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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弔旗) 아래서 생각한 것들

작성자남청도|작성시간26.06.07|조회수24 목록 댓글 0

 

조기(弔旗) 아래에서 생각한 것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다. 세상에 완전한 비밀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의 말뿐만 아니라 행동 또한 누군가의 눈에 비치고 기억되는 법이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지는 거창한 선언보다 작은 실천 속에서 드러난다.

어제는 현충일이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는 날이다. 며칠 전 뉴스에서는 6·25전쟁

에 참전했던 한 프랑스 용사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유해를 한국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결국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조국도 아닌 먼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젊음을 바쳤던 사람. 그에게

자유는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목숨과 맞바꿀 수 있는 신념이었을 것이다.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

역사 속 어느 외침은 시대를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자유와 평화는 공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임을 잊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현충일 아침, 나 역시 국기를 게양하려고 베란다로 나갔다. 그런데 화분들이 빼곡하게 놓여 있어 국기 꽂이까지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잠시 망설였지만, 그래도 현충일인데 조기를 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국기를 꺼내 베란

다 바깥쪽에 끈으로 단단히 묶어 조기를 게양했다. 그리고는 창원에서 열리는 조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와 들은 이야기 하나가 인상적이었다. 우리 아파트의 한 주민이 각 동을 돌아다니며 현충일에 국기를

게양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를 표시해 두었다는 것이다. 그 행동 자체를 평가하기에 앞서, 나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과연 우리는 국경일과 기념일이 지닌 의미를 얼마나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막내가 사는 곳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큰 아파트 단지인데 현충일에 국기를 단 집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한다.

물론 사람마다 사정이 있고 생각도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추모하는 날만큼은 정치적 입장이나

지역적 차이를 떠나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역사를 돌아보면 선동은 늘 달콤한 언어를 앞세운다. 사람들은 복잡한 사실보다 단순한 구호에 끌리기 쉽다. 애벌레 떼가

앞의 애벌레를 따라 움직이듯 대중도 때로는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흐름을 따라간다. 하지만 그 끝이 언제나 올바른 방향

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며, 상식에 기초한 판단이다.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거창한 이념보다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먼저

행동으로 보여 주는 사람이 신뢰를 얻는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정작 자신은 실천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집사람은 한때 동대표를 맡은 적이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국경일에 국기

하나 달지 않는다면 주민들은 그 사람의 말에 얼마나 귀를 기울일까. 리더십은 직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범에서 나온다.

 

예전에는 “나를 따르라”라고 외치는 강한 지도자가 존경받는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명령하는 리더보다 함께

듣고 공감하는 리더를 더 높이 평가한다. 그런 점에서 이순신의 리더십은 지금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는 부하들의 의견을

경청했고, 백성들의 고통을 살폈으며, 누구보다 먼저 책임을 짊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따랐다.

현충일에 게양된 조기는 하루가 지나면 다시 내려오지만, 그 깃발이 상징하는 의미까지 함께 내려오는 것은 아니다. 자유와

평화, 공동체와 책임, 그리고 먼저 실천하는 자세. 그런 가치들이 우리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을 때 비로소 현충일의 의미도

살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큰 목소리는 말이 아니라 행동인지도 모른다. 낮말을 새가 듣고 밤말을 쥐가 듣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결국 우리가 무엇을 말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실천했는지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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