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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부부 갈등_03 토끼와 호랑이 가정 안에서의 환대 2

작성자수영루치아|작성시간26.06.18|조회수11 목록 댓글 0

부부 갈등_03 토끼와 호랑이 가정 안에서의 환대 2

이레지나 심리학박사, 부부가족치료전문가 서울부부가족치료연구소 소장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교수

 

 

고운 인상에 정갈한 옷차림의 40대 부인이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첫인상과 달리 그녀의 마음속은 깊은 무기력과 우울로 가라앉아 있었다.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그녀는 스스로 돌아보아도 우울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남편은 다정하고 성실했고,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그녀는 결혼 전에는 좋은 직장에서 자신만의 이름으로 빛나던 커리어우먼이었지만,

출산 이후 가정을 선택하여 전업주부의 길을 걸어왔다.

그 덕분에 남편은 직장에서 승승장구했고, 아이들은 안정된 일상을 누렸다.

그러니 자신은 응당 행복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냐고 그녀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찾아온 설명하기 어려운 허망함과 점점 짙어지는 우울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무게로 쌓여 있었다.

그녀의 가정생활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 이야기의 결이 선명해졌다.

그녀는 남편을 ‘호랑이 같은 사람’이라 표현했다.

목표의식이 분명하고 추진력이 강한 사람. 반면 자신은 ‘토끼 같은 사람’이라 했다.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성격 탓에 늘 호랑이의 기세에 눌려 쩔쩔매는 느낌이라고.

남편은 아내를 무척 아끼는 사람이었다.

산책이든 식사든 무엇이든 아내와 함께하려 했고, 그 시간을 진심으로 즐겼다.

하지만 남편이 자신의 일로 돌아가고 나면, 부인의 시간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흘러갔다.

학교 일정을 챙기고, 학원을 오가고, 끼니를 준비하다 보면 혼자만의 시간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어느 순간에는 당당하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아이들의 모습마저 호랑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상담은 자연스럽게 ‘토끼와 호랑이’라는 메타포로 이어졌다.

그녀는 토끼를 떠올리며 힘없고 소극적인 이미지를 먼저 꺼냈다.

하지만 토끼의 다른 얼굴을 함께 찾아보기로 했다.

영리함, 지혜, 사랑스러움, 부드러움, 부지런함. 하나씩 열거 되는 특성들은

놀랍게도 그녀 자신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토끼는 과연 늘 호랑이에게 기죽어 사는 존재일까?

아니면 토끼만의 방식으로 유쾌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존재일까?

 

비유의 힘은 생각의 물꼬를 트는 데 있다.

그녀는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를 막힘 없이 풀어놓기 시작했다.

남편이 토끼가 되어주길 은근히 바라왔던 마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토끼인 자신이 호랑이가 되려 애썼던 시간들.

그러나 호랑이는 호랑이로, 토끼는 토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단순하지만 묵직한 사실.

더 중요한 발견은, 남편이 결코 폭력적이거나 무자비한 호랑이가 아니라

토끼를 아끼고 존중하는 ‘젠틀한 호랑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늘 부드러움과 지혜를 발휘해온 매력적인 토끼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과 함께 오래된 기억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호랑이가 토끼 앞에서 눈치를 보며 쩔쩔 매던 순간들,

잘 보이려 애쓰던 남편의 모습들. 그녀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호랑이가 토끼가 될 필요도, 토끼가 호랑이가 될 필요도 없었다.

각자의 결대로 살아가는 둘은, 이미 충분히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으니까.

 

이러한 변화가 상담사만의 특별한 능력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사실 이 역할은 가족 누구나 할 수 있다.

거창한 기술도 필요 없다.

그저 귀 기울여 들어주고, 생각이 펼쳐질 때 고개를 끄덕이며 응원해 주는 것.

단순하다고 하지만, 우리는 과연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이 작은 실천을 하고 있을까?

토끼와 호랑이가 서로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받을 때, 관계는 비로소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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