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풍회 회원들의 산문을 모은 숙맥 14집 『먼 바다의 기억』(푸른사상). 각계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11명의 원로 학자들이 각자의 인생을 관조하며 쓴 수필, 수기, 수상, 예술평론, 논평 등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날의 인연과 추억을 회상하고, 늙음과 죽음에 대해서 사색하는 등 석학들의 날카로운 지성과 솔직 담백한 인품을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다. 2021년 11월 15일 간행.
■ 저자 소개(전공 및 소속)
김명렬 영문학 서울대학교
김상태 국문학 이화여자대학교
김재은 발달심리학 이화여자대학교
김학주 중국고전문학 서울대학교
이상옥 영미문학 서울대학교
이상일 독문학 성균관대학교
이익섭 국어학 서울대학교
정진홍 종교학 서울대학교
곽광수 불문학 서울대학교
김경동 사회학 서울대학교
정재서 중국고전문학 이화여자대학교
■ 책머리에 중에서
지금은 인간과 기계가 어울려 살아야 하는 AI 시대다. 모든 것을 융합하고 통섭하는 우뇌 작용의 하이 콘셉트(high concept)의 시대를 살면서 심지어 자연과학과 기술공학 분야의 글 잘 쓰는 문장가도 함께 참여하는 정말 바보 같은 문집이면 더 풍족한 글쓰기가 되지 싶기도 하다. 거기에서 인생의 달관이 은은하게 비쳐 나오는 게 참으로 아름다운 저녁노을의 풍류일 것 같아서다.
이번의 『숙맥』 14호에도 동인 열한 분이 참여하여 각자의 특색이 잘 드러나는 수필, 수기, 수상, 예술평론, 문학평론, 회고록, 시사논평, 그리고 심지어 “잡상” 등 각양각색의 내용으로 흥미로운 제목을 달아서 글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이 글쓰기 동호회의 글모음은 다양성의 향취가 물씬 풍겨나서 누구나 마음 편하게 접근할 수 있고 흥미를 자극하여 어두운 세월 속에서 그나마 힐링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은 게 특색이라 뽐내도 좋을 것 같다. (김경동)
■ 책 속으로
이 세상의 물건이나 일 중에는 나에게 불편하거나 좋지 않은 것들은 누구에게나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모두 내 마음에 따라서 편하고 좋은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내 마음을 바꾸는 일은 내 뜻대로 간단히 되는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어 지니지를 못한다. 왜 그럴까? 우리는 묵자의 “편안한 집이 없어서 편치 않은 게 아니라 내게 편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며, 충분한 재물이 없어서 만족치 못하는 게 아니라 내게 만족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고 한 말을 되새겨 보며 내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겠다.
(김학주, 「나의 마음」, 101쪽)
김유정(金裕貞)의 단편 「동백꽃」에는 그 꽃의 색깔이 노랗다는 묘사가 두 번 나온다. “굵은 바윗돌 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리었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이것을 두고 동백꽃의 색깔이 어떻게 노란색일 수 있느냐고 한동안 시비가 일었던 적이 있다. 그러다가 나중 이 소설의 ‘동백’은 표준어로 생강나무를 가리키는 강원도 사투리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 시비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이익섭, 「‘버덩’과 ‘내닫다’ 그리고 ‘퇴’」, 199쪽)
국민소득이 3만 불로 향하고 한류가 세계를 석권한다 할지라도 자살률 1위의 국가라면 결코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나라가 아니다. 금수강산, 한강의 기적, IT 강국, K-팝 등 그 모든 찬사도 죽음 앞에서는 의미가 없으며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한국의 존재도 빛이 바랜다. 자살률 1위라는 이 불행한 현실은 젊은 날의 ‘아픔’이나 누구나 겪는 삶의 ‘무게’ 정도로 진단하고 치유할 수 있는 단계를 훨씬 벗어났다. 무명의 한 젊은 주부와 최진실 씨의 비극적인 사례에서 보았듯이 그것은 설사 개인의 ‘아픔’이나 ‘무게’에서 출발했을지라도 궁극적으로 이 사회가, 우리가 껴안고 책임질 일이었다. 황지우의 시구를 넓게 인유하자면 우리 모두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는 마음가짐이 절실한 시점인 것이다.
(정재서, 「타나토스의 시대를 어찌할 것인가?」, 345~3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