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이 시리즈물은 초창기 가스가전영업부의 판매과장님 이셨던 박영선님의 연재물임을 밝힙니다*
독자여러분들의 열화가 지나쳐, 일대 '환호'로 바뀌고 있음에 감사드리며, 옛날 이야기 보따리를 계속 풀어볼까 합니다.
<에피소드8>
아직 85년도 얘기를 반도 못했는데 87년도 멤버들이 자꾸 '나는 언제 나오냐'고 독촉하는 바람에 좀 건너 뛰어 87년도 얘기를 한 번 하고 되돌아갈까 한다. / 87년도에 당시 김대인 이사님이 처음으로 기계사업부를 담당하게 되시어, '1부 1과' 였던 본사 조직이 '1부 2과'로 확대되면서부터 동양매직은 그야말로 대폭발(빅뱅)을 하게 된다./ 초대 사업부장이셨던 김종수 부장님은 총무부장으로 가게 되셨고, 김대인 이사님은,1982년도에 현재현 당시 시멘트 사장님이 이양구 회장님의 바톤을 이어 동양시멘트를 총괄하신 이래 '최초의 중역인사'로 이사가 되시면서 매직을 총괄하게 된 것이었다./ 그만큼 경영층의 절대적 지지와 신임속에 책임을 맡게되신 김이사님 - 당시 년부력강한 40대 후반의 패기로 '신규사업'을 휘몰아 추진하시기 시작했으니........../내 파일 모음속의 '조직도표'와 '인원현황'이 하루게 다르게 새롭게 바뀌어져야만 했다./나는 1987년 5월 1일자로 퇴계로 직매장 소장에서 본사 판매과장으로 전보 발령을 받았고. 내 퇴계로 소장 후임은 성기창오비가 신임소장으로 발령 받았다./ 처음으로 하명받은 임무는 '직매장 확대 설치'와 '본사 인원 확대'였다./ 사무실은 커지는 조직에 맞추어 도렴동 정우빌딩 8,9층에서 아래 위치한 4층으로 비상계획부와 매직(당시 기계사업부)만 '달랑' 확대 이전하여 자리를 잡았다./맨 먼저 판매과와 영업기획과로 2과가 설치되었는데,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은 다 이유가 있었으니..../ 지금처럼 매직만 독립법인체로 떨어져 나와 있다면 당연히 '영업과', '기획과'로 이름 지어져야 하는데.../ 이미 시멘트 조직에 '영업과'와 '기획과'가 있으니 편법으로 그렇게 이름 지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김대인 이사님이 처음 맡으실 때 본사와 매장 두 군데를 합쳐 총 인원이 단 17명이었다.( 이것은 2007년 년말 송년회때 김대인 이사님이 재확인해 주셔서 너무나 정확한 숫자임.)/그도 그럴 것이 1986년 한 해 동안 매장 세군데밖에 개설하지 않았으니까...(2월: 압구정, 11월: 퇴계로, 서교동)/그런데 87년도말에 몇명으로 늘어났는가?( 정확한 자료가 아닌 기억으로만 어림잡아 확실하지 않으나) 100명이 넘었다. 바로 이들이 실질적인 매직 초대 멤버들인 것이다. 그러기에 85, 86년은 잉태기요, 87년을 실질적인 매직의 탄생기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여기서 부터 진진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것이다.(9편에 계속)아래 사진에 나오는 멤버들이 바로 그들이다.//
아, 컴맹이 에피소드(8)에 사진 올리느라 정말 무진 애썼다. / 에피소드(8)에 나오는 사진 설명을 덧붙인다./
이 사진은 1988년 7월 9일에 한강고수부지에서 우리 초창기 멤버들이 모여 가졌던 조촐한 체육대회 겸 단합모임 사진이다./
성필연 타포(타스크 포스라서 내가 붙인 별명이다.)가 주축이 되고, 젊디 젊은 아랫 동포들이 주관이 되어 무작정 장마철 여름에 모여 체육대회를 열었다./갑작스럽게 "모여 축구한 번 합시다." 해서 모인 것이다/ 토요일 오후라고 기억되는데 ..../
사진을 자세히 보면, 김대인 상무님이 일장 연설을 하고 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갑자기 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준비도 안 되었지만,... 어차피 모였으니 즐겁게 잘 놀자. 가을에 아주 준비를 잘 해서 하루 날 잡아서 본격적으로 잘 행사를 치러 보자.(필자 주: 이 말씀은 그대로 실현되어 그 해 10월 9일 남이섬에서 야유회를 성대하게 가진다. 그 때의 사진은 더욱 멋지게 조작해서 추후 에피소드 연재물에 올리도록 하겠음) 우리 동양시멘트 가스 가전 사업본부는 이제 도약( 영어로 '테이크 오프')의 단계로 올라 서고 있다. 우리 모두 초창기 멤버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청춘을 다 바쳐 열심히 잘 해 보자! "운운............./
그 날 내가 사회를 보면서 전혀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축구, 족구도 하고, 게임으로 '남자다섯, 여자 하나! "소리치면 우루루 껴안고 난리 치며 놀았다. 장마철이라 중간에 비가내려서 반포대교 밑으로 피해서 온갖 재롱잔치를 펼쳤다./나와라 게임(으쌰 으쌰 서교동 나와라, 반포나와라)하다가 틀리면 공개석상으로 나와 벌칙으로 온갖 재롱을 다 떨었는데....(윤재동 선수는 이 때에도 재롱을 많이 피었어요.)/ 사진에 나오는 장면은 엉덩이로 오헌영이라는 글자를 쓰고 계시는 오부쬬의 모습이다./ 오헌영 부장님은 참으로 소탈하시게 직원 사기앙양을 위해 온 몸을 내던지신 분이었고 지금도 여전하시다./참으로 일할때에는 열심히 하고 놀 때에도 열심히 잘 놀았던 우리 팀이었다./각 매장 소장들이 자기 매장 소속 팀원들을 뒤에 한 줄로 앉히고 맨 앞에 앉아 폼들을 잡고 있고, 박영선이는 마이크 들고 꿱꿱 소리 지르고 있다./여직원들이 잘 나오게 뒤쪽에서 앵글을 잡았으면 더 좋았을걸..../그때 부산 우 삼식소장이 부산에 있느라 이렇다니까........./앞 줄 좌측부터, 광고쟁이 한 삼,(가락동)김수환, (퇴계로)이광은.(그랑프리)엄정용,(A/S)류형기. (서교동)송성인,(반포)전광수, (여의도)여용수,(연신내)류성현등 여러 소장이 보인다.맨 뒤에서 노새 이인덕씨가 사진 찍는 동료를 향해 윙크하고 있다. 안 보인다고요?돋보기로 보세요. 아, 그래도 흉 안 보는 군번들 되었어요.//(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