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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구멍난 난닝구

작성자남청도|작성시간26.06.07|조회수36 목록 댓글 0

 

어머니의 구멍난 난닝구

 

사람마다 가슴 깊이 간직한 물건 하나쯤은 있다.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사진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낡은 시계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구멍 숭숭 뚫린 어머니의 난닝구가 그렇다.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그 난닝구에는 어머니의

땀과 눈물, 그리고 한평생 자식을 위해 바치신 사랑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까막골은 가난한 산골 마을이었다. 더욱이 우리 집안은 6·25전쟁이 남긴 상처를 깊게 안고 살아야

했다. 전쟁 중 집은 불타 버렸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피난길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으셨다. 불타는 집에서 가재

도구라도 건져 보겠다고 달려가시다가 아군의 총탄에 쓰러지신 것이다.

 

할머니는 하복부에 총상을 입고 쓰러지셨다. 동행하셨던 큰고모는 밖으로 밀려 나온 창자를 손으로 밀어 넣으며

할머니를 살려 보려 애쓰셨다고 한다. 목이 마르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산골짜기로 달려가 고무신에 물을 담아 와

입에 부어 드렸고, 할머니는 "손자들과 외손자들 잘 키워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할아버지

또한 다리에 총상을 입고 고생하시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셨다.

졸지에 부모를 잃은 아버지는 전쟁의 충격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셨다. 술로 세월을 보내시다가 쉰넷의 나이에 세상

을 떠나셨다. 그 후 우리 집안의 가장은 사실상 어머니였다. 어린 자식 다섯을 키우고, 집안일을 하고, 논 열 마지기의

농사까지 책임져야 했다. 어머니의 어깨 위에는 한 가정의 삶이 모두 얹혀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돕고 싶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책보따리를 어깨에 둘러메고 오 리쯤 되는 비포장 신작로

를 숨차게 뛰어왔다. 집에 오면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훗날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는 잠을

자면서도 동생들이 울지 말라고 손으로 토닥이며 '와와아' 하고 잠꼬대를 하더라." 어린 나이였지만 동생들을 돌보는

일이 늘 마음에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고단함을 조금이라도 덜어 드리고 싶었던 마음이 잠든 순간에도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어린 동생들이 배고프다고 울면 어머니는 논일을 하다가도 달려와 젖을 물리셨다. 그때마다 내 눈에 들어오던 것이

있었다. 바로 어머니가 입고 계시던 난닝구였다.

 

난닝구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었다. 작은 구멍 몇 개가 아니라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목은 늘어나 가슴까지 내려와

있었고, 군데군데 해진 천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자세히 보니 그것은 내가 입다가 버린

난닝구였다. 어머니는 당신 새 옷 한 벌 사 입지 못하면서도 자식이 버린 옷을 주워 입고 계셨던 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집이 가난하니까, 어머니는 원래 그런 분이니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내가 부모가 되고, 인생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뒤에야 깨달았다. 그 난닝구는 단순히 낡은 속옷이 아니었다.

자식들에게는 새 옷을 입히고 좋은 것을 먹이기 위해 자신은 가장 헌 옷을 입으며 살아온 어머니의 희생 그 자체였다.

 

지금도 나는 난닝구를 즐겨 입는다. 토요일이면 친구들과 산에 갈 때도 어김없이 입고 나간다. 친구들은 땀이 나도

금세 마르는 기능성 스포츠웨어를 사 입으라고 말한다. 요즘 세상에 누가 난닝구를 입느냐며 웃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쉽게 버릴 수가 없다.

구멍난 난닝구만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난닝구라는 말이 영어 '러닝 셔츠(running shirt)'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내게 난닝구는 그런 어원보다 훨씬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을 상징하는 단어다.

배고픈 자식들 먹이려고 당신은 굶으셨고, 자식들 입히려고 당신은 해진 옷을 입으셨다. 논에서 땀 흘리고, 집에서

살림하고, 밤에는 아이들을 품에 안고 재우며 살아오셨다. 그러나 정작 어머니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셨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사랑을 너무 늦게 알았다. 어머니가 젊었을 때는 몰랐고, 어머니 곁에 계실 때는 더욱 몰랐다.

구멍난 난닝구를 입고 계신 모습을 보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큰 희생이었는지 깨닫지 못했다.

이제는 어머니가 계시지 않지만, 가끔 옷장을 정리하다 오래된 난닝구 하나를 발견하면 가슴 한쪽이 먹먹해진다.

그리고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린다.

"어머니,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구멍난 난닝구 속에 담긴 그 크고 깊은 사랑을 왜 그렇게 늦게 알았을까요."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지만, 어머니의 사랑만은 바꾸지 못했다. 지금도 내 기억 속 어머니는 구멍난 난닝구를

입은 채 자식들을 품에 안고 계신다. 그리고 그 모습은 내 생이 다하는 날까지 가장 따뜻하고도 가장 가슴 아픈 그리움

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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