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쓰레기 꼬리표
집안일에는 보이지 않는 역할 분담이 있다.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굳어지는 일들이다.
우리 집에서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가 그런 일이다. 개수대 한쪽에 모아 두었던 음식물 쓰레기를 오후 산책길에 들고
내려가 아파트 공동 음식물 처리장에 버리는 일은 대체로 내 몫이다.
음식물 쓰레기는 오래 두면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개수대 옆에는 늘 음식물 봉투와 함께 수거함에 인식시키
는 녹색 꼬리표가 놓여 있었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마치 집의 한 부분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때마다 나는 가끔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시골에서 자랐던 그때는 음식물 쓰레기라는 말 자체
가 낯설었다. 밥상에서 남은 것은 돼지 먹이가 되었고, 개수대에서 흘러나온 구정물조차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변소에
부어 퇴비와 함께 농작물을 키우는 데 보탰다. 지금 생각하면 순환이라는 말을 몰랐을 뿐,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
가 그 속에 있었다.
마산에 살던 시절에도 변두리에는 돼지를 키우는 집들이 있었다. 시내 식당에서 나온 음식 찌꺼기를 모아 와 사료로 쓰곤
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마다 음식물 쓰레기를 따로 모아 발효시켜 퇴비나 사료로 활용한다고 하니, 방식은 달라졌어도
결국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는 일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며칠 전의 일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고 하다가 문득 꼬리표가 보이지 않았다. 늘 두던 개수대 옆을 살펴보았지만 없었다. 서랍도 뒤져
보고 선반 위도 살펴보았지만 감쪽같이 사라졌다. 원래 관리실에서 큰 것과 작은 것 두 개를 받았는데, 큰 것은 언제부터인
가 자취를 감추고 작은 것 하나만 남아 있던 터였다.
나는 슬그머니 집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가끔 아내가 대신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내려갈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건망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속으로는 '아마 가져갔다가 어디에 두었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잔소리까지 했다.
사실 나는 꽤 자신 있었다. 적어도 그 꼬리표만큼은 늘 같은 자리에 두어 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꼬리표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다행히 아파트 음식물 수거함은 꼬리표가 없어도 동과 호수,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익숙한 방법
이 아니니 괜히 불편했다.
어제 저녁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제법 많이 쌓였다. 비닐봉지가 제법 볼록하게 부풀어 있었다. 할 수 없이 아내가 그것을
들고 내려갔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괜히 걱정이 되었다. 수거함이 고장 난 것은 아닌지,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스쳐 지나가는 기억 하나가 있었다.
언젠가 꼬리표를 잠시 내 서재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책상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내 책상 아래는 말 그대로 작은 고물상 같았다. 읽다 만 책들,
오래된 서류철, 전선 뭉치, 상자와 잡다한 물건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나는 하나씩 물건을 옮기기 시작했다.
먼지가 날리고 허리가 뻐근해질 즈음이었다. 마치 가을 숲속 풀섶에서 알밤 하나를 발견하듯, 낯익은 녹색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토록 애타게 찾던 꼬리표였다.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것이 어느 순간 아래로 떨어졌던 모양이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동안 나는 속으로 아내의 건망증을 의심했고, 사용한 물건은 반드시 제자리에 두어야 한다며 훈계까지 했던 것이다.
정작 물건을 엉뚱한 곳에 둔 사람은 나였는데 말이다.
사람은 이상하다. 자신의 실수에는 관대하면서 남의 실수는 쉽게 눈에 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오래
함께 살아온 부부 사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나는 꼬리표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개수대 옆 원래 자리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잠시 후 돌아온 아내는 꼬리표가 제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작은 반성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부부란 서로의 건망증을 탓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깜빡함을 덮어 주며 살아가는 사이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은 조금씩 흐려지지만, 이해하는 마음은 그만큼 더 깊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개수대 옆에 놓인 작은 녹색 꼬리표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앞으로는 물건보다 먼저 사람을 의심하는 버릇부터 버려야겠다고. 그리고 아내에게 했던 훈계는, 무엇보다 먼저 나 자신
에게 들려주어야 할 말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