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6. “Edgar”
1. 시작하며
사실 칼럼 연재를 다시 맡게 되면서, ‘이번에는 덱 칼럼만 써야지’라고 생각했었어요. 칼럼 시즌2는 이전 칼럼들보다 분량을 적게 하기로 하다보니 긴 잡담을 쓸수가 없더군요. 하지만 칼럼 연재도 이걸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고 하니, 그동안 안쓰고 남겨뒀던 잡스러운 이야기들을 써보겠습니다. 아마도 마지막 칼럼이어서, 분량이 특별히 깁니다.
이번 칼럼의 주제는 ‘매직과 에드거 앨런 포’입니다. 사실 매직 더 개더링의 Flavor Text에는 유명한 영문학 고전(7판 Castle은 이름을 말할 수 없다는 그 스코틀랜드 연극을 인용하고 있고, M11의 Diminish는 Alice’s Adventure in Wonderland를 인용하고 있죠) 들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이런것들만 모아서 칼럼을 쓸까 했는데, 분량문제로 이번엔 Edgar Allan Poe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시의 제목과 한글 번역은 국내에 출판된 Poe의 작품집의 번역을 따릅니다. 사실 Raven은 갈가마귀가 아니고, Haunted Palace는 귀신들린 궁전보다 나은 번역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제가 다시 번역해버리면 이미 Poe의 작품을 한국어로 읽어본 독자들에게 혼란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2. Edgar Allan Poe가 누군데-_-?
사실 매직 더 개더링 유저들은 연령대가 높기 때문에 굳이 이런 인물설명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역사 인물 이름만 나오면 ‘그놈은 누구 서번트야?’라는 분도 계시고 하니,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Edgar Allan Poe(에드거 앨런 포, 이하 ‘Poe’라고만 씁니다)는 1809. 1. 19 년 출생하여 검은 고양이, 어셔 가의 몰락 등 유명한 공포소설들과 모르그가의 살인 등 원숭이무쌍소설 추리소설, 그리고 애너벨 리 등 아름다운 시들을 남긴 작가입니다.
검은 고양이의 임팩트가 워낙 강해서, 한국에서는 흔히 괴기문학가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기괴한 소설만 쓴 것은 아니고 다양한 장르의 시와 소설을 쓴 작가입니다. 독특한 소재를 담아내면서도 아름다운 문체로 글을 쓰는 것이 특징이지만..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추리소설 작가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_- Poe보다 몇십년 늦게 태어난 톨스토이는 고전이라고, 거장이라고, 쩐다고 그러면서 Poe는 현대 펄프픽션 작가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해가 안갈때가 많지만.. 뭐 어쩌겠어요. 일단 수능에 안나오는 작가인게 치명적입니다. 수능에 안나오면 다 듣보잡. 셧 업 앤 테잌 마 오엠알 답안지. ㅇㅋ?
3. Edgar Allan Poe의 작품이 등장하는 카드들
(1) Phantom Monster
Edgar Allan Poe의 작품이 가장 먼저 등장한 카드는 Alpha의 Phantom Monster와 Frozen Shade입니다. Phantom Monster는 별다른 개성없는 3/3 비행생물이지만, Poe의 명작인 The Haunted Palace(귀신들린 궁전)의 일부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The Haunted Palace의 전문은 http://en.wikisource.org/wiki/The_Works_of_the_Late_Edgar_Allan_Poe/Volume_2/The_Haunted_Palace 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The Haunted Palace의 이 구절에 감동한 시인 Charles Baudelaire(샤를 보들레르, ‘악의 꽃’으로 유명한 시인이자 Edgar Allan Poe문학 번역자)는 그의 시 L'Héautontimorouménos(스스로를 해치는 자)에서 이 구절을 일부 인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구절인 ‘— Un de ces grands abandonnés Au rire éternel condamnés Et qui ne peuvent plus sourire!’ 부분)
(2) Frozen Shade
별 이유도 없이 기본판에서 퇴출당한 Frozen Shade입니다. 5판 일러스트가 더 예쁘니 5판으로 올리겠습니다. (일러스트가 왠지 유령이 셀카찍으려다 실패한 듯한 구도지만..) Poe의 Silence(침묵)의 앞부분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Silence의 전문은 http://en.wikisource.org/wiki/The_Works_of_the_Late_Edgar_Allan_Poe/Volume_2/Silence 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3) Urborg
Planar Chaos에서 나온 그 Urborg말고, Legends판 Urborg입니다. Urborg는 “The City in the Sea”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전문은 http://en.wikisource.org/wiki/The_Works_of_the_Late_Edgar_Allan_Poe/Volume_2/The_City_in_the_Sea 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4) Marsh Viper (5판)
Marsh Viper는 5판에서만 Poe의 시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The Conqueror Wurm의 전문은 http://en.wikisource.org/wiki/The_Works_of_the_Late_Edgar_Allan_Poe/Volume_2/The_Conqueror_Worm 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5) Death Pits of Rath (8판, 9판)
Death Pits of Rath는 8판과 9판에서 Poe의 단편소설인 ‘The Pit and the Pendulum(구덩이와 추)’의 일부분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구덩이와 추는 이단심문을 당하는 주인공이 함정 속에서 고통받는 내용인데..짧게 설명하자면 19세기판 쏘우입니다. -_- 자넨 가톨릭을 소중히 하지 않았지! 게임을 시작한다! (이런걸 쓰니까 수능에 못나오고..) 원작의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카드의 느낌이 잘 어울립니다.
원문은 http://en.wikisource.org/wiki/The_Works_of_the_Late_Edgar_Allan_Poe/Volume_1/The_Pit_and_the_Pendulum 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위 소설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Mirage의 Razor Pendulum의 일러스트는 Poe의 구덩이와 추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한 팔과 양 다리만 묶여있는 남자가 추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모습이 완전히 똑같습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어떻게 탈출하는지는 안쓸께요)
4. 사실 이 얘기를 하려고 쓴 칼럼임.
사실 앞부분 얘기까지는 인트로였습니다. 오늘 칼럼의 주인공은 이니스트라드에 등장한 ‘금지령’(NaverNevermore)입니다. 고딕 호러풍 배경인 이니스트라드에서 뜬금없이 백색에 ‘금지령’이 등장한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분도 계시겠지만(사실 개인적으론 금지령보다 녹색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Parallel Lives)가 더 뜬금없어보여염), 사실 ‘Nevermore’만큼 이니스트라드와 어울리는 카드도 없습니다. Poe의 유명한 시, ‘갈가마귀(The Raven)’에서 나온 유명한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뭔가 까마귀가 나왔을 때 주변 양키친구가 Nevermore드립을 치면 여기서 나온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전문은 http://en.wikisource.org/wiki/The_Raven_(1884) 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친절하게 삽화까지 들어가있네요. 19세기 라노벨
볼때마다 네이버가 떠올라서 일부러 네이버에서 퍼온 이 시에 대한 짤막한 해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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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폭풍우가 치는 밤에 창문을 통해 쉴 곳을 찾아 갈가마귀 한 마리 날아오는데 갈가마귀는 어떤 질문에도 “nevermore”(더 이상은 없어, 혹은 이젠 끝이야 등등으로 번역된다) 라는 대답밖에 못한다. 그래도 청년은 계속 물을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내 연인이 다시는 이 보랏빛 쿠션에 기대앉지 못하겠지? – nevermore 슬픔을 고치는 향이란 게 있을까? 나에게 말해줘 – nevermore 슬픔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이 가련한 영혼에게 말해 주오. 저 멀리 에덴에서도 성스러운 소녀를 껴안을는지. 세상에 둘도 없이 빛나는 소녀를 – nevermore |
도무지 삘이 안오는 현대 매덕을 위해, 현대적으로 설명해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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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폭풍우가 치는 수요일 밤에 마침 아이템도 못줍고 튕겨서 GM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청년은 GM이 어떤 질문에도 “그건 저희가 답변드릴 수 없는 사항입니다”라는 대답밖에 못한다는걸 알게 된다. 그래도 청년은 계속 물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내 아이템이 인벤에 들어올까? - 그건 저희가 답변드릴 수 없는 사항입니다 대기표없는 아즈샤라서버가 있을까? 나에게 말해줘 - 그건 저희가 답변드릴 수 없는 사항입니다 섭다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이 가련한 영혼에게 말해 주오. 저 멀리 아제로스에서 성스러운 암소를 껴안을는지. 세상에 둘도 없이 빛나는 드루를 - 그건 저희가 답변드릴 수 없는 사항입니다
..이제 이 시가 주는 처절한 슬픔과 안타까움이 좀 느껴지실겁니다. |
결국 고독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한 한 남자가 돌아오지 않는 답을 기다리며 처절하게 슬퍼하는 시인데..전체적인 분위기 자체가 불길하면서도 아름답고, 특히 구절 하나하나가 우아하기 때문에 영문학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5. 마치며
제가 설명했지만 참으로 기괴한 영문학 교실이었습니다. (다시 읽어보니..전 국어선생님이 되었으면 큰일났을 것 같아요) 어쩌면 이걸로 칼럼 시즌2가 끝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칼럼 17이 올라오면, 시즌3이 시작된거죠 뭐..-ㅅ-) 기괴한 칼럼을 읽어주신데 감사드리고..제발 2차가공해서 엔X위키에 올리지 말아주세요. -_- 가끔 제가 틀린 글을 써놓고 몇 년후쯤 깜짝 놀라는데, 틀린 원전을 인용해놓은 위키자료를 고치러 다시 들어가야하는 원작자의 기분은 정말 오묘해요.
덧붙여, 제목이 Poe가 아니라 Edgar인 이유는, Revised의 2쇄 버전 이름이 Edgar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제목은 막 지으니까요. ( -_-)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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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Eirene 작성시간 15.01.09 그동안 칼럼 넘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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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COP]이남형 작성시간 15.01.09 저 면도날 추는 쏘우에도 나오죠 ㅎㅎ 칼럼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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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충선 작성시간 15.01.10 그동안 재밌게 잘보았습니다.
아쉽군요
근데 오랑우탄 무쌍아니었.... -
작성자Rhox 작성시간 15.01.10 잘 봤습니다. 옛날에 마로가 한 팟캐스트 들어보면 이젠 기본판 카드들의 플레이버 텍스트도 세계관을 보여줘야 된다고 실제 세계에서의 인용은 저작권 인용도 있다고 해서 "잘" 안 한다 그러긴 하더군요. 아라비안 나이트는 아예 저작권 개념도 없이 특정 번역본을 다 배껴썼으니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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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군 작성시간 15.01.10 매직 관련 글중에 단연 카붐님의 칼럼이 제일 잼있고 유익했는데!
꼭 칼럼이 아니더라도 다른 내용으로 가끔 머리에 산소를 공급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