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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와 바다의 기뢰

작성자남청도|작성시간26.06.17|조회수23 목록 댓글 0

 

은수저와 바다의 기뢰

 

프랑스 휴양도시 에비앙레뱅에서 열린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종결될 경우 뒤따라야 할 후속 조치로 호르무즈 해협의 기뢰 제거 문제를 거론할 것이라고 한다. 전쟁은 끝나더라

도 바다는 곧바로 평화를 되찾지 못한다. 총성이 멎은 뒤에도 바닷속에는 보이지 않는 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의 대동맥이다. 그 좁은 바닷길에 기뢰가 매설되면 수백 척의 상선들이 발이 묶인

다. 선장들은 종전 소식을 듣고도 안심할 수 없다. 기뢰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어떤 종류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접촉식 기뢰도 있고 자기감응식 기뢰도 있으며 음향이나 수압 변화를 감지하여 폭발하는 기뢰도 있다. 바다는 넓지

만 선박이 다닐 수 있는 안전한 항로는 한정되어 있다. 결국 배가 다시 다니기 위해서는 누군가 먼저 바다 속으로

들어가 죽음의 씨앗을 찾아내 제거해야 한다.

 

나는 젊은 시절 해군 소해정에서 복무했다.

소해정은 전함처럼 거대한 함포를 자랑하지 않는다. 미사일도 없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가장 먼저 위험한 바다로

들어가는 배가 바로 소해정이다. 기뢰는 쇠붙이에 반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해정 승조원들은 쇠로 만든 물건을

몸에 지니지 못했다. 함정 자체도 목재나 비자성 재료를 사용했고, 식기마저 은으로 만든 것을 사용했다.

그 시절 나는 종종 웃으며 말했다.

"나는 흙수저로 태어났는데 해군에 와서 은수저가 되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나에게 은수저는 귀족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졌지만, 소해정에서는 그것이 사치품이 아니라 생존

장비였다. 작은 숟가락 하나에도 승조원들의 목숨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제대를 한 뒤에도 나는 식사할 때 은수저를 사용한다. 사람들은 왜 굳이 은수저를 쓰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소해정 시절을 떠올린다. 은은 녹이 잘 슬지 않고 독성 물질에 반응하여 색이 변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은수저를 손에 쥐면 젊은 날의 바다가 생각난다.

밤바다를 가르며 천천히 항해하던 소해정, 긴장된 눈으로 장비를 지켜보던 전우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기뢰를 찾아내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전쟁을 탱크와 전투기, 미사일로 기억한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는 오히려 전쟁이 끝난 뒤의 보이지 않는 작업

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는 무너진 다리를 복구하고, 누군가는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며, 또 누군가는 바닷속 기뢰를

제거한다.

 

호르무즈 해협의 기뢰 제거 작업도 마찬가지다. 세계는 종전 선언에 환호할 수 있지만, 소해정 승조원들은 환호보다 먼저

탐지기 화면을 바라볼 것이다. 그들의 임무는 영웅담으로 남지 않는다.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바닷길을 열어 놓아야 비로소 유조선이 움직이고, 상선이 항해하며, 세계 경제도 다시 숨을 쉴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식탁 위의 은수저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은수저는 단순한 식기가 아니다. 그것은 바다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묵묵히 일했던 사람들의 기억이다. 전쟁보다 평화

가 어렵고, 승리보다 안전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작은 기념품이다.

언젠가 호르무즈 해협의 마지막 기뢰가 제거되고 수백 척의 선박이 다시 자유롭게 항해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의 희생과 노고 위를 지나게 된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은수저를 들어 한 술 뜨며,

먼 바다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오늘의 소해정 장병들에게 마음속 경례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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