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토마스(Thomas-사도, 순교자
축 일-7월 3일
토마스는 열두 6,15; 요한 11,16; 14,5; 20,24-28; 21,2; 사도 1,13). 토마스 사도의 이름은 네 번 언급되는 사도들 명단에 들어있는데 ‘쌍둥이’라는(요한 11,16; 20,24; 21,2) 이름과 함께 등장한다. ‘토마스’라는 이름 자체가 히브리말로 ‘쌍둥이’라는 뜻이 들어있는 ‘토암’이라는 단어의 단축 형태이며 그리스어로는 ‘디디무스’라는 말로도 사용되는 이름이다. ‘쌍둥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 때문에 토마 사도에게 ‘엘리에셀’이라는 형제가 있었다는 문제가 전해진다(클레멘스의 강론 2권 1장). 또 시리아 언어로는 토마스 사도가 ‘유다스 토마스’라고도 불려진다(에우세비오, 교회사 1권 13장 11절). 외경으로 속하는 토마스 복음과 토마 사도행전 안에서 토마스 사도는 디디무스, 유다스, 토마스라는 이름 세 개가 복합적으로 나온다. 이 외경에 의하면 필립보와 마태오 사도같이 토마스 사도도 주님으로부터 비밀 계시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을 위해서 죽을 각오까지도 했던 사도였다.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요한 11,16). 예수님께서 작별 인사를 하셨을 때 토마스 사도는 주님의 말을 자르면서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요한 14,5) “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부활날 밤에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토마스 사도는 그 자리에 없었다”(요한 20,24). 예수님의 부활 소식에 토마스 사도는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면서 믿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조건으로 예수님의 상처를 보고 또 만지기를 원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요한 20,25).
예수님께서는 여드레 후에 발현하셨을 때에 지금까지 믿지 못하던 토마스 사도가 믿게끔 만들어주셨다. 그리하여 토마스 사도는 자신의 믿음을 결국 고백하게 되었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 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요한 20,26-28)
이렇게 해서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을 분명히 ‘하느님’이라고 신앙을 고백한 첫 번째 사도가 되었다.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사도들이 뿔뿔이 흩어져 떠났을 때 토마스 사도는 복음을 파르티아인들에게 전파하였다. 이 사실을 오리게네스가 증언한다(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 3권 1장). 예로니모는 그의 저서 <사도들의 생애 5장>에서 ‘토마스 사도가 파르티아 외에 여러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실과 인도 칼라미나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언급한다.
이에 관하여 4세기부터 전해져오는 교부들의 증언이 있다(암브로시우스의 시편 주해서 45장; 예로니모의 서간 59장; 나지안주의 그레고리오 설교집 33장). 인도에서 토마스 사도는 군다파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을 개종시켰다고 하며, 남인도와 마일나푸르(오늘날의 마드라스)에서 순교를 당했다. 토마스 사도는 마일나푸르의 무덤에 안장되어 있다.
토마스 사도의 영향으로 오늘날에도 인도에는 ‘토마스 크리스찬’이라고 불리는 신자들이 있다. 토마스 사도는 칼과 창으로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1547년 세워진 성당은 토마스 사도를 기리기 위해서 세워졌다.
그 성당 제대에는 1574년 발견된 토마스의 십자가가 들어있다.
토마스 사도의 대부분의 유해는 3세기에 에데사로 옮겨졌고 그 유해가 옮겨진 날인 7월 3일을 경축하였다. 토마스 사도의 무덤이 에데사에 있었다는 사실은 특히 루피누스와(교회사 2권 5장) 소크라테스(교회사 4권 18장)가 증언한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는 그의 강론 26편에서 토마스 사도의 무덤을 유명한 네 분 사도 무덤들 가운데 하나로여겨졌다.
교회 예술에서는 토마스 사도를 그리스도의 상처를 만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한다. 토마스 사도는 건축설계사들과 집을 짓는 자들, 그리고 토지를 측량하는 직업인들의 주보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다. 예전에는 구마(驅魔) 기도 안에 토마스 사도의 이름을 불렀고, 눈병을 앓는 사람을 축복할 때 토마스 사도의 전구를 청하였다. 교회는 그의 축일을 7월 3일에 지낸다.
-장인산 베르나르도 신부(강서동 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