 지식으로 말미암는 계시를 통해 배우는 익힘공부로 이르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은 복음의 품위와 관계가 있다. 이는 성도의 성화과정은 신령한 지식만큼이나 전인적 덕성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성도의 삶은 승리 자체인 기능중심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음부의 권세가 무너트리지 못하도록 지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능력의 계시를 깨닫게 하시는데 의미와 가치가 있다.
통섭 성경개론에서 밝힌 커다란 신학적 이론인 성경해석은 승리를 향한 형식적 구조와 함께 내재하시는 주님을 믿는 내용중심의 구조를 포월한다. 이는 확인된 신존재에 대한 초월신관에 머물지 않고 내재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게까지 한다. 이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음부의 권세가 무너트리지 못하는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이루시는 능력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지식은 가치론적 입장에서 실천신학의 한 분야인 목회학의 원리에 기초가 된다.
전도서는 B.C. 970~930년경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지혜로웠던 솔로몬 왕이 노년에 인생을 돌아보며 기록한 것으로 '지혜'(50회), '헛되고'(37회), '해 아래서'(31회)를 반복하며 하나님을 떠나 행복하려는 모든 노력이 헛됨을 전해주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만이 삶의 목적을 이루는 것임을 전합니다 . 또한 모든 헛됨에 대한 해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https://youtu.be/nTdprm05KuU?si=bO_wPO_YXB4iUQ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