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성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그레고리오 1세는 본래 여생을 세상 일에 관여하지 않고 그저 수도원에서 살고 싶었지만, 교황으로 선출되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가 임기를 시작한 해에 집필한 글들을 보면 자신에게 부과된 교황직의 막중한 부담감에 한탄하며, 과거 수사로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기도 생활을 더는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는 전염병으로 피해를 입은 로마 시민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사흘간 참회 기도를 하였다. 당시 그는 기도 행렬을 이끌고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옛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묘까지 행진하였다. 기도 행렬이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던 도중, 그레고리오 1세는 대천사 미카엘이 손에 칼을 들고 하드리아누스의 묘 위를 맴돌고 있는 환시를 목격했다. 교황은 그 환시가 사람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이제 전염병은 끝날 것이라고 선포했고, 그의 말대로 전염병 환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그레고리오 1세는 공식 문서에서 스스로 ‘하느님의 종들의 종(servus servorum Dei)’이라는 칭호를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즉 그레고리오 1세는 교황권을 지배하는 특권이 아니라 봉사하는 특전으로 이해한 것이다. 서양의 단선율 성가의 주요 양식은 9세기 말엽에 표준화가 되었는데, 이는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주도적으로 행한 것이다. 그러한 연유로 그의 이름을 따서 그레고리오 성가라는 이름이 붙어졌다. 그레고리오의 부제 베드로는, 그레고리오가 책을 쓸 때 성령이 비둘기 모습으로 그의 머리 위에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레고리오의 성화에 귀밑에 흰 비둘기가 속삭이는 모양을 그리는 것도 이에 기인한 것이다.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한 일화도 여기서 나왔다. - <위키백과>참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