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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여유

『아버지학교』는 ‘젊은 아빠들’만의 전유물일까?

작성자이동철|작성시간17.12.07|조회수236 목록 댓글 9

아버지학교젊은 아빠들만의 전유물일까?

 

<할아버지 입학생>

"아이들 다 출가시키고 가재 늦게 웬 아버지학굡니껴?!"

문에 들어서자 안면이 있는 아버지학교 봉사자 한 분이 의아한 듯 인사 겸 물었습니다. 함께 도열해 있던 봉사자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그그냥 함 와봤심더.” 하고 고개 숙여 웃어보였습니다. 하지만 환갑지난 할아버지가 입학한 사실이 들킨 게 쑥스러워 전등불이 밝게 켜진 교실 안으로 얼른 숨듯이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지금부터 꼭 6년 전, 바로 저의 이야기입니다. 12녀 아이들을 모두 출가시킨 후 성요셉 아버지학교라는 곳을 찾았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런 학교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던 그 전해에 입학했을 것입니다. 아버지학교는 아버지들을 교육시켜 한참 잘 자라는 자녀들을 더 곧게 자라도록 하는 버팀목 역할을 하게 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부모교육을 아이들이 모두 제 곁을 떠난 후에야 그 존재를 알았으니 완전히 인생을 거꾸로 산 셈이 되었습니다.

 

<반성>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 저는 스스로 부모노릇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살이를 한참하고, 예순을 훌쩍 넘기고도 몇 해나 지난 어느 조용한 날, 아이들을 제 생각의 틀에 끼워 맞춰 키웠다는 생각이 문득 스치며 지나갔습니다.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던 저의 언행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전체 줄거리 정도만이지 자잘한 것은 대부분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맏이인 아들 녀석의 기억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아들은 제 엄마하고는 농담도 하며 잘 지냈습니다. 바깥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도 보고를 잘 했다는 기억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웃다가도 저를 보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는 생각이 들자 서운한 감이 솟았습니다.

아이는 머리가 굵어지면서 제 아버지 보기를 조심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중학생일 때는 저는 이미 열외자로 밀려나 있었음에도 저는 그런 사실 자체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가 고등학교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되었을 때는 부모 모두에게 그 내용을 한 달 이상이나 숨겼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생각이 딱 멈춰 섰습니다. 아버지인 제가 평소에 남들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한 탓이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전기충격을 받은 듯한 그 순간, 정지되었던 생각의 화면이 다시 순식간에 파편처럼 튀며 번져 나갔습니다. 갑자기 아이들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더럭 겁도 났습니다. 혹시 아버지의 '헛똑똑이 가정교육'으로 아이들이 세상을 향한 생각을 닫아버린 부분은 없는지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아이들이 세상 속으로 깊이 들어갔을 때 어떤 영향이 미칠지 등등 아이들을 잘 교육한다고 했던 제가 오히려 뭔가 상당히 잘못한 점이 있었을 것이라는 불안스럽고 미심쩍은 느낌에 도달했습니다.

아이들 각자 인생에 대한 동기부여는 고사하고 가지고 있던 의욕마저 꺾어 버린 사실이 있었던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무언가 잘못한 점, 짐작은 되지만 제가 딱히 꼬집어내기에는 어설펐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 무엇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무언가 끄나풀 하나라도 꼭 찾아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청해야했습니다. 그리고 찾고 두드린 끝에 '아버지학교'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나마도 '행운'이라 여겼지만 저에게 아버지학교는 그야말로 '대어'엿습니다.

 

<숙제>

아버지학교에 입학을 하고나서 3주차에 추석이 끼어있었습니다. 추석 다음날 큰딸이 아래로 네 살과 두 살 박이 아이들을 데리고 지아비와 함께 친정을 다니러 왔습니다. 점심을 함께 먹고 쉬다가 해거름에 집을 나선다며 아이들 신발을 챙겼습니다. 그때 생각났다는 듯이 딸을 불러 세웠습니다.

"얘야! 아빠 숙제 도와줘. 이리와. 허깅해야지." 딸은 금새 눈치를 채고 신을 신다말고 아버지에게 쪼르르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가볍게 허깅을 했습니다. 이어서 사위와 꼬마들과도 번갈아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딸은 저네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파트 마당까지 아이들을 배웅하고 돌아온 아내가 문에 들어서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 딸이 지금 돌아가며 뭐랜 줄 알아요? '아빠한테 평생 처음 안겨봤다'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갔어요!"

"아니, 뭐라고? ? 아빠에게 처음 안겨보았다고? 눈물을 글썽였다고?" 저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믿어지지가 않았지만 이내 수긍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가 지어낸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딸이 집에 도착했을 즈음 전화를 걸었습니다. 딸이 바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얘야! ()가 아빠한테 처음 안겨보았다며?"

딸은 목이 메었는지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저도 목이 메어왔습니다.

"그랬었구나! 으음, 그래.” 저는 마른 침을 삼켰습니다. 그리고 허둥지둥 말을 이었습니다.

"아빠는 그게 아니었는데 오랜 세월 원망을 안고 지냈구나! 그게 아니었어. 그래, 우리 딸! 너는 내 자랑스러운 딸이야!으음!” 저는 전화기를 움켜잡고 신음했습니다. 입안이 타들어오고 말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다음에 조용히 얘기하자꾸나.” 이윽고 그렇게만 말하고 전화기를 내렸습니다.

 

<용서의 편지쓰기>

한 주가 지날 무렵 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우선 변명부터 했습니다. 저는 큰딸이 '3남매 중에서 가운데에 태어났기 때문에 오빠와 막내사이에 치어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말부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제가 '직장일과 대학공부 병행, 거기다 보잘 것 없지만 사회활동 등 하는 일이 너무 많아 함께 잘 있어주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을 넣었습니다. 또 당시 전 문화부장관이었던 이 모 교수의 따님인 당시 쉰둘의 민아 씨, 그들만의 부녀관계에 대한 이야기 마침 그해 몇 달 전 우연한 기회에 그 따님이 쓴 글을 본 기억이 떠올랐는데 따님은 「자신의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 아버지가 자신을 미워하는 줄로만 알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글귀가 주저 없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해석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아버지는 젊은 시절, 당신의 방에서 연구하고 쉼 없이 글을 쓰고 할 때 꼬마였던 자신은 곧잘 아버지의 방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버지는 당신의 아내를 불러서는 ",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그 짧은 한마디의 명령(?)들은 자신을 미워해서 그러시는 줄로 줄곧 믿었다.」라는 것이었습니다.-에 대해서도 풀어썼습니다. 그리고 '어찌되었든 아버지에게 서운했거나 갈등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전적으로 내가 잘못한 것이다. 그러니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썼습니다.

 

저는 내친걸음에 공부를 위해 미국에 가있는 3남매의 맏이인 아들에게도 편지를 썼습니다. 아버지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다 용서하라고요. 무엇보다 어릴 때 장래 꿈에 대한 이야기는 고사하고 아버지의 일방적인 자녀교육이 무지에서 비롯되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어 참으로 아쉽다는 심경을 글에 담아 보냈습니다. 미국유학은 아들 자신이 원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제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신의 장래는 본인이 알아서 잘 할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늦다는 법은 없다>

아버지학교 입학 전, 무언가 결과가 있으리라는 예감은 옳았습니다. 아버지학교는 반드시 자녀들이 어릴 때만 필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아버지학교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시발점은 아들을 염두에 둔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큰딸과의 사이에 해묵은 찌꺼기가 끼어 있었던 것입니다. 까마득히 모르고 있던 멍에를 풀고 보니 얼마나 가슴이 후련하고 기뻤는지! 저는 딸을 새로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부모자식간의 막연한 불안감과 미심쩍음에서 시작하여 의외로 발견한 갈등의 근원을 찾아 치유를 했으니 그만한 은총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후회는 언제나 늦게 찾아오는 법이지만 새로운 출발의 가장 빠른 때는 언제나 <지금, 여기>라는 교훈을 새삼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늦다는 법은 없다는 말은 젊은 아빠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아버지학교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케치프레이즈였습니다.   ()

 

희망의 모후 pr.이동철 에드문도 올림.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우리 서로 사정은 다를지라도 공동체의 핵심인 가족 간에 혹시 모를 갈등이 있다면 가족구성원 간의 대화로 갈등해소의 기쁨을 공감하는 동시에 하느님 축복의 따뜻한 손길을 공유하려는 마음에서입니다. 물론 모든 가정이 하느님의 축복으로 기쁨을 누리시리라 믿지만 축복받고 있는 가정은 더 많은 축복을 받고, 혹여 미흡한 가정은 그 미흡함을 해소한다면 모두가 '덤'이 아니겠느냐 하는 마음에서이지요. 마침 그저께 냉담교우 모시기교육장에서 우리 매호카페가 활성화되어있다는 말을 듣고 한편으로는 반갑고 또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에 글 하나를 올려보기로 했습니다. 무례했다면 용서하세요.

글이 넘 길어요.ㅠㅠ    고맙습니다.~~

 

여기, R. 타고르의 시() 한 수를 올리고 물러납니다. 혹시 무례함이 보인다면 사죄의 뜻으로-.

 

기탄잘리(GITANJALI) I

-R. 타고르-

 

당신은 나를 무한케 하셨으니 그것은 당신의 기쁨입니다.

이 연약한 그릇을 당신은 비우고 또 비우시고 끊임없이

이 그릇을 싱싱한 생명으로 채우십니다.

이 가냘픈 갈대 피리를 당신은 언덕과 골짜기 넘어 지니고

다니셨고 이 피리로 영원히 새로운 노래를 부르십니다.

당신 손길의 끝없는 토닥거림에 내 가냘픈 가슴은 한없는

즐거움에 젖고 형언할 수 없는 소리를 발합니다.

당신의 무궁한 선물은 이처럼 작은 내 손으로만 옵니다.

세월은 흐르고 당신은 여전히 채우시고

그러나 여전히 채울 자리는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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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이희경 스콜라스티카 | 작성시간 17.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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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재욱 미카엘 | 작성시간 17.12.08 참으로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너무 잘읽었습니다 👍👍👍👍👍
  • 작성자마태오 | 작성시간 17.12.08 성님! 할아버지가 된 아빠의 심정을 헤아려 쓴 글입니다. 공감을 넘어 여태 살아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또 살아가는 방법에 등대빛 같은 인생 지표을 주고 목적을 새롭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소 지쳐가는 나를 일으켜 세워 주었습니다. 눈물샘을 자제하느려고.....ㅎ 주님과 함께 하시는 성님! 우리에게 항상 mentoring해주시는 성님께 건강을 기도합니다
  • 작성자박동원(다니엘) | 작성시간 17.12.08 저도~ 몇년전에 아버지학교에서 첨으로 올해 돌아가신 아버지께
    편지쓴 기억이 나네요.
    진솔함이 묻어나는 글~ 감사합니다.
  • 작성자이동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12.08 평범한 '생활나누기'에 댓글로 호응해주시고 응원해주신 형제자매님(존성대명을 함 써 볼랍니다. - 김진석 요한 카페지기님, woodjun 님, 수선화 자매님, 이도희 마르티노 형제님, 이희경 스콜라스티카 자매님, 김재욱 미카엘 형제님, 조강현 마태오 부단잗님, 박동원 다니엘 단장님), 고맙습니다.~~^^.
    "언제나 저희들의 간구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생활나누기를 허락해주셔서 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늘 깨어 있도록 보살펴주시고 이끌어주시길 간절히 청하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주십시요. 아멘"
    왠지 눈물이 나려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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