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란 무엇인가 ?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를 온지 얼마 안되어 에레베타에 나와 비슷한 노인이 타길래 나는 인사조로 고개를 좀 숙이니 이 양반은 반응이 없다. 기분이 좀 떨떠름해서 이 얘기를 아내에게 하니 바로 우리 아래층에 사는 노인으로서 몇년전에 상처를 하고 딸가족이 친정 아버지집으로 들어와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으며 군출신으로 매우 자세가 바르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고 한다. 몇년이 흘러 지금은 만나면 인사를 나누고 하는데 처음에는 우리보다 이사도 늦게 오고 나이도 비슷하니 오히려 자기가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게 도리가 아닌가 참 예의없는 양반이구나 했었다. 그런데 아내는 이런 경우에 ' 당신이 먼저 따뜻하게 말을 건네 보세요. 꼭 그쪽에서 먼저 하라는 법이 어디 있어요 ?' 한다.
바로 옆집 50대 초반의 젊은 아낙네도 한참동안 서로 마주쳐도 인사를 건네지 않고 서로 서먹서먹했는데 이 여자도 아내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근 사근 성격이 참 좋다고 하며 우리가 며칠 어디 여행을 가면 그 여자에게 신문을 부탁하고 간다는 것이다. 유난히 남의 안면에 좀 어려워 하며 서툰 사람이 있지 않느냐며 아마도 그런 성격인것 같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7층에 사는데 6층에 아까 이야기 한 그 노인의 딸 가족이 있는데 그 딸이나 그 아이들도 인사성이 밝아 나는 가끔 칭찬을 하는데 반면 5층의 애들 엄마는 참 친절하고 인사성도 밝은데 그 집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애들은 인사성이 없어서 마주쳐도 인사도 없이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해서 애미는 안 그런데 왜 애들은 저럴까 교육을 어떻게 하길래 저렇지 하는 생각을 한다.
이상의 내 집주위의 사소한 얘기를 좀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모든것이 나 위주의 얘기다. 아내의 말대로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내가 먼저 다가가서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 봤느냐는 것이다. 소위 말해서 내가 나이가 좀 더 되었다고 주위 사람들이 먼저 인사를 하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저께 조선일보의 주간리포트에서 예의에 대한 글이 있어 읽어보고 그 느낌을 몇마디 써 볼까 한다.
예의란 ' 예의를 지켜라 ' 고 말하는 순간 무례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예의란 무엇인가 ? 이 질문에 대한 답에도 세대차가 뚜렷이 드러난다고 한다. ' 아랫사람이든 윗사람이든 공평하게 대하는 태도 ' ' 성별 나이 직위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대하는것 ' ' 선을 지키는 것 '등이 2030 응답자의 답이고 반면 5060세대에선 ' 어른 공경 ' ' 인사 ' ' 예절 ' ' 공중 도덕 '등이 주요 키워드인데 ' 수직적 예의 '에서 ' 수평적 예의 '로 점차 예의의 결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유학에서 禮의 출발점은 ' 나 '인데 마치 타인을 향한 요구처럼 쓴다고 한다. 예는 나의 행동과 태도에 관한것. 자기수련. 수신에 관한것으로 타자와 공공성을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내가 적절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돌이켜 보는 것이다. 즉 외적 규범이 아니라 내적 훈련인데 오히려 자기수련의 의미를 잃으면서 상대 탓하는데 예의를 써 먹는다고 한다. 나이 지위등으로 예의를 따지는것은 논어에도 없는 것으로 타인과 한마음을 가지고 화합한다는 의미에서 어른이 아이를 보호하는것. 힘을 가진 자가 힘없는 사람을 보살피는 게 예의다. 반대로 아이가 어른에게, 힘 없는 자가 힘 가진 자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논리는 본뜻과 멀어진다는 것이다.
그저께 버스를 타고 가는데 나이 좀 든 사람이 탔는데 마스크가 코밑으로 내려 가는것을 보고 기사가 마이크로 ' 마스크를 좀 올려 써 주세요 ' 하고 거듭 이야기를 하니 이 양반이 ' 자꾸 내려 가는 걸 어떻게 해. 젊은 새끼가 말이 많아 ' 해서 분위기가 어색했는데 다행히 기사가 조용해져서 더 이상 말썽이 없었다. 그리고 지하철 노인석 앞에서 가끔 노인들이 젊은 사람이 노인석에 앉아 있다고 화를 내고 고함을 지르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십여년전 일본 출장을 다닐때 보면 일본에서는 나이 든 사람이 자리를 양보받을 생각도 안 하고 젊은이들도 양보 할 생각 자체를 안 하는것 같았다. 어느것이 옳은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거의 일본과 같아진것 같다. 가끔 젊은 사람이 일어서며 자리를 양보하려고 하면 나는 오히려 쑥스러워서 요즘은 아예 노인석 가까운데서 서 있다.
이젠 우리도 ' 나이는 벼슬이 아니다 '란 점. ' 나이 들이밀기 ' ' 반말 하기 '는 예절에서 금기사항이라는 걸 인식하고 생각과 행동을 고쳐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는데 내가 너무 앞서 가는 것 아닌가 ? 나이 먹은 양반들한테서 삿대질 당하는것 아닌지 모르겠다.
2020.7.20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