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사상』 2026년 여름호(통권 56호)가 ‘시와 전쟁’을 특집으로 출간되었다. 강경아, 고인환, 김수우, 김청우, 김흥기, 문경수, 박관서, 박이정, 유종, 이동순, 이영숙, 하상일, 허유미, 고명철 작가가 참여했다.
신작 시로는 김수, 김종숙, 문태준, 박한, 수완, 안준철, 여국현, 유희주, 윤석정, 이상국, 조이경, 천양희 시인의 작품이 소개되었고, 박소명의 신작 동시, 김영란의 신작 시조, 조미희의 신작 산문이 지면을 장식했다. 김준태 시인은 기획 연재인 ‘시 70년 오디세이’에서 베트남 작가 반레의 문학과 사상을 다루었고, ‘젊은 평론가가 읽는 오늘의 시’에서는 양순모 평론가가 조혜은 시인과 장석원 시인의 작품을 통해 ‘오늘의 시’의 의미를 물었다. ‘김남주 읽기’에서는 시인의 동생 김덕종과 맹문재 시인의 대담 및 『김남주 산문 전집』에 수록되지 않은 김남주 시인이 김하늬 시집에 붙인 해설을 발굴해서 실었다.
‘푸른사상 신인문학상’(시 부문)에는 문현 시인이 당선되었다. 심사를 맡은 공광규, 맹문재 시인은 독자에게 지적이면서 서정적 자극을 주는 유쾌한 상상력을 높이 평가했다.
2026년 5월 30일 간행.
■ 목 차
특 집 | 시와 전쟁
강경아_ 끊어진 철길 위에 피어난 시(詩), 이음의 은유
고인환_ 전쟁을 대하는 시인의 자세
김수우_ 총성과 운율 사이에서
김청우_ 산란(散亂)하는 빛과 촉진(觸診)하는 새벽
김흥기_ 6·25전쟁과 김규동의 「나비와 광장」
문경수_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스스로에게 고함
박관서_ 전쟁의 종언으로서의 시
박이정_ 전쟁론자들은 총알로 말하고 시인은 펜으로 말한다
유 종_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동순_ 어린이의 웃음이 평화다
이영숙_ 시가 할 일이 많다
하상일_ 민족 분단의 현실을 담은 우리 시의 첫 자리
허유미_ 끝까지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고명철_ [총론] 반전·평화를 위한 시의 도덕적 투쟁
신작 시
김 수_ 수평이 선다
김종숙_ 새벽에 당신
문태준_ 오늘은 겹물망초가 피고
박 한_ 쌍화차를 끓인다
수 완_ 만남
안준철_ 그 꽃
여국현_ 말린 복어알
유희주_ 벌목 사유(思惟)
윤석정_ 목소리가 사라진 사람들
이상국_ 나는 어떻게 나무 숭배자가 되었나
조이경_ 사월의 귀
천양희_ 밥에 대하여
신작 동시
박소명_ 칡넝쿨
신작 시조
김영란_ 그 길의 이름
신작 산문
조미희_ 길도 마음도 서툴러도 괜찮아
기획 연재
김준태_ [시 70년 오디세이(33)] 베트남 시인 반레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양순모_ [젊은 평론가가 읽는 오늘의 시(9)] 부모 된 자의 오늘과 시
푸른사상 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
문 현_ 동행 외 9편
당선 소감 및 심사평
김남주 읽기(6)
[대담] 김덕종·맹문재_ 남주 형은 정의의 길을 걸었습니다
[발굴 자료] 김남주_ 현실과의 대결 의지와 저항 의식의 투철함
■ 책 속으로
이제 문학의 실천적 연대로 군사분계선을 넘어설 때다. 세계 평화의 진정한 안전지대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강경아, 「끊어진 철길 위에 피어난 시(詩), 이음의 은유」, 9쪽)
시인의 ‘목소리’는 ‘살인자’와 직접 대결하지 않고, ‘군인의 귀’를 ‘무너뜨’려 ‘공허한 죽음’의 세계로 이끈다. ‘식민의 군인들’은 시의 ‘목소리’를 피해 그 어디로도 ‘달아날 수’ 없다. (고인환, 「전쟁을 대하는 시인의 자세」, 12쪽)
시는 전쟁의 얼굴, 괴물 같은 그 표정을 마주보는, 증언하는 눈동자이다. 그때 시의 빗방울은 모든 틈을 적시는, 모든 가능성을 꽃피우는 운율이 된다. 시는 생명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김수우, 「총성과 운율 사이에서」, 18쪽)
시의 오롯한 자기-증명은 재난 상황에서 비로소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적지 않은 시인들이 종군(從軍)했고, 그 불가능성을 뚫고 어눌하게나마, 마치 돌탑을 쌓듯 하나하나 말을 보탠 것이다. 시적 언어를. (김청우, 「산란(散亂)하는 빛과 촉진(觸診)하는 새벽」, 19쪽)
김규동 시인의 「나비와 광장」은 참혹한 전쟁과 기계 문명이라는 거대한 집단 폭력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개인이 느끼는 불안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비극적 의지를 다룬 작품이다. (김흥기, 「6·25전쟁과 김규동의 「나비와 광장」」, 26쪽)
도대체가 이 전쟁통에 시인은 무얼 할 수 있나. 시로 무얼 실현할 것인가. 사람이 죽거나 죽어가는데. 나는 뾰족한 말 한마디를 못 보탠다. 몇 발 물러선다. 무력해진다. (중략) 멈출 줄 모르는 이 전쟁 앞에서 시란 무엇인가. 시인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쓸 수 있는가. (문경수,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스스로에게 고함」, 29~30쪽)
이 지점에서 시는 저항한다. 시는 숫자를 이름으로 되돌리고, 통계를 얼굴로 복원한다. 파괴된 도시를 ‘목표 달성’이 아니라 ‘사라진 기억의 집합’으로 다시 읽는다. 따라서 시적 비판은 단순한 정치적 반대가 아니라, 존재론적 복권의 시도다. 인간을 다시 인간으로 부르는 행위가 곧바로 시의 윤리이자 시의 언어이다. (박관서, 「전쟁의 종언으로서의 시」, 33쪽)
시인은 평화를 바라는 세계시민과 따뜻한 심장을 나누며 살려고 시(詩)를 쓴다. 숨 쉴 때마다 전쟁에 휩싸여 피 울음 흘리는 세계의 공기가 몸을 훑으며 들락거리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총으로 말하는 대화를 비판하는 시가 세계 전쟁 토양 위 여기저기서 피어나고 있다. (박이정, 「전쟁론자들은 총알로 말하고 시인은 펜으로 말한다」, 37~38쪽)
빨치산들이 지리산에서 죽어가며 부른 어머니, 이 마지막 부르짖음은 인간으로서 짧은 생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혁명가의 숭고한 의례 같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목숨을 부지하는 최소한의 권리조차 상실해 버린, 남과 북에서 고립되어 섬처럼 외롭고 절망적이었을 그들의 영원하고 소박한 안식처였을까. (유종,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42쪽)
한국전쟁 직후 초토 위에서 마주한 것은 폐허의 잿더미와 판잣집,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었다. 판잣집 유리 딱지에 아이들 얼굴이 걸려 있다. 시인은 그 빛을 감히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그의 뒤를 울상이 된 그림자가 따랐다. 그림자는 죄책감이고 무력감이고 살아남은 어른의 부끄러움이었다. (이동순, 「어린이의 웃음이 평화다」, 45쪽)
특히 참전문학에서 날줄을 가시화하고 수많은 씨줄을 촘촘히 엮어 ‘전쟁터라는 하나의 세계’를 ‘재현(Representation)’하는 것이 소설이라면, 날줄을 뚫고 나오는 ‘송곳’ 같은, 훼손된 육체와 처참한 현장으로서의 씨줄을 그대로 독자의 눈앞에 ‘제시(Presentation)’하는 것은 시이다. 그러므로 소설은 설명과 인과로 빚은 서사적 언어이고, 시는 증언과 비명으로 빚은 육체적 언어에 가깝다. 전장을 이해하는 것과 전장을 느끼는 것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영숙, 「시가 할 일이 많다」, 50쪽)
시인들의 정치적 상상력은 분단국가로서의 상처와 고통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는 토대 위에서 더욱 현실 지향적인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민족 분단의 모순적 현실을 상징적으로 노래한 첫 자리인 박봉우의 「휴전선」을 지금 다시 중요하게 떠올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상일, 「민족 분단의 현실을 담은 우리 시의 첫 자리」, 59~60쪽)
시는 전쟁을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전쟁이 인간의 언어를 파괴하는 순간, 시는 그 파편들을 주워 다시 말이 되게 한다. 전쟁이 세계를 캄캄하게 만들 때, 시는 그 어둠의 결을 더듬으며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무엇을 잃지 말아야 하는지 묻는다. (허유미, 「끝까지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63쪽)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하는 병사는 이렇게 세계악(世界惡)의 사위에서도 세계를 사로잡는 도덕적 투쟁의 마음과 그 언어를 품고 있다. 전쟁에 맞서는 시인의 위대한 도덕적 투쟁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고명철, 「반전·평화를 위한 시의 도덕적 투쟁」, 70쪽)
월맹군 정규군이었던 시인 반레! 한국 청룡부대 병사였던 시인 김준태. 1960년대 그 시절 나와 총칼을 마주 겨눈 반레는 한국의 먼 하늘을 바라본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맑다. 그가 잠시 멀리 두고 온 베트남의 하늘이 마치 한국의 하늘과 겹쳐지는 느낌이다. (김준태, 「베트남 시인 반레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135쪽)
현재화된 과거에 사로잡혀, 내일을 없애는 방식으로 어제에 복수하고, 오늘-현재를 마련하는 일에 집중했다면, 이제 헤어져야 한다. 미래는 미래대로, 과거는 과거대로, 부디 그럴 수 있도록 우리 거듭해 헤어져야 한다. 물론 헤어지는 과정은 항상 우리를 가장 아프게 만드는 방식일 수밖에 없겠지만, 오늘다운 오늘을 위해서라면 우리 헤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의 시’는 부모 된 자들의 시여야 할 것 같다. 그들이야말로 분명한 과거와 미래의 한 가운데에서 속죄와 복수의 열망을 고통스레 겪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양순모, 「부모 된 자의 오늘과 시」, 156쪽)
한 번은 면회를 가니까 형이 『루카치 전집』을 전해주면서 책을 보라고 말했어요. 일본어로 된 책이었어요. 내가 일본어를 읽을 수 없는데, 형이 그 말을 했다는 것은 분명 무엇인가 있다는 암시로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집에 가져와서 아무리 살펴봐도 특별한 것을 발견할 수 없었어요. 밑줄 친 곳도 없었어요. 근동에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책을 들고 가서 도움을 받으려고도 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책등에 무엇인가 감추어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책등을 뜯었더니 거기에 「학살」 등 7편의 시가 있었어요. ([대담] 김정길·맹문재, 「남주 형은 정의의 길을 걸었습니다」, 1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