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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과 방패 사이

작성자남청도|작성시간26.06.07|조회수21 목록 댓글 0

창과 방패 사이

 

몇 해 전 신문 사회면을 장식한 작은 소동이 있었다. 어느 대학의 시간강사가 기말시험 문제에 “흔들고 쓰리고 하면

최대 몇 점인가?”라는 문항을 냈다가 곤욕을 치른 것이다. 학생들은 웃었고 언론은 흥미롭게 다뤘지만, 대학 측은

달갑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그 강사는 강단을 떠나야 했다.

강사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단지 학생들이 친숙하게 아는 소재를 활용했을 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

나 대학은 달리 보았다. 학문의 자유가 아무리 보장되는 공간이라 해도 대학이라는 상아탑이 지켜야 할 품위와 상징

성이 있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자유에는 늘 보이지 않는 경계가 존재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 강사가 몇 달 뒤 다른

기업에 채용되었다는 소식이었다. 한곳에서는 금기였던 것이 다른 곳에서는 개성이나 창의성으로 평가될 수도 있는

법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이런 경계들로 이루어져 있다.

내 친구 하나는 학창 시절부터 노름을 무척 좋아했다. 특히 ‘짓고땡’에 관한 한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

취미가 뜻밖의 곳에서 재능으로 발휘되었다. 입대하던 날, 논산훈련소에서 수많은 입영 장정들을 한 강당에 모아

놓고 산수 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여러 숫자를 빠르게 더하는 문제였는데, 친구는 노름판에서 익힌 방식으로 계산

했다.

3, 8, 9가 보이면 ‘삼빤구’, 6, 6, 8이 보이면 ‘쭉쭉팔’처럼 숫자 묶음을 하나의 패턴으로 인식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

은 숫자를 하나씩 더했지만 그는 덩어리째 읽었다. 결과는 압도적인 1등. 그 덕분에 암호병으로 차출되었고 군 생활

도 비교적 수월하게 보냈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재미있는 일이다. 사회에서는 못마땅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기술이 다른 환경에서는 뛰어난 능력이

된다. 대학 강사의 시험 문제도, 친구의 노름 실력도 결국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지식과 기술의 가치는 과연 누가

결정하는가.

요즘 세상은 AI와 양자컴퓨팅을 이야기한다. 개인 정보는 물론 기업과 국가의 기밀까지도 이전보다 훨씬 큰 위협

에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 컴퓨터의 연산 속도가 빨라질수록 암호는 더 정교해져야 하고, 암호를 뚫으려는 기술

역시 함께 발전한다. 결국 암호의 역사는 창과 방패의 역사다.

세상의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다는 창이 있다. 반대로 세상의 어떤 창도 막을 수 있다는 방패가 있다. 그렇다면

둘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중국 고사에서는 여기서 ‘모순(矛盾)’이라는 말이 태어났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다르다. 창이 강해지면 방패도

강해지고, 방패가 강해지면 창도 더 예리해진다. 둘은 서로를 부정하면서도 동시에 서로를 발전시킨다. 완벽한

승리도, 완벽한 패배도 없다. 모순은 파괴가 아니라 진화의 동력이 되는 셈이다.

생각해 보면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대학은 자유를 말하면서도 금기를 갖고 있고, 노름 기술은 오락이면서도

때로는 뛰어난 계산 능력이 되며, 암호는 보호 장치이면서 동시에 해독 기술의 발전을 부른다. 하나의 사물은

언제나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최근 뜨거운 장세를 보이는 코스피를 둘러싼 논쟁도 비슷하다. 누군가는 투자를 한다고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투기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그 경계는 생각보다 모호하다. 기업의 미래를 믿고 주식을 사는 행위와 시세 차익을

기대하는 행위가 어디서 명확히 갈라질 수 있을까. 같은 행동도 자신이 하면 투자이고 남이 하면 투기라고 부르

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치 자신이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은 흑백으로 나뉘지 않는다. 대학 강사의 시험 문제도, 친구의 노름 실력도, 암호와 해독의 경쟁도, 투자와

투기의 논쟁도 모두 회색지대 위에 서 있다. 우리는 종종 그 회색지대를 지워 버리고 싶어 하지만, 사실 세상의

대부분은 그곳에서 움직인다.

창과 방패가 끝없이 맞부딪히듯, 가치와 금기, 자유와 규범, 투자와 투기 역시 끊임없이 충돌한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의 지혜란 어느 한쪽을 절대선으로 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의 긴장을 이해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모순은 세상에 존재하는 결함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이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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