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온 남자, 화성으로 가는 남자
1990년대 베스트셀러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세상을 휩쓸었을 때, 사람들은 화성을 하나의
비유로 받아들였다. 화성은 남성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설명하기 위한 상징이었다. 화성에서 온 남자는 문제
를 해결하려 했고, 혼자 생각하는 동굴을 찾았으며,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오늘, 우리는 또 다른 화성의 남자를 보고 있다.
그는 화성에서 온 것이 아니라 화성으로 가려고 한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는 단순한 우주기업이 아니다. 로켓을 쏘아 올리고 위성을 배치하는 회사를 넘어,
인류를 다행성 종족으로 만들겠다는 거대한 서사를 팔고 있다. 심지어 수백조 원의 자금이 그 꿈에 몰리고, 세계
투자자들은 그 꿈에 가격표를 붙인다. 어떤 사람은 이를 혁신이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 희망과 꿈에 기대어 부풀려진
신기루라고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화성에서 온 남자』의 주인공과 머스크가 묘하게 겹쳐 보인다는 사실이다.
책 속의 화성인은 문제를 만나면 해결책을 찾는다. 머스크 역시 지구의 문제를 지구 밖에서 해결하려 한다. 기후위기
에는 전기차를, 통신의 한계에는 위성을, 인공지능 경쟁에는 초거대 데이터센터를, 그리고 인류 생존의 불확실성에는
화성 이주라는 답을 제시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는 전형적인 '문제 해결형 인간'이다.
그러나 두 화성인은 결정적인 차이도 있다.
책 속 화성인은 관계를 배우기 위해 지구로 왔다. 그는 금성인을 이해하는 법을 익혀야 했다. 타인과의 소통이 그의
과제였다.
반면 화성으로 가는 남자는 오히려 지구를 떠나려 한다. 그의 시선은 사람의 마음보다 별과 행성, 데이터와 로켓,
그리고 미래 문명에 향해 있다. 관계의 세계보다 개척의 세계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어쩌면 이것이 시대의 변화인지도 모른다.
20세기 말의 사람들은 사랑과 결혼, 가족의 문제를 고민했다. 그래서 화성은 인간관계를 설명하는 은유가 되었다.
그러나 21세기 중반의 사람들은 인공지능과 우주산업, 에너지 전환과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이제 화성은 은유
가 아니라 실제 목적지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화성으로 가는 꿈이 화성에서 온 사람의 고민을 대신할 수는 없다.
수백만 명이 화성에 정착하는 날이 오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다투고 이해받기를 원할 것이다. 로켓이 아무리
빨라져도 인간의 외로움까지 함께 날려 보내지는 못한다. 행성을 바꾸는 기술보다 사람을 이해하는 지혜가 더 어려운
이유다.
그래서 나는 두 화성 이야기가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화성에서 온 남자는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려 했고, 화성으로 가는 남자는 인류의 미래를 넓히려 한다. 하나는 인간의
내면을 향한 여행이고, 다른 하나는 우주를 향한 여행이다.
문명을 발전시키는 것은 화성으로 가는 용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문명을 지속시키는 것은 화성에서 온 사람과 금성에서
온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별에 닿는 꿈은 위대하다.
하지만 그 꿈을 꾸는 인간을 이해하는 일은, 어쩌면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