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 만에 다시 잡은 운전대
오늘은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고 뜻깊은 길을 다녀왔다. 창원에서 열리는 막내 고모님의 막내아들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집사람과 함께 큰 고모님의 장남이신 고종 형님 내외분을 모시고 가는 길이라 평소보다
마음의 부담이 더 컸다.
사실 나는 1년 반 동안 운전을 하지 않았다. 예전에 타던 쌍용 체어맨은 막내아들이 가져가고, 최근에는 기아
스포티지를 운전하게 되었는데 차종이 바뀌니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오랜 공백까지 있었으니 걱정이 앞서
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아파트 주차장 구획 안에서 몇 차례 연습을 해 보았다. 브레이크 감각도
익히고, 차체 크기와 시야도 확인하면서 조심스럽게 준비를 했다.
드디어 오늘, 귀한 손님들을 모시고 도로에 나섰다. 처음에는 긴장감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예전의 감각을 조금씩 되찾기 시작했다. 핸들을 돌리는 손끝이나 가속과 감속을 조절하는 발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문득 "수영이나 자전거는 한번 배우면 평생 잊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운전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반응 속도나 운동 감각이 예전 같지는 않겠지만, 몸에 배어 있는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원래 엔지니어 출신이다. 대학에서 선박엔진과 차량엔진을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신조선박 회사
에서 10여 년 동안 실무를 익혔다. 기계의 원리를 배우고 다루는 일이 직업이었으니 운전 역시 단순한 이동 수단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젊은 시절의 추억도 떠올랐다. 영국에서 1년 반 동안 근무하던 시절, 아이들의 방학을 이용해 가족과 함께 자동차에
텐트를 싣고 유럽 대륙을 약 한 달 동안 여행한 적이 있었다. 캠핑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여러 나라를 둘러본 그 여행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다.
특히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뮌헨까지 달렸던 어느 밤은 아직도 생생하다. 목적지에 늦지 않기 위해 아우토반에서 시속
200km 가까이 달렸던 것이다. 스피드를 즐기려던 것이 아니라 문을 닫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한 일이었다. 다행히 도로는 곧게 뻗어 있었고 노면 상태도 훌륭했다. 하지만 만약 도로
위에 작은 이물질 하나라도 있었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젊음의 자신감이 때로는 위험과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사실을 세월이 흐른 뒤에야 깨닫게 된다.
오늘의 여정은 해운대 집을 출발해 광안대교를 건너고, 황령산터널과 동서고가도로를 지나 장유IC와 창원터널을 통과한
뒤 창원대로를 따라 리베라컨벤션 웨딩홀에 도착하는 코스였다. 약 1시간 10분 정도가 걸렸다. 오랜만의 운전이었지만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자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7층 웨딩홀에 올라가니 올해 아흔아홉이 되신 막내 고모님께서 손녀딸의 결혼식을 보시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나오셨다.
연세가 많으심에도 손녀의 새 출발을 축복하시려는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드리고 결혼식에 참석한
뒤 식사를 마쳤다.
행사를 마치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은 올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안했다. 긴장은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도 1년 반 만에 다시 잡은 운전대였지만 아직 감각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나이가 들면 체력도 줄고 반응도 느려진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몸과 마음에 익힌
경험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오늘의 운전은 단순히 창원을 다녀온 하루의 일정이 아니라,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는
삶의 기억과 경험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하루를 돌아보니, 무사히 다녀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앞으로도 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필요한 때에는 자신 있게 운전대를 잡을 수 있겠다는 작은 자신감도 얻게 되었다. 오늘은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뜻깊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