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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동기회

[스크랩] "동정"의 뜻을 아십니까?

작성자한재,|작성시간16.01.02|조회수244 목록 댓글 3

사전에 동정의 뜻은 여섯이나 나와 있다.그중 하나는 한자의 뜻이 없이 한글로만 나와 있는것을 보고 뜻을 옮겨 보면서 그 유래를 기록 하여 본다.(동정;한복에서,저고리 깃 위에 조붓하게 덧대는 흰 헌겊 오리)한국의 많은 사람은 그 유래를 모르고 한복의 깃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몰라도 생활의 불편함을 모르기 때문에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나는 이글을 적는 이유는 나의 조상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 글의 유래를 기록 하고져 한다.
문익점선생이 1363년3월에 서장관으로 원나라를 갔다 올때,붓뚜껑 속에 목화씨 10낱을 가지고 온다.장인인 鄭天益할아버지께 5낱을 드리니,그 이유는 당시로는 금수품이라 안전 도모에도 큰 역활을 한 것으로 사료 된다,이유는 고려 공민왕 12년에 할아버지께서는 판부사로써 致仕하실때 이므로 상당한 벼슬과 세력가 이기에 아무나 함부로 대할수없는 분이었기 때문이다.문선생이 재배한 5낱은 전부 죽고,할아버지께서 심은 5낱중 하나의 씨가 싹을 튀우니 그 열매의 씨가 공민왕 13년에 100낱이 되고,그후로 10년만에 고려 전체로 퍼졌다.
그후 원나라의 弘願대사가 그곳(할아버지가 계신 지금의 산청군 단성면 배양리)를 지나 가다가 목화가 만발한 할아버지의 목화밭을 보고서는 원나라에서나 볼수있는 것을 이곳 단성에서 보니 감읍하여 여러가지의 도움을 줬다.씨앗을 분리하는 "씨아"라는 기계를 창제했고,실을 뽑는 "물레"를 대사의 도움으로 만드시게 되었다.베짜는 기구는 삼베짜는 기구를 개선하여 새로운것을 만들어 그 "베틀"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후 10여년이 지난 후 온 나라에 퍼져서 온 백성이 솜옷과 무명옷을 입을수 있게되어 추위로 부터 해방 될수 있었으니 백성으로 부터 존경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그후 조선의 3대 임금 태종으로 부터 그공을 인정 받고 天자益자 할아버지께 晉陽君으로 봉하시고,시호를 文忠公이라 내려셨다.

12년 만에 사위인 文益漸선생은 典儀注簿로 복직할수 있었다.할아버지께서는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시니 백성들은 옷깃에 동정(東鄭)을 정성들여 달아,보은의 정과 조의를 표 하였다.동정이란 "東邦의 鄭天翼"이란 뜻이라고 전한다.
***이글은 고려사,太宗實錄,청계서원기,청계서원복원기,正敎堂記에서 발췌했슴***

우봉 이병도박사의 글을 옮기면서 마무리 하고져 한다.
"아,아! 선생의 애국애족의 높으신 정신과 일장득생의 면종으로 마침내 우리 민족의 의생활과 의류산업에 신기원을 세운 그 공훈이야 말로 겨레의 귀감과 횃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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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제일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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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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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한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1.02 "東邦의 鄭天翼"은 '. . . 鄭天益"의 오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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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한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1.02 감사하네.새해에는 자주 연락 함세그리고 이병도박사의 본관이 우봉이시고,그분의 호는 斗溪이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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