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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비원 산책하며 만난 정조의 숨결, 이도곰탕까지 완벽했던 하루

작성자雪霽(설제)|작성시간26.06.15|조회수34 목록 댓글 0

창덕궁 비원 산책하며 만난 정조의 숨결, 이도곰탕까지 완벽했던 하루

 

요즘 서울에 외국인 관광객이 정말 많아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6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한복을 차려입고 우리 궁궐을 누비는 외국인들을 보니 왠지 모를 자부심과 묘한 기분이 동시에 들더라고요.

 

통불회 모임 덕분에 오랜만에 찾은 창덕궁, 사실 저는 조선의 22대 왕 정조의 마음으로 이곳을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 백성을 아끼고 학문을 사랑했던 그가 거닐던 길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요?

 

 

 

 

 

입구부터 느껴지는 조선의 위엄과 낯선 풍경

 

궁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웅장한 진선문이 반겨줍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건 문 자체가 아니라 그 앞을 가득 메운 외국인들이었어요.

 

 

단정하게 놓인 돌길 위로 알록달록한 한복 자락이 날리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죠. 조선의 궁궐은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물을 마주하는 배산임수의 정석을 따르고 있는데, 자연 속에 폭 파묻힌 이 느낌이 참 편안해요.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국가의 큰 행사가 열리던 인정전이 나타납니다. 겹처마의 화려한 단청과 하늘을 찌를 듯한 지붕 곡선이 압권이에요. "경들의 생각은 어떠한가?"라고 묻던 정조대왕의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카리스마가 전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왕의 시선으로 바라본 궁궐의 안쪽

 

인정전 안을 들여다보니 화려한 일월오봉도가 눈에 들어옵니다. 해와 달, 그리고 다섯 개의 봉우리는 왕의 존재를 상징하죠.

 

 

정조대왕은 완벽주의자였다고 해요. 밤낮으로 규장각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그 학구적인 열정이 이 붉은 기둥과 화려한 천장 무늬 사이사이에 스며있는 듯합니다.

 

 

발걸음을 옮겨보니 마당 한복판에 해시계, 앙부일구가 놓여 있네요. 백성들이 시간을 알 수 있게 하려던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이 정조 시대에도 실용적인 학문인 실학으로 이어졌겠죠?

 

구리 그릇 안에 새겨진 미세한 선들을 보니 당시 조선의 과학 기술이 얼마나 정교했는지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뜨거운 햇볕 때문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이 정교함을 놓치기 싫어 한참을 들여다봤어요.

 

 

 

 

 

가장 한국적인 정원, 비원의 신비로움

 

드디어 창덕궁의 꽃이라 불리는 후원, 즉 비원으로 들어섰습니다. 이곳은 자연의 지형을 그대로 살린 것이 특징이에요.

 

 

연못 한가운데 핀 연꽃처럼 우아한 부용정이 보입니다. 정조대왕께서 "나의 개혁이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한 것임을 진정 모른단 말인가?"라며 신하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다가도, 잠시 이곳에서 숨을 돌리셨을 장면이 그려지더라고요.

 

"비록 뜻하신 바를 다 이루지는 못하셨으나, 그 치욕을 잊지 않고 군비를 정비하셨던 선왕(효종)의 기개는 훗날 나의 개혁 정신에도 닿아 있다."

 

정조가 존경했던 효종대왕의 북벌 의지는 이 깊은 숲속 후원 곳곳에도 군사 훈련의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수문을 지나 주합루로 향하는 길은 왕의 엄격한 위계가 느껴지면서도 조경의 아름다움이 극치를 이룹니다.

 

 

 

과거 시험이 치러지기도 했던 영화당 앞마당을 지나며, 인재를 등용해 탕평 정치를 펼치려 했던 정조의 고뇌를 잠시나마 느껴보았습니다.

 

 

 

 

 

정조의 교시를 읽으며 다짐한 생각들

 

산책길 끝자락에서 정조대왕의 통치 철학이 담긴 존덕정 안내판을 만났습니다.

 

모임 분들과 함께 안내판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았는데, 스스로를 '만천명월주인옹'이라 칭하며 모든 백성에게 골고루 은택을 베풀고자 했던 그의 의지가 지금 우리 시대에도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궁궐을 나오니 다리가 꽤 묵직해졌어요. 한참을 걷고 나니 배꼽시계가 정확하게 울리더군요. 오늘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메뉴는 바로 '이도곰탕'입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풍기는 진한 고기 국물 냄새에 정신이 아득해졌어요. 놋그릇에 정갈하게 담겨 나온 곰탕은 국물이 맑으면서도 깊은 맛이 났습니다. 큼직하게 썰어 넣은 고기는 입안에서 녹아내리고, 듬뿍 올린 파의 향긋함이 뒷맛을 깔끔하게 잡아주더라고요.

 

뜨거운 국물을 한 술 뜨니 오늘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어요. 조선 시대 왕들도 이런 보양식을 즐기셨을까요?

 

창덕궁의 고즈넉한 풍경과 외국인들의 활기, 그리고 정조대왕의 철학을 만난 뒤 먹는 따뜻한 국밥 한 그릇. 이보다 더 완벽한 서울 나들이가 있을까 싶네요.

 

여러분은 우리나라 궁궐 중에서 어느 곳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정조대왕의 숨결이 느껴지는 비원의 주합루를 한 번 거닐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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