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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실(책 읽기)

박금아, 무화과가 익는 밤

작성자맹문재|작성시간21.06.04|조회수83 목록 댓글 0

 

 

박금아 수필가의 첫 수필집 『무화과가 익는 밤』(푸른사상 산문선 38). 대상애를 지향하는 가족애의 의의와 가치를 견고한 구성으로 제시해주고, 토착어와 일상어의 활용으로 관념성을 극복하고, 감각적인 묘사로 밀도 높은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다. 시적 언어와 탄탄한 문장으로 가족애를 재발견하고 대상애로 확장하는 박금아의 수필들은 깊은 울림을 준다. 2021년 5월 30일 간행.

 

■ 저자 소개

남쪽 바다의 작은 섬에서 어부의 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부모를 떠나 뭍으로 나왔다. 진주 삼현여고를 거쳐 숙명여자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한 뒤 삼성그룹 사보 기자로 일했다. 삼십여 년을 전업주부로 살면서 좌충우돌한 시간을 버텨내느라 글을 썼다. 우연한 기회에 아버지의 이야기를 쓴 글로 해양문학상을 받았고, 201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수필 「조율사」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대문학상(2017), 천강문학상(2019)을 수상했고, 201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창작기금 수혜작가로 선정되었다.

(E-mail_ ilovelucy@hanmail.net)

 

■ 작가의 말 중에서

 

시간을 더듬어 다시 걸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십 년을 머물렀다. 발목을 잡고 불화한 시간과 드잡이했다. 문장을 퇴고하는 일은 걸어온 발걸음을 수정하는 일이었다. 길이 문장이 되는 체험이었다.

 

수필가라는 이름을 얻고 6년. 지면에 발표했던 글들을 모았다. 덜컥 겁이 났다. 지극히 사적인, 사소한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될까. 내 글은 편편이 울퉁불퉁했고 더군다나 울음투성이였다. 부끄러웠다. 출판사에 마지막 원고를 넘기기로 했던 날, 남해로 가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외딴 바닷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노을이 내리고 있었다. 포구는 밀물로 출렁이며 구멍 숭숭한 개펄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펄에 박혀 있던 목선 한 척이 떠올랐다. 가슴 언저리가 만져졌다. 내 썰물의 시간, 밀물이 되어 들어와 다독여준 손길들을 생각했다.

 

그 들물의 기억을 담으려고 했다.

 

■ 작품 세계

박금아의 수필들은 대상애를 지향하는 가족애의 의의와 가치를 여실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가족애는 수많은 작가가 추구해온 주제이지만, 박금아의 작품들은 견고한 구성(plot)으로 구체성을 확보해 깊은 울림을 준다. 또한 토착어와 일상어의 활용으로 관념성을 극복하고, 감각적인 묘사로 밀도 높은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다. (중략)

현대사회에는 “가족은 단순히 언어에 의해서 포착될 수 있는 단일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회적 단위들이 어느 정도는 가족으로 생각될 수 있”다.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 퇴색하는 대신 상징적인 가족의 개념이 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단체나 집단에서 구성원들 서로가 가족의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 그 모습이다. 구성원들 사이에 공동체 의식과 연대감이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박금아의 수필들은 이와 같은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가족주의의 울타리를 넘는 의지와 윤리로 자신과 인연이 된 존재들을 품는다. 주체성을 가지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가족애와 대상애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작품들에서 소개되는 가족은 일반명사가 아니라 특별한 지시대명사로 각인된다. (중략)

박금아는 구체적인 어휘와 감각적인 문체와 견고한 구성을 통해 가족애와 대상애의 화음을 이룬다. 가족 사랑을 개인적인 영역으로 침잠시키지 않고 공유의 가치로 끌어올린 것이다. 그리하여 박금아의 가족애는 현대사회의 물질주의와 인간 소외에 맞서는 친밀감과 역동성을 띤다.

- 맹문재(문학평론가, 안양대 교수)

 

■ 추천의 글

박금아의 수필을 읽노라면, 그 메시지에 몰입하게 한다. 그가 짓는 인간 존재의 문제들이 투명하고 선명하다. 그의 수필은 지적 언어의 만찬에 초대된 손님과도 같이 때론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하지만, 잠시 숨을 고르노라면 변환의 기술, 그 상징적 의미와 함축 그리고 해석의 진중함에 숨 막히게 한다. 직관의 통찰이요, 창조적 공법일 것이다. 한마디로 그의 작품은 미적 감수성과 함께 존재론적 사유와 인문학적 성찰이 빛난다.

- 한상렬(수필가, 문학평론가)

 

박금아의 글은 소설 같고 시 같아서 더욱 수필 같은 수필이다. 소설 같은 이야기가 있고 시처럼 이미지가 넘쳐나서 더욱 수필인 수필이다. 과거를 복원하는 능력은 능숙한 소설가에 닿고 사물을 자연의 움직임에 비유하는 감각은 빼어난 시인에 닿는다. ‘들려주기’로 ‘보여주기’로, 우리네 삶이 이렇듯 많고많은 사연을 쌓아오면서 이렇듯 자잘한 정들을 서로 나눠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니, 이는 한국 수필이 모처럼 크게 ‘쏘아주는’ 한 바구니 선물이다.

- 박덕규(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

 

■ 작품 속으로

 

잘 때가 되어 할머니 집으로 올 때면 무화과나무 아래로 돌아왔다. 아그데아그데 열린 무화과를 올려다보기만 해도 마구간의 어린 말처럼 “어무이예에!” 소리가 나왔다. 그러면 나무는 가지를 열고 이파리를 젖혀 무화과를 내밀었다. 금방이라도 누런 젖이 뚝뚝 떨어져 내릴 것 같았다. 발꿈치를 들고 무화과를 향해 손을 뻗으면 향란이네 고양이도 허기를 느꼈던지 내 기척에 귀를 쫑긋거리며 앞발을 돋우었다. “야옹!” 소리에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쥐들이 몰려나와 기겁을 하며 달아났다. 소스라쳐 놀라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젖물이 흥건할 무화과를 한 번도 손대보지 못한 채 그곳을 달음박질쳐 나왔다.

(「무화과가 익는 밤」, 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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