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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과 남이 장군

작성자변재환|작성시간11.08.05|조회수102 목록 댓글 1

남이섬과 남이 장군

 

발뒤꿈치가 아파서, 우리 아이가 복무하고 있는 국군청평병원에 진찰 받으러 갔다가, 본의 아니게 남이섬에 무려 7시간을 머물게 되었다. 진찰 약속은 오후 1시지만 따로 가면 돈도 들고 귀찮아서 출근하는 아이 차를 아내랑 함께 타고 갔다. 출근시간에 맞추어 아침 8시에 청평에 도착했다. 5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 남이섬에 갔다. 3시간 정도 보내기에 딱 적당한 거리와 볼거리다 싶었다. 옛날 기억을 더듬으면서 남이섬을 그의 한바뀌 다 돌았는데 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약속이 내일로 잡혀 있는데 담당의사와 자기가 헷갈려서 오늘로 잘못 알았다는 것이다. 빌어먹을! 아이 퇴근 시간인 오후 5시까지 장장 9시간을 보내야 할 판이었다. 비도 오락가락 하고 딱히 가볼 만한 곳도 없고, 결국 남이섬에서 놀다가기로 아내랑 합의를 봤다. 그래서 7시간을 남이섬에서 보낸 것이다. 덕분에 남이섬이라면 평생 다시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구석구석이 실컷 보고 왔다.

 

남이섬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여 년 전 귀국 직후 친구 가족이랑 하룻밤 보낸 적이 있다. 그때 머물렀던 그 방갈로, 그 장소를 아무리 찾으러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원래 기억력이 형편없는 놈이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를 수가 있나. 하기야 그때 같이 갔던 꼬마들이 지금 시집장가 갈 나이가 되었으니 잊어버릴 만도 하지만 남이섬 자체가 너무 많이 변한 것도 사실인 것 같다. 남이섬 개발 역사를 보니 내가 처음 갔던 80년대 말의 남이섬은 개발 초기 단계였다. 그때와 비교하면 천지개벽한 상태다.

 

날씨도 궂은데 사람들이 많이 왔더라. 외국인 중에서는 일본말 하는 사람보다 중국말 하는 사람이 더 많아보였다. 알다시피 '겨울연가(동계연가, Winter Sonata)'가 주테마다. 사진 찍고 난리다. 시설, 단장, 숲, 길, 건물디자인, 조각품, 식당, 음식가격, 주변환경, 교통편 등등 모두 좋았고 가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하지만 나는 이런 것들에 별로 관심이 없다. '겨울연가'란 드라마를 본 적도 없다. 그 유명한 메타세콰이어 숲길도 너무 짧아 실망이더라. 배용준이 이름과, 그가 '겨울연가'로 일본에서 인기를 얻어 돈을 많이 벌었다는 정도 알고 있을 뿐, 그 상대 여배우 이름도 몰라 아내에게 물어서 들었지만 또 잊어먹었다. 시설과 경치 구경은 나는 별로다. 혼자 마신 막걸리 맛은 좋았다. 다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두 가지 보고 왔다. 내가 관심 있게 본 그 두 곳은 정말 한 사람도 기웃거리지 않더라.

 

첫째가 남이 장군의 시비와 묘소의 비문이다. 중앙로 변에 있는 시비에는 그 유명한 남이 장군의 시가 새겨져 있었다. 웬만한 사람은 익히 다 알고 있는 시지만 나는 각별한 감회가 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남서방(우리 집안에 南씨 성을 가진 사위)을 처음 만나 즉석에서 암송하여 그 사람의 감동을 받아낸 시다. 아버지 생각났다. 한번 읊어보자.

 

白頭山石磨刀盡 頭滿江水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

백두산석마도진 두만강수음마무 남아이십미평국 후세수칭대장부

백두산 돌을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 물을 말을 먹여 없애리라. 사내 스무 살에 나라를 평화롭게 하지 못하였느니 어찌 후세들이 나를 대장부라 불러주겠나.

 

아버지 생각도 생각이지만, 사실 내 신세타령으로 나아갔다. 27세에 역적으로 몰려 죽었으니 이 시를 지을 때는 기껏 20대 중반 아니었겠나. 스무 살에 平國? 나이 60대 중반에 들어선 나는 平國은커녕 平家도 못하고 있으니, 대장부 좋아 하네, 뭣을 자르든지 해야지 사내라고 할 수 있나. 아 내 신세여! 의지부터가 나와는 다르다. 백두산 돌을 칼을 갈아 없앤다? 두만강 물을 말을 먹여 없앤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과장법을 썼달 수도 있지만 그 강인한 의지는 높이 살만하다. 한편으로는 너무 건방을 떨다보니 平國을 得國으로 살짝 바꾼 놈한테 역적으로 몰려 처참한 최후를 맞았을 거라고 자위하기도 했다.

 

남이 장군 시비는 큰길가에 있으니 지나가다가 슬쩍슬쩍 보는 사람도 있다손 치더라도 큰길에서 조금 들어앉은 묘소 앞 우편에 있는 추모비의 비문을 읽는 사람은 나 혼자밖에 없었다. 한글도 된 비문을 읽어 가는데, 어 명문이다! 싶었는데 역시 노산 이은상의 작품이다. 이 양반이 독재에 협조했다, 아부했다면서 말도 많지만 글 솜씨 하나만은 당대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산 출신이라고 그리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가고파' 작사자라고 그리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이은상을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산 자락에 있는 비문과 시문들만 읽어봐도 내용과 품격과, 지식과 식견이 탁월함을 알 수 있다. 혹시 남이섬 가면 꼭 읽고 오기를 권하고 싶다.

 

두 번째로 나만의 감동이었던 것은 수영장 근처에 전시해 둔 '국제아동도서의 날(International Children's Book Day)' 선전 포스터들이었다. 뭐 아동들이 책 많이 읽게 권장하기 위해 덴마크 동화작가 안데르센 탄신일을 기념일로 정하고 매년 세계 각국에 돌아가면서 집회를 가지는 모양이다. 그 집회에 사람들 많이 모이라고 만든 선전포스터인데 수십 년 치를 함께 전시해 두었다. 나는 포스터의 그림을 이해할 수준도,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준도 못 된다. 내가 주목한 것은 그 포스터들에 적혀 있는 캐치프레이즈들이다. 너무 핵심을 찌르는 것들이었다. 메모를 한다고 생각했다가 깜박 잊고 왔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가 없다. 미국 야후에 들어가도 안 나오더라. 누가 남이섬 가면 이것 좀 적어와 주라.

 

나는 언어교육은 부모 책임이라고 주장해 오고 있다. 어릴 때 한 단어라도 더 익히면 80년을 써먹을 수 있다. 책 읽는 방법과 습관은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버릇 들여야 한다. 말하고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도 후회하고 원망한다. 어릴 때 언어교육만 제대로 받았더라면 훌륭한 학자가 되지 않았을까. '너는 하버드대학 교수가 되어도 하버드대학 교수의 평균 수준을 높일 사람'이라고 치켜세우면서 '영어 공부만 좀 더 해라'라고 조건을 붙이던 우리 구루(guru)의 말은 자다가도 생각나고 그때마다 식은땀이 흐른다. 기분 좋아서도 그러고 억울해서도 그런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책을 소리 내서 읽어라고 권한다. 내 손자가 나면(김칫국부터 마시면) 언어교육은 내가 시킬 참이다. 그때 써먹을 수 있게, 누가 남이섬에 있는 '국제아동도서의 날' 선전포스터에 있는 그 캐치프레이즈 20개만 적어 와서 나에게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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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먼당 송세혁 | 작성시간 11.08.06 아직 여름휴가를 못가고 있는데,남이섬으로 가볼까? ㅎㅎ. 변회장의 그 guru 님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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